기대— 충분이 필요처럼 굳어질 때
회사에서 기대는 늘 말없이 생긴다. 누가 공식적으로 요구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것처럼 자리를 잡는다. 야근을 한두 번 맡기 시작했을 때, 급한 업무를 대신 처리했을 때, 주말 메시지에 바로 답장을 했을 때처럼 작은 선택들 속에서 기대는 조용히 쌓인다.
그 선택들은 처음엔 모두 자발적이었다. 상황을 돕고 싶었고, 팀이 돌아가길 바랐으며, 일이 잘 마무리되기를 원했다. 그때의 목적은 분명했다. 지금의 공백을 메우는 것, 업무가 멈추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그 행동들은 충분조건이었다. 이 정도면 지금 상황은 넘길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문제는 그 충분이 반복되기 시작하면서 생긴다. 며칠이 지나고, 비슷한 상황이 다시 찾아왔을 때 그 선택은 더 이상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늘 해주던 거잖아요.” “이번에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이 드러나는 순간, 충분은 필요의 얼굴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필요는 한 번도 합의된 적이 없다. 업무 규칙도 아니고, 직무 범위에 포함된 것도 아니다. 단지 한 사람의 충분이 조용히 모두의 필요처럼 굳어졌을 뿐이다.
그때부터 어긋남이 시작된다. 같은 행동을 했는데 이번에는 감사가 아니라 당연함으로 돌아온다. 왜 이번에는 하지 않았는지를 묻고, 왜 예전과 같지 않은지를 문제 삼는다. 이때 사람은 혼란을 느낀다. 나는 도와준 것이었는데, 어느새 회사의 필요를 어긴 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태도가 아니다. 충분이 목적을 잃은 채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의 목적은 분명했다. ‘지금 이 상황을 넘기기 위해서.’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충분은 계속 반복되었다.
목적이 사라진 충분은 공허하다. 시차가 어긋난 충분은 그 순간부터 충분히 아니다. 그것은 단지 기대라는 이름으로 남은 잔여물이다.
회사에서의 기대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이유는 일이 많아서가 아니다. 이미 끝난 목적을 향한 충분이 계속 요구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