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진심을 말로 하진 않더라도

영화 <내 말 좀 들어줘>

by 유진

영화 <내 말 좀 들어줘>는 남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팬지의 이야기다. 보통의 영화 시나리오는 이야기 구성의 3요소라던지 3막 구조 등을 가지고 전개하는데 비해 <내 말 좀 들어줘>는 팬지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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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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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지는 가는 곳마다 말썽이다. 집에서는 남편과 아들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잔소리를 한다. 밖에 나가서는 웃는 얼굴로 도움을 주러 온 직원들에게 퉁명스럽게 말하며 인격 모독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반면 그녀의 동생 샨텔은 딸 둘과 서로의 일상 얘기를 하며 엉덩이를 흔들면서 재밌게 대화한다. 샨텔의 미용실에는 사람이 많아 언제나 북적인다. 그런 샨텔은 언니의 성격을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녀의 머리를 만져주고 그녀를 걱정해 주며 어머니의 날에 집으로 초대하기 위해 계속 그녀의 안부를 묻는다.


영화는 팬지가 왜 그런 성격을 가졌는지 모든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어딘가 몸이 아프고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라는 것만 암시한다. 그런 그녀의 부정적인 감정 표출은 또 다른 불편함으로 이어질 뿐 해소되지 않는다. 가구점에서 모진 말을 쏟아내곤 아무도 없을 때 도망치거나 어머니 날을 기념하는 가족모임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아 하며 회피하기 일쑤다. 팬지는 모두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진실을 직면하기는 두려워한다.


그녀가 미움받을 행동을 하긴 했지만 어쩌면 그녀는 사랑받는 일이 없어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팬지는 샨텔과 엄마의 묘 앞에서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한다. 팬지는 어렸을 때부터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을 수 있다. 지금은 팬지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인 치킨을 시켜 먹는 무심한 남편과 아들과 살고 있다. 마음껏 불평불만하고 산다고 해도 분명 지쳤을 것이다. 그녀는 혼자여도 함께여도 외롭고 쓸쓸하다며 더 이상 살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미움받기 쉬운 그녀의 말 뒤에 그녀가 숨겨놓은 진심은 오히려 그 반대인 ‘나를 미워하지 말아 줘.’ 이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말해도 나를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될까. 그럼에도 날 사랑해 주면 안 될까.


마이크 리 감독과 마리안 장 밥티스트 배우.jpg


연극 수업을 들었을 적 언제 한 번은 화내는 연기가 가장 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감정 표현 중에 가장 쉬운 표현은 화내는 것이라는 거다. 소리치고, 언성을 높이고, 툭툭 내뱉는 것엔 섬세함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팬지는 사랑, 슬픔, 외로움을 표현하는 대신 가장 쉬운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랑을 표현하고 사는 사람들은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흐르는 강물처럼>의 대사가 떠오른다. 샨텔은 언니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매번 팬지의 날카로운 말을 듣고 사는 모지스는 분명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을 터이지만 어머니의 날에 꽃을 선물한다. 팬지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묘지에 찾아오고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자체로 사랑할 수는 있다. 그러니 어머니 날 받은 꽃은 단순한 꽃이 아닌 자신을 미워할 것이라 생각했던 아들로부터 온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으로 웃는다. 비록 그녀가 꽃과 식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말이다. 그 꽃을 용기 내 물병에 담는 모습을 보면 그녀는 확실히 사랑을 원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늘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며 숨기고 싶은 비밀도 존재한다. 스쳐 지나갈 뿐인 우리들 역시 서로의 겉모습만 볼 수 있을 뿐 그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한다. 관객인 나 역시 2시간 내내 팬지를 보았지만 팬지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영화 속 가족들도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를 보고 며칠이 지난 뒤였다. 나는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가만히 있던 나를 밀쳐내고 지나갔다. 나는 습관적으로 짜증이 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왜 사람을 치고 지나가는 거야?라는 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문을 가졌을 때 이 영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곤 희한하게 불쾌감이 가라앉았다. 그 사람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섣불리 그를 미워하지 말자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었다. 미움받기 십상인 사람까지도 이해되지 않을지 언정 그저 품어주는 일이었다. 그럴 수 있지,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 사랑 가득한 세상을 꿈꾸지만 나에게 못해주는 사람에게 똑같이 못해주는 것은 진짜 사랑 가득한 세상이 아닌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사람이 한 걸음 더 다가가면 된다. 모지스가 팬지에게 건넨 꽃 한 송이, 그런 모지스에게 이름 모를 누군가가 건넨 젤리 한 조각처럼.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떠나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들로 인해 조금 더 살아갈 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좋은 영화가 뭔지 잘 만든 영화가 뭔지 명확히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부정적이었던 감정에 변화를 주고 생각을 고쳐먹게 만든 팬지의 이야기는 들을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그녀는 영화가 끝날 무렵에도 여전히 타인에게 사소한 걸로 화를 낸다. 하지만 그녀의 남은 생에 또 다른 사랑들이 찾아오길, 충분한 사랑들이 찾아와서 그녀도 비로소 언젠가는 다시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원문 [Review] 내 진심을 말로 하진 않더라도 – 내 말 좀 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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