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하고 싶었던 우리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세상 모든 도전과 인연을 사랑하던 5년 전의 기록과 현재의 만남

by 유진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특히 예술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남들 따라 스펙 쌓겠다고 들어간 개발 동아리에서 꾸역꾸역 코드를 작성하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어떤 의지가 있었다. 어느 날은 같이 스터디를 하던 친구에게 ‘나는 꼭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거야.’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친구는 좋아하는 일은 좋아하는 취미로만 남겨두면 된다. 돈 버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했다. 그 말이 현실이란 건 알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별말 아닌데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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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여름,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비전공자인 내가 영화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영화 감독님이 하는 특강에 참석했다. 영화를 보기만 할 줄 아는 내가 무슨 영화를 만들어 싶은 마음에도 용기 내 찾아갔던 것, 그 덕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영화를 만드는 목표와 본질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었던 기억이 무척 좋아서 기록해 둔 것에 따르면 이렇다.


<20년 7월 9일>

5명만 있었던 강의라서 나에게 영화에 관해 질문할까 무서웠다. 전공자들 사이에서 기죽고 나의 무지함이 들통날까 두려웠다. 질문하는 시간이 왔는데, 하나둘 ‘저는 비전공자인데…’를 서두로 말하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비전공자지만 각자 나름대로 그 위치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게 참 대단하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비전공자라는 핑계를 대지 말고 관심 있는 건 어디서든 어떻게든 하려고 시도해야겠다. 누군가 한번 해보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도 없어서 혼자만 마음속으로 간직하며 혼자만 좋아했던 일들과 마음을 공유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이분들이 영화산업에 진출하고 그 산업에서 우리가 서로를 만날 수 있고 언젠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런 인연에 너무나 감사하다. 다들 지금의 고민을 얼른 딛고 영화산업으로 진출하셨으면 좋겠다. 오늘은 참 여러모로 감사한 하루다. 피곤해도 그곳에 갔고, 두려웠지만 그 자리에 있었고, 긴장했지만 이야기를 했고, 어설펐지만 질문을 했고, 낯가렸지만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었다.


이 기록은 나를 포함해서 영화 연출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났던 내용이다. 이날 이후로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바는 없다. 다만 그날 겪었던 감정과 만났던 이들의 모습은 선명했다.


이후 5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오늘, 신기한 일을 겪었다.


25년의 나는 영상 스튜디오에서 기술을 개발하며 지내고 있다. 종종 영화, 드라마, 광고 촬영이 있을 때면 외부 팀이 스튜디오에 진입하여 촬영하고 간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늘도 드라마 촬영이 있는 날이었고, 좋아하는 배우가 온다는 소식에 촬영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보다 더 시선이 갔던 건, 5년 전 특강에 있었던 5명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묵묵히 돌아다니며 일했다. 오래 전의 아주 짧았던 인연이라, 나를 어찌 소개해야 할지 몰라 인사는 건네지 못했다. 하지만 그를 보고 반가웠던 건, 이 분야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어떤 안도감이었다. 대화는 안 해봐서 실제 그 일이 어떤지 심정은 모른다. 어쩌면 후회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내 멋대로 지레짐작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시간이 흘러 나는 그를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마주쳤단 것이다. 영상 기술직과 드라마 연출부로…


실질적인 제작의 중심인 현장직을 선망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부러웠다. 사실상 앉아서 일하는 나 스스로에게 어떤 반발심까지 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하고 싶었던 그때의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어느 정도까지 말할 수 있나 생각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영화를 하고 싶어 하던 또 다른 이들은 지금은 무얼 하고 있을까, 아니 세상에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상상까지 해보게 됐다.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정말 무수하다. 당장 내가 보고 들은 것만 해도 다양하다. 그중에 정말 영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하고 말이다.


방송국 인턴을 할 당시에는 공대를 나온 선배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영화 현장을 뛰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고. 그 말에서 안정된 곳에서 일하지만 불안정한 영화라는 꿈 사이에서 아쉬움이 남아 있는 것이 느껴졌다. PD를 하고 있는 친구의 선배들은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었지만 영화감독은 되기가 어려워 PD를 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또 지인 중에서 누군가는 간호사를 하고 있기도 하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 실제로 그들이 아직도 영화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당장 나만 봐도, 그리고 가까운 회사 사람들만 봐도, 다들 말하지는 않지만 창작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아마 우리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여전히 속으로는 어떤 꿈을 품고 살고 있는 중일 테다. 그럼에도 현실의 우리는 완전한 꿈 대신 꿈의 일부만 이루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면 아예 다른 일을 하며 취미로만 남겨둘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것만으로도 어찌 됐든 하고 싶은 분야긴 하니까 괜찮은 걸까. 어느 정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살아가는데 답이 어디 있을까. 남의 방식이 아닌 각자 자신만의 방식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다.


5년 전의 인연을 스쳐 지나간 오늘 덕분에 다시 한번 잊었던 기록을 떠올릴 수 있어 감사한 하루다. 오랜만에 기억을 다시 꺼내 보며, 그때처럼 다시 한번 소원을 빌어본다. 또 5년이 지난 후에는 돌고 돌아 다시 꿈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져 있기를. 나를 포함해 마음속에 꿈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말이다. 그리고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그때는 인사를 할 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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