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스크린 망했다
나는 손보다 컴퓨터가 익숙한 디자인과를 나온 사람이다. 하지만 실크스크린에 대한 묘한 동경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책방을 열면서 실크스크린 장비를.구입했다. 거의 6-70의 적지않은 돈을 들여 장만하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실크스크린을 시작했다. 아주 좋았던 것은 실크스크린 전문 사이트에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고, 배움의 기회도 원데이 클래스 정도면 쉽게 배울 수 있었다.
처음으로 내가 만든 가방은 지금도 자주 들고 다닐 만큼 만족스러웠다. 실크스크린은 껌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몇 주가 흘러 나는 실크스크린 장비를 사용해 내 작업을 혼자 시작했다. 망했다. 실크샤의 구멍도 잘 뚫리지않을 뿐더러 찍어내도 거의 찍혀나오지 않았다. 다시 해보았다. 망했다. 또 다시. 또 망했다. 그리고 그날은 정말 화가 났다. 스스로에게도, 실크스크린에게도 화가 났다. 울고 싶을 정도였다. 다음 날이 되어 조금 진정된 후에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망할 샤 때문이었다. 섬세한 작업이나 종이에 찍어내는 촘촘한 재질을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에코백에 더 적합하다고하는 샤를 새로 구입했다. 몇일이 지나 샤가 도착했고, 얼추 성공하는 듯 했다. 몇번만 더 해보면 잘 될 것 같아 옳거니 하고 원데이 클래스도 진행했다. 그런데 샤에 묻은 감광액이 자꾸만 손에 묻어났다. 또 왜일까 연구를 했다. 이번엔 감광 시간이 짧아서란다. 감광기 안내문구에 있던대로 했지만 아니였다. 감광액에 따라 다른거란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 페어를 나가겠다고 실크스크린을 또 찍어냈다. 또 망했다. 이제 그냥 나 때문인가? 그냥 그래픽 작업이나 할 것이지. 속으로 스스로를 욕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초조함과 원망만 쌓였다. 날씨도 날씨인지라 땀범벅이 되고 신경은 잔뜩 예민해졌다. 실크스크린은 단순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매우 까다롭다. 한 번 찍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고, 어쩌다가 물감이 천에 묻는 날에는 그냥 아예 다 쓸 수 없게 되니까. 덤벙거리고 눈썰미기 없는 나는 너무나도 어렵다.
나도 척척 잘 찍어내고 판을 겹쳐서 하나의 그림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안된다. 그냥 안되더라. 나에게 많이 실망하는 밤. 실크스크린을 망했다. 그리고 나는 꾸역꾸역 새 마음을 먹어가며 실크스크린 판을 씻겠지. 이제 더는 실망하고 싶지 않지만, 앞으로도 계속 실망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실크스크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