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Apr 13. 2021

내려오는 길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하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올라가는 것 만큼이나 내려가는 게 중요하잖아. 초라해지고 싶지 않다고 하는듯한 당신의 마음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아니야. 우리에겐 더 높은 정상이 있어. 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내려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이별을 좋아해. 그럼 그건 그만큼 얕은 사랑이 아니었니? 스스로의 반문에도 답을 피한다. 그저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일지라도 나는 아름다운 이별이 좋아.

인생이나 사랑이나 그런 거창한 것 보다도 모든 일에 아름답게 착지하고 싶다. 떠나온 직장도, 떠나온 동네도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러니 다시 그 곳에 돌아가는 길도 쉬울거야. 난 그곳에서 아름답게 내려왔으니까.

그러기엔 너무 지긋지긋한 등산길을 오르고 있어. 어떠한 높이에도 오르지 않는 둘레길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둘레길에도 뾰족 튀어나온 돌이 있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도 있었어. 언제까지 이 길을 걸어야 할까 하는 막연함도 있지. 조금만 길을 새나오면 그걸로 그냥 끝인데 말야.

내가 새어 나갈 길을 만든다. 꽃을 심고, 돌을 파내고. 아 어쩜 이 둘레길도 꽤나 보기 좋은 곳이었어. 하고 내려올 수 있게. 그러고 나면 이 길을 떠올려도 불쾌하지 않을거야.

언젠가 인생의 밑바닥을 찍는 날이 올까. 감정은 한도 끝도 없이 오르락 내리락하는데 인생은 무미건조하다. 그렇기 때문에 속 안에서 불덩어리가 자라는 건 아닐까? 한 발치만 올라가면 곰이 나오면 어떡하지, 올라가다 벼랑 끝에 몰려버리면? 아 그래도 니가 내 옆에 있다면 좋을지도 몰라. 저 곰이 사실은 곰 탈을 쓴 사람이라고 내게 속삭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우리는 알 수 없는 끝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 둘레길은 안전할까. 너는 언제까지 나의 곁에 있을까. 돌연 네가 정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하지. 빙글빙글 산둘레를 돌아간다. 올라가는 모양인지 내려가는 모양인지 빙글빙글.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고민의 지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