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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01. 2022

청소와 변호사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밤이었어요. 베란다의 커다란 창을 씻어내리는 일을 하기에 딱 좋았던 날이었을까요. 먼지가 자욱이 앉은 3단 창을 향해 고무호스로 물줄기를 쏘아올렸습니다. 바깥에서 태풍같은 거센 비가 내렸기에 먼지 더미들이 아무리 바깥으로 날아가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유리창 조각이 깨져 흩날려도 개의치않고 물줄기로 커다란 창을 씻어내렸습니다. 창의 크기가 제 키의 거의 2배는 되었던 것 같아요. 비바람과 싸우다시피 물줄기를 쏘아대던 저는 전화벨소리를 듣고서야 그 전쟁을 멈출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용의자가 되었습니다. 걸려 온 전화는 경찰서였거든요.

"누군가가 유리창에서 떨어진 먼지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청천벽력이었죠. 제가 바깥으로 떠넘겼던 먼지들의 양이 머릿속을 메웠습니다. 그게 사람이 죽을 정도였나?

멍하니 서 있으니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날도 어느샌가 화창하게 개어 방금 전 소식은 없었던 것 같은 착각까지 들 때였죠. 또다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네. 여보세요."

"변호사입니다. 주변에 사람이 듣지 않게 주의해 주세요."

마른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정신을 차려야지. 하고 눈을 부릅 떴어요.

변호사는 노련한 듯, 또 무성의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경찰 측에서 확인한 결과, 먼지에 맞아 죽은 게 아니라고 하네요. 그런데 피해자의 가족들이 계속해서 조사를 해달라고 우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재판에는 출석해 주셔야 해요."

'꼴깍.'

"에..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때로는 말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선한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거죠. 물론 선생님은 살인자가 아니지만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어요. 저는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변호사는 저를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아닐까요? 그래서 섣부른 말로 제가 자백을  거라고 생각하는  아닐까요?  이후로 변호사가 몇마디 말을  건넸지만 이미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무서웠어요.

가족들은 제 주위로 다가와 괜찮냐는 듯 저를 바라보았어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끊고는,

"아니~ 범인은 내가 아니라는데, 피해자 쪽에서 우기고 있나 봐."

라고 얘기했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목소리가 안나올 것도 같았지만요. 꾹꾹 참아 내렸어요. 가족들에게 걱정을 시키지 않으려고 말이에요. 가족들은 안심을 하며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다 함께 나들이를 가기로 했었나 봐요. 저는 당분간의 마지막 평화일지도 모르는 그 날에 모자를 눌러쓰고 가족들을 따라 나섰습니다. 계속해서 변호사의 말을 곱씹으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거지? 그게 옳은 걸까?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아니 어쩌면 먼지 더미에 맞아 사람이 정말 죽은 거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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