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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l 09. 2021

괜찮아 지기를 바라는 밤에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흘레브와블리니


회사 책상에 앉아 삼각 김밥을 먹었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먹고 나니, 배가 부른데도 무언가 허전했다. 누구든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교든 회사이든 지금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이 철장 안처럼 갑갑하게 느껴질 때 말이다. 

그럴 때면 종종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가 떠오른다.

막 구워낸 빵은 바랄 수도 없다. 반나절 동안 베개 아래 숨겨놓은 빵이라도 충분히 기쁘다. 빵을 한 입이라도 버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빵 하나를 더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곳.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주인공, 이반이 살고 있는 세상은 그런 곳이다. 스탈린 치하의 강제노동수용소, 이른바 굴라크(Gulag)다. 스탈린의 정책에 반대했던 정치범부터 단순 범죄자까지, 1929년부터 53년까지 대략 1,400만 명이 갖가지 이유로 강제 수용소에 끌려갔다. 수용소가 위치한 곳은 시베리아의 개척지 등의 불모지였다. 도망을 가기도 힘들었지만, 도망을 간데도 영하 30도가 넘는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달아날 곳도 없었다. 철저한 감시와 지리적인 요건까지. 소련의 굴라크는 절대적인 고립의 장소였다. 

8년 동안 굴라크에 수감되어 있던 작가 솔제니친이 작품 안에 묘사한 굴라크에서의 하루 식사는 ’건더기가 거의 없는 국, 200그램의 빵’ 이 전부이다. 밖에서 소포를 보내주는 사람이 없는 이반에게 빵은 특히나 소중한 음식이다. 이반은 식사 때에는 국만 먹고, 빵은 따로 감추어 놓았다가 먹는다. 혼자 침대에 앉아 딱딱하고 마른 빵을 꼭꼭 씹는다. 그것이 더 포만감이 든다는 것이 이유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에서 이반이 빵을 먹는 장면에는 어떠한 온기도 없다. 그 장면뿐만이 아니라 소설 전반적으로 모든 음식을 먹는 장면이 그렇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에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반은 끊임없이 언제 빵을 먹을지, 식당의 수프에는 건더기가 있을지, 누군가의 소포에 들어 있을 육포는 어떻게 나누어질지를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음식을 함께 먹지 않는다. 공동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지만, 그 순간 그들은 오직 눈앞, 자신의 음식에만 집중한다. 식판에 따뜻하지 않은, 식은 국만이 담겨 있는 것은 그렇기에 상징적이다.



러시아의 전통 빵, 흘레브는 딱딱하다. 흑밀과 다른 곡물을 섞는 비율에 따라 달라진다 해도, 태생적으로 곱게 정제된 밀가루로 만든 빵보다 부드러울 수가 없다. 이반이 빵을 모자 속에도 숨기고, 베개 아래에도 숨기고, 빵을 품은 채 하루 종일 돌아다녔음에도 납작해지지도 않았던 것을 보면 굴라크에서 배급되었던 빵은 흑밀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던 것이 분명하다. 

딱딱한 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러시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흘레브가 러시아의 주식이 된 이유. 정제하지 않은 흑밀빵이 싸니깐. 

그리고 무엇보다, 러시아의 농민들에게는 페치카가 있으니깐.

페치카. 러시아의 전통 난로.

18세기에 들어서면서 귀족들 사이에서는 음식을 1차, 2차, 3차로 코스별로 나누어 먹는 방식이 유행했지만 그러한 풍요로움은 어디까지나 귀족들의 것이었다. 러시아의 농민들은 페치카에서 끓여낸 따뜻한 수프, 혹은 죽을 빵과 함께 먹는 것이 일반적인 식사였다. 그러나 귀족들 역시, 코스 중 가장 먼저 따뜻한 수프에 빵을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한 귀족들의 수프 역시, 페치카에서 만들어졌다. 

집 한가운데 자리 잡은 페치카는 러시아 인들에게 단순한 난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러시아의 혹한을 견디게 해 주는 필수품이었으며, 따뜻함의 상징이었다. 차가운 흑밀 빵은 페치카에서 데워지는 수프나 죽과, 호밀 우유와 함께 뒤섞여 사람들의 속을 따뜻하게 데워 주는 음식이 되었다. 또한 페치카에서는 블리니(blini)가 구워졌다. ‘러시아인의 일생과 시작과 끝에는 블리니가 있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사랑받는 러시아의 팬케이크. 새 생명이 태어나는 봄을 축복하는 마슬레니차(Maslenitsa) 축제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페치카가 만들어내는 따뜻함.

그것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따뜻한 수프에 빵을 먹을 수 있는 하루가 이어지고 있음을, 때로는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페치카 앞 식탁에 둘러앉아 커다란 흑밀빵을 썰어 나누어 먹는 식사.

추운 방, 침대에 혼자 앉아 흑밀빵을 씹어 삼키는 식사.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를 읽다 보면 배가 고파진다. 육체적인 허기는 아니다. 이반이 겪고 있는 감정적인 허기가, 독자인 내게 흘러 들어오는 기분이 든다. 이반은 끊임없이 오늘은 참 배부른 하루라고, 괜찮다고 말하는데도 그렇다. 이반이 혼자 앉아 빵을 씹는 방이 환해지도록 불을 피우고, 따뜻한 우유를 끓여내고 싶어지는 것이다. 

우유를 건네주며 이반에게 빵을 나누어 먹자고 하면, 이반은 분명 고개를 끄덕여 줄 것만 같다. 잠깐 망설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렇게 해 줄 것만 같다.

괜찮지 않은 하루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여본다. 주말에 블리니는 아니더라도, 김치전이라도 부쳐서 먹자.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놓고, 책을 읽는 것이다. 친구를 불러 함께 뒹굴면 더욱 좋다.

하지만 당장 주말이 오지는 않으니깐, 밥이라도 천천히 먹어 보는 건 어떨까. 삼각 김밥이라도, 꼭꼭 씹어 삼키는 것이다. 이반이 딱딱한 빵을 천천히 씹어 먹었듯이, 그 행위만으로 좀 더 포만감이 들 것이다. 그 포만감으로 철장 안에서의 하루를 버티며, 상상하는 것이다.  

나만의 페치카에 불을 붙이고, 따뜻함이 피어오르는 상상.

주말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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