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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13. 2021

먹는 위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시나몬 롤빵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 날, 나는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망설였다. 

타인의 슬픔과 마주할 때, 반응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바로 위로의 말을 건넬 것이고, 누군가는 쭈뼛거리며 쉽사리 위로의 한마디를 꺼내지 못할 것이다. 후자의 사람이, 그 감정에 공감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감하기에,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 

위로의 말을 건네기란 늘 힘들다. 이 사람의 슬픔을, 감히 내가 말로 끄집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뻔한 위로의 말은 오히려 상처를 키우지는 않을까, 쉽사리 말을 고를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다. 무엇이든 건네서, 덮어주고 싶은 마음만은 굴뚝같으니깐. 

몸이 추울 때가 있다면, 마음이 추울 때도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마음이 얼어붙은 사람들이 나온다. 하워드와 앤. 두 사람의 아들은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한다. 가벼운 사고인 줄 알았던 사고는 아이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은 망연자실한다. 그 와중에,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예약했던 빵집에서는 계속 전화가 온다.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세상을 떠난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말이다. 

사흘 후, 앤은 빵집에 찾아간다. 그리고 외친다. 우리 아들이 죽었어,라고.

빵집 주인은 말한다. 용서해 달라고. 그리고 하워드와 앤을 앉히고, 빵을 내온다. 막 오븐에서 꺼내, 아직 아이싱도 굳지 않은 따뜻한 시나몬 롤빵을.




동글동글, 아이싱을 듬뿍 올리고 있는 시나몬 롤.

이 시나몬 롤빵을 처음 만든 곳은 스웨덴이었다. 스웨덴에서는 10월 4일을 kanelbullens dag, 시나몬 롤의 날로 정해 기념행사를 할 정도로, 시나몬 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뿐만이 아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 등, 대부분 북유럽 국가에서 시나몬 롤은 사랑받는다. 북유럽의 겨울은 길고 춥다. 시나몬 롤은 이 추위를 녹여주기에 더없이 좋은 빵이다. 과자빵 위에 중탕한 버터를 바르고, 다시 계핏가루를 섞은 설탕을 뿌리기에 찐득할 정도로 달콤하고, 하나만 먹어도 속이 든든해진다. 

특히 시나몬 롤의 무기는 향기다. 추운 공기에 퍼지는 달콤한 시나몬 향기.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핀란드 사람들을 식당 앞으로 이끈 것 역시 시나몬 롤의 향기였다. 시나몬과 설탕을 섞어 태운 향기는 그렇게나,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마법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시나몬 롤빵은 북유럽에서만 인기 있는 것이 아니다. 북미 지역에서도 막강한 인기를 자랑한다.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시나몬 롤빵 체인점인 ‘시나본 Cinnabon’이 미국 북부인 시애틀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800년대 중후반부터 북유럽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주를 시작했는데, 시애틀 역시 그중 한 곳이었다. 

객관적으로 빵집 주인은 잘못한 것이 없다. 빵집 주인은 아이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주문받은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는 손님에게 케이크를 찾아가라 전화를 했을 뿐이다. 사흘간 대금도 지불하지 않고, 찾아가지도 않는 케이크를 말이다. 

그러나 빵집 주인은 사과를 한다. 빵집 주인의 사과는 사실, 사과가 아니다. 그것은 절망에 빠진 부부에게 건네는 필사적인 위로다. 빵집 주인은 하워드와 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중년의 남자에게 찾아온 회의와 무력감, 외로움에 대하여. 오랜 시간 아이 없이 지내온 삶에 대하여. 

그럼에도 빵집 주인은 말한다. 빵을 굽는 것이 직업이라 다행이라고. 그것은 사람들의 삶에 꼭 필요한 직업인 데다, 가게는 좋은 냄새로 가득하니깐. 당장 힘들더라도,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니 버티라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하워드와 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롤빵을 먹은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낀다. 그리고 알게 된다. 롤빵이 따뜻하고 달콤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은 빵집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먹을 수 있는 만큼 먹는다. 아침이 되어 날이 밝을 때까지, 가게를 떠나지 않는다.

갓 구운 롤빵이라도 좀 드셨으면 싶은데. 드시고 살아내셔야죠. 
이럴 땐 먹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거든요.     


소설의 마지막 구절을 읽는 순간 어쩐지 알 수 있다. 앤과 하워드는 분명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때로는 누군가가 건넨 따뜻한 빵 한 조각도 위로가 된다. 그것에 진심이 담겨 있다면. 서툴더라도, 두렵더라도, 망설임 끝에 전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시나몬 롤빵이 될 수도 있다. 

장례식이 끝나고, 한 달여가 지나서 친구를 다시 만났다. 나는 친구에게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집을 선물로 주었다. 커피 향이 피어나는 카페 안에서, 나와 친구는 마주 앉아 케이크를 나누어 먹었다. 그 카페에는 시나몬 롤빵이 없었고, 나와 친구는 약속했다. 언젠가 함께 시애틀에 가서, 커피와 시나몬 롤빵을 먹자고. 별 거 아닌 이야기와, 언제 지켜질지 모르는 약속을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불확실한 약속은 때로, 미래가 될 ‘언젠가’를 기다릴 만큼의 에너지가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 된다. 

그날 친구와의 약속은 아직까지 지키지 못한 채이다. 친구는 이듬해 혼자 시애틀 여행을 떠났다. 돌아와서 내게 여러 장의 사진과, 커피 원두를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한국에 ‘시나본 Cinnabon’ 이 다시 들어왔음을 기뻐했다. 당장 먹으러 가자고 의기투합했고, 시나본을 사서 공원 벤치에 앉아 나누어 먹었다.

나와 친구가 나누어 먹은 롤빵은 따뜻했다. 나는 그때 정했다. 언젠가 시애틀에 가서, 롤빵에 커피를 마실 때 그 온기를 반드시 기억하겠노라고.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에 그 온기를 기억 어딘가에서 꺼내어 툭툭 털어 보겠다고. 이 따뜻함은 내가 시애틀까지 가서 이때를 위해 쌓아 놓았던 것이라 생각하면, 좀 더 용기 내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갓 구운 롤빵을 건네는 마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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