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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27. 2021

비밀을 털어놓는 밤에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주현절 빵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다. 

비밀은 타인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기에 비밀이다. 숨겨야만 하는 은밀한 사실. 그러나 무엇이든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원한다.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우연히 참가하게 된 술자리에서 한 남자가 신나게 떠드는 것을 들었다. 그는 술을 마시면서 내내, 전 여자 친구의 비밀 이야기를 온 술자리에 퍼뜨렸다. 나한테만 털어놓는다고 하더라니깐, 라는 수식어를 자랑처럼 붙여가면서. 술이 그렇게나 맛없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그 남자를 ‘활달하고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술자리 이후 바뀌었다. ‘섬세하지 못하고 예의 없는’ 사람으로. 그 후로 그를 만난 적이 없다. 

사람은 누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게 되는 걸까. 

여기 한 아가씨가 있다. 이름은 티타. ‘막내딸은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전통을 가진 집안의 막내딸이다. 즉 티타는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결혼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을 가질 수도 없으며,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요리를 배우며 집안에만 있어야 한다. 그런 티타에게 찾아온 사랑, 페드로. 페드로는 티타와의 결혼을 허락받지 못하자, 그녀의 곁에 있기 위해 티타의 첫째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한다.

한 집에서 생활을 시작한 페드로와 티타는 사람들 몰래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 비밀을 아는 것은, 어릴 적부터 티타를 길러 준 유모, 나차 뿐이다. 티타는 나차에게만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사랑을 털어놓고 상의한다. 그러나 나차가 세상을 떠나고, 티타는 혼자가 된다. 짊어진 비밀의 무게에 점점 짓눌려가면서. 

누군가의 비밀의 경중을 함부로 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타인에게는 별 거 아닌 비밀도, 당사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비밀일 수 있다. 때로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려 상대를 상처 입히고, 혹은 상처 입기도 한다. 너에게만 털어놓는 거야, 하는 조심스러운 문장으로 시작된 고백. 그 문장에 비해 아무래도 별 것 아닌 것 같아 가볍게 흘려들었던 말들. 그 비밀을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아차, 싶지만 애써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별 것 아닌 비밀이었는데 뭘, 하는 말로 미안함을 희석시킨다. 비밀을 폭로당한 상대의 처참함은 보지 못한 척한다. 고작 그런 일로 사과하기에는 귀찮으니깐. 혹은 상대가 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깐. 소문이란 아주 빠르게 퍼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흘려보낸다. 그 순간, 그는 단순히 타인의 비밀을 깨부순 것이 아니다. 그는 비밀을 털어놓은 사람의 소원마저 파괴한 셈이다.

이 비밀을 털어놓는 너만은, 내 편일 것이라 믿는 보이지 않는 소원을.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티타는 주현절 빵을 만들며 한탄한다. 빵에서 인형을 꺼낸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고 곧이곧대로 믿었던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고. 


주현절 빵 Rosca de reyes.

주현절(主顯節, Epiphany)은 예수의 출현을 축하하는 기독교의 행사 일을 뜻한다. 전통적으로 1월 6일이나, 나라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한다. 멕시코에서는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찾아온 날로 그 뜻을 정의하고 있는데, 이 날 먹는 빵이 로스카 'Rosca de reyes‘이다. 크고 둥그런 빵에 6개의 인형을 넣고 친지들이 모여 나누어 먹는데, 인형을 찾은 사람에게는 1년간 행운이 깃들게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전통은 멕시코 만이 아니라 프랑스에도 존재한다. 프랑스에서는 주현절 날 갈레트 데 르와(Galette des Rois)를 먹는데, 이 안에도 누에콩이나 사기로 만든 작은 인형인 페브(Feve)를 넣는다. 페브를 찾아낸 사람은 왕이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소원을 빌 수 있게 된다.

두 나라의 주현절 빵이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된 것은 멕시코가 각종 열강의 간섭을 받아야 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스페인의 식민지로 약 300여 년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1800년대, 독립운동이 시작된 후에도 미국, 프랑스, 영국 등과 전쟁을 치렀다. 원래는 멕시코의 영토였던 캘리포니아가 미국에 넘어간 것도 1848년, 19세기의 일이었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멕시코에 머물렀고, 그들의 음식은 자연스럽게 멕시코 음식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프랑스 과자는 지배층이 즐겨 먹는 고급스러운 과자라는 인식이 강하였기에 동경과 미움,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1828년 일어난 ‘생과자 전쟁’은 이러한 역사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생과자 전쟁’ 은 이런 사건이다. 1828년, 멕시코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이때 멕시코 장교들은 프랑스 국립 과자 전문점을 찾아가 기물을 파손했다. 이 소동은 곧 프랑스 상점 대다수로 번지게 되고, 프랑스 상인들이 손해보상을 요구한다. 이 사건은 프랑스에까지 건너가고, 프랑스는 정부적인 차원의 보상을 멕시코 정부에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는 오히려 프랑스인들에게 자국으로 떠나라는 반응을 보이고, 이에 프랑스는 멕시코에 전쟁을 선포한다. 프랑스 함대는 멕시코의 San Juan De Ulua 요새를 공격, 멕시코에 항복 선언을 받아낸다. 과자가 전쟁을 불러온 셈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사이가 안 좋은 이웃의 빵이라도, 맛있는 것은 맛있다. 평생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이인 듯 보여도 소원을 빌고 싶은 마음은 같다. 그 소원에, 마음에 품고 있던 비밀을 살짝 집어넣는 것도 말이다.


티타가 인형을 찾아냈다면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이 비밀스러운 사랑을 끝내게 해 달라고? 혹은 시간을 되돌려 페드로와 사랑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나차처럼, 비밀을 나눠 안을 누군가를 자신에게 보내어 달리고 빌지는 않았을까. 나차는 티타에게 있어 ‘절대적인 자신의 편’이었다. 그 이유가 나차 역시 티타의 어머니 때문에 사랑하던 사람과 결혼하지 못한 과거 때문이었음을, 티타는 나차의 죽음 후에야 한 장의 사진으로 깨닫는다. 

누군가의 비밀을 들을 때면 주현절 빵 속 인형을 떠올려 보는 게 어떨까. 그 인형처럼 비밀은 비밀이어야만 한다. 인형을 발견한 사람에게만, 은밀한 마음을 전한다. 그 인형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모두에게 내보이며 더럽힌다면 글쎄.

또 다른 과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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