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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10. 2021

푹 주저앉아 버릴지라도

수플레 Sufle : 수플레



이상하게 힘든 날이었다. 힘든 이유라도 명확하면 속이 시원할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문제들은, 충분히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나를 힘들게 할 거라곤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고 안절부절, 인터넷을 껐다가 켰다가, 다른 사람의 여행기만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수많은 열기구를 보았다. 터키 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사진이었다. 언젠가 꼭 가리라 마음먹은 나라. 그러나 갈 타이밍을 잡지 못해 위시리스트에 고이 올려놓은 곳. 한때 ‘터키’가 조금이라도 나오는 소설과 영화를 무척 열심히 찾아보며 대리만족을 했었다.

그 사진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수플레가 먹고 싶어졌다. 

그것도 소설 『수플레』 표지에 그려진 것 같은, 둥그런 라메킨 ramekin에 담겨있는 고전적인 수플레가. 수플레 팬케이크로는 만족이 안 될 것 같았다. 열심히 수플레를 파는 가게를 검색했다. 하지만 라메킨에 그대로 담겨 나오는 수플레를 파는 곳은 거의 없었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파는 수플레는 멋없이 종이로 감싸져 모양이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꼭, 라메킨에 담긴 것이 먹고 싶었다.

결국 만들어 보기로 했다. 천 원 숍에서 라메킨과 비슷한 그릇도 사 왔다. 더듬더듬, 서툴게 레시피를 따라 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달걀흰자를 거품 내는 것부터가 익숙하지 않았던지라, 수플레가 아닌 달걀찜이 만들어졌다. 그래도 스푼으로 떠먹을 순 있었다. 그릇 덕분에, 달걀 프라이가 되지는 않았으니깐. 그러니깐 그릇 덕분에, 완벽한 실패는 아니게 된 셈이었다.

수플레의 진짜 힘은 이 라메킨에 있구나, 싶었다.

설령 수플레가 주저앉더라도 괜찮다. 가운데가 가라앉을 뿐, 전체가 망가지는 일은 없다. 수플레를 넣고 굽는 라메킨 덕분이다. 세라믹이나 유리로 만든 작은 그릇을 통칭하는 라메킨. 수플레는 라메킨에 담겨 오븐 안을 빙글빙글 돈다. 라메킨이 수플레를 받쳐주고 있기에, 수플레는 마음 놓고 익어갈 수 있다. 가운데가 아주 예쁘게 부풀지는 않더라도, 전체가 무너져 내릴 걱정은 없다.

힘이 들었던 이유는, 이 라메킨처럼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 줄 것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라메킨에 담겨 있는 수플레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걸까. 내 라메킨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실패작을 한 입 떠먹었다. 이외로 맛은 썩 나쁘지 않았다. 수플레라기보다는 달걀찜에 가까운 맛이 났지만 말이다. 



수플레. ‘부풀어 오른(puffed up)’ 이란 뜻을 가진 디저트. 달걀흰자 거품을 이용해, 반죽을 부풀려 만든다. 수플레를 만드는 과정을 본 적이 있는데, 흰 달걀 거품을 휘젓는 모습은 그 자체로 무척 우아해 보였다.

수플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814년에 발견된다. 프랑스의 셰프였던 루이 우드(Louis Ude)의 저서 『프랑스 요리사 (The French Cook)』에서, 그는 수플레를 ‘경제적인 요리’라고 소개했다. 다른 디저트에 비해 달걀노른자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재료비를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셰프들 사이에서는 만들기 까다로운 요리로 취급되었다. 수플레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얼마나 예쁘게 부풀어 올랐는가, 로 성공이 결정되는 디저트였기 때문이었다. 맛에는 별 차이가 없더라도, 만들어진 모양새로 셰프의 솜씨가 바로 판가름되었기에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수플레에는 ‘부풀어 오른’ 이란 의미만이 있는 건 아니다.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나는 이쪽이 더 마음에 든다. 

숨을 불어넣다.

수플레를 만드는 시간 동안, 완성된 수플레가 푹 꺼질지 아니면 둥그렇게 원하는 모양대로 나올지, 조마조마했다. 소설 속 사람들이 오븐 앞에 서 있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내 손이 닿은 무언가가, 무사히 오븐 밖으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그 순간 나는 수플레 밖에서, 마음으로 수플레에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소설 속 사람들에게 수플레는 도전이었다.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만들기에 까다로운 과자. 누구도 한 번에 성공하지 못했다. 요리를 가장 잘하는 페르다조차 한 번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수플레를 만든다. 꼭 성공할 것을 기대해서는 아니다. 그들에게 수플레를 만드는 것은,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의 실패가, 실패가 아닌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계단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수플레』의 작가 애슬리 페커는 터키 이즈미르에서 태어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때문에 작가의 작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수플레』에도 뉴욕에 사는 필리핀계 릴리아, 삶의 전부였던 아내를 잃은 파리의 마크, 병에 걸린 나이 든 어머니를 모시고 지내야 하는 이스탄불의 페르다까지.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수플레에 자신의 인생을 담아낸다. 그 다양성에는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시선은, 작가만의 단단한 라메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나는 또 이유 없이 힘들어할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면 오는 우울증처럼, 차마 계절의 탓도 하지 못하고 이유를 찾아 헤매다 또다시 누군가의 여행 사진으로 마음을 달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또다시, 수플레를 먹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 라메킨이 있었지,라고 지난번 실패한 수플레를 떠올리며 한 번 더 만들어 볼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야말로 터키를 가야지, 하고 바로 티켓을 사 버릴지도 모르겠다.

이스탄불 한 곳에서 먹는 수플레는 어떤 맛이 날까. 

그 언젠가를 꿈꾸며, 나는 달걀찜 맛이 나는 서투른 수플레 한 그릇을 먹어치워 갔다. 

수플레를 통해 자신의 삶에 작은 숨결을 불어넣었던 사람들. 

그 숨결이 내 몸 안으로 옮겨 올 것을 기대하며, 수플레의 한가운데를 푹 퍼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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