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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24. 2021

완벽하지 않아도 가족입니다

상큼한 오렌지, 작은 물고기 My Dear Mom : 샤오빙



어쩐지 한 번은 가야 할 것 같은, 그러나 쉽게 마음이 안 먹어지는 것 중 하나.

가족여행.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는 여행이든, 나이 든 부모와 함께 하든 여행이든 가족여행은 힘들다. 육체적으로 힘들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크다. 상대가 타인이라면 웃고 넘어갈 말도, 가족이기에 상처가 되어 가슴에 박힌다. 신기한 것은, 완벽한 가족여행을 해야지,라고 생각할수록 더욱더 엉망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완벽한 가족여행’에서 ‘완벽’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중국 고대 실크로드의 출발점 중 한 곳인 중국 산동성의 주촌. 맥주 축제로 유명한 칭다오 항구에서 3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지금은 5만 평방미터의 고대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 지구가 되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물들 사이로, 고전적인 기법을 사용해 염색한 색색의 천이 흩날리는 거리를 걷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주촌의 명물은 단연 쑤삥이다. 화덕에서 구워낸 빵으로, 샤오빙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샤오빙을 주촌에서만 먹는 것은 아니다. 샤오빙은 중국에서 아침식사로 널리 사랑받는 음식이다. 한나라 시대, 서역과 교역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샤오빙은,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지역에 따라 크레페처럼 고기나 야채 등을 말아먹기도 하고, 파이처럼 안에 고기를 넣어 기름에 튀기기도 한다. 주촌에서는 페스트리처럼 겹겹이 구워낸 뒤 고소한 맛이 나도록 깨를 뿌리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아침식사로 많이 먹기 때문에, 노점에서뿐만이 아니라 포장 제품으로도 많이 판매한다. 맞벌이 집에서는 아침에 포장된 샤오빙을, 아이들이 직접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황베이쟈의 소설 『상큼한 오렌지, 작은 물고기』의 띠디도 목요일 아침마다 쑤빙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띠디는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소년이다. 시골에서 아빠와 단 둘이 살던 띠디는,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10년 만에 처음으로 엄마와 만나 함께 살게 된다. 도시에서의 생활도, 엄마와 단 둘이 지내는 생활도 띠디는 낯설기만 하다. 

낯설기는 띠디의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심야 라디오 디제이 일을 하는 띠디의 엄마는 갑자기 생긴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알지 못한다. 심지어 그녀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띠디의 엄마는 전날 미리 아들의 아침식사를 차려 놓는다. 월요일은 우유와 바나나, 잼을 바른 빵. 화요일은 파운드케이크나 롤 케이크. 목요일은 만두나 쑤빙. 만두나 쑤빙을 차려 둘 때면, 띠디의 엄마는 반드시 메모도 남긴다. 만두와 쑤빙을 전자레인지에 몇 초 데워 먹어야 하는지 적어 두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아침식사는, 타인이 보기에는 불성실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띠기의 엄마가 자신의 식사도 챙기지 못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상태였음을 되새겨보면, 이 식사가 다르게 보인다. 띠디의 엄마는 서툴러도 최선을 다해 아들에게 다가가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띠디는 처음 몇 번, 메모에 적힌 쪽지와는 다르게 멋대로 시간을 설정해 전자레인지에 쑤빙을 돌린다. 그러나 곧 깨닫는다. 엄마를 믿고, 엄마가 적어준 시간대로 쑤빙을 데우는 것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임을.




띠디의 엄마는 완벽하지 않다. 사회에서 ‘좋은 엄마’라고 정의되는 범주에서 보면 그렇다. 그녀는 아들을 세심하게 보살피지 못하고, 결혼을 노리고 접근한 남자가 띠디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해 큰 부상을 입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띠디의 엄마는, 띠디가 온 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우울증 상담을 받기 시작하고, 띠디와 시간을 보내려 애쓰면서도, 자신의 우울증이 띠디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워 오히려 띠디를 멀리해야 하나 고민한다. 

띠디도 마찬가지이다. 띠디는 공부를 잘하지도 않고, 엄마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다. ‘좋은 아들’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사회가 정의해 놓은 좋은 아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아이이기에 실수를 거듭한다. 

그래도 띠디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늘 오렌지 향수를 뿌리는 엄마 때문에, 띠디에게 오렌지는 엄마의 냄새로 기억된다. 그래서 띠디는 오렌지를 좋아하게 된다. 

쑤삥을 맛있게 데우기 위해서는 시간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띠디의 엄마가 정한 것이다. 누군가는 좀 더, 누군가는 좀 더 데울 수도 있을 테니깐. 

빵을 데우는 시간조차 완벽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단지 그것이 엄마가 정해준 것이기에, 완벽하다고 믿는 사랑이 있을 뿐.

가족여행은 어렵다. 완벽한 가족여행은 더욱 어렵다. 그러니 완벽하기보다는, 서로 아끼는 여행을 해 보는 게 좋겠다. 실수하고 서툴더라도, 샤오빙처럼 어떤 맛이든 감싸 안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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