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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05. 2021

세상을 살아가게 해 주는 불빛

뉴욕 제과점 New York Bakery : 카스텔라


오랜만에 졸업한 학교에 갈 일이 생겼다. 일을 마치기 전부터, 빵집에 들릴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학교 근처에 있는 제과점은 천 원에 빵 세 개를 파는, 작은 가게였다. 꽈배기와 단팥빵, 크림빵을 사서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웬걸. 제과점은 없어진 채였다. 그 자리에는 프랜차이즈 분식집이 들어와 있었다. 그 제과점에서 파는 빵이 엄청나게 맛있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무척이나 섭섭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천 원에 세 개짜리가 아니라, 하나에 천 원 하는 카스텔라도 먹어볼 걸. 

그런 후회를 하며 뒤돌아섰다.

네모난 벽돌 같은 모양에, 갈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져 있던 폭신폭신한 빵. 카스텔라.

김연수의 단편 소설 [뉴욕 제과점]에도 카스텔라가 나온다. 카스텔라의 타서 딱딱한 부분을 ‘기레빠시’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단팥빵도 크림빵도 질리지 않았던 주인공이 유일하게 질렸다던 빵. 카스텔라. 한 번도 빵집 자식이었던 적이 없던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주인공의 친구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었다. 배가 불렀네,라고. 카스텔라를 ‘질리게 먹었다.’는 것은, 주인공이 ‘빵집 아들’이었음을 무엇보다 잘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카스텔라는 한국에 가장 먼저 소개된 빵이기도 하다. 1720년 청나라 연행사 일행으로 갔던 이기지는 베이징에서 먹었던 서양 떡에 대해 『일암연기(一庵燕記)』에 기록하였다. 그 기록에 의하면 그 ‘서양떡’은 부드럽고 달았으며,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았다고 한다. 사탕과 계란, 밀가루로 만들었다는 이 ‘서양떡’을, 일행 중 한 명이었던 이시필은 조선에 돌아와 재현해 보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결국 카스텔라가 한국에 선보이게 된 것은 19세기부터였다.  

한국에 동네 빵집이 급증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정부가 나서서 혼식을 장려하면서부터였다. 상미당이 ‘삼림산업 제빵 공사’로 규모를 확장하고, 공장에서 빵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60년대였다. 공장제 양산형 빵과 동네빵집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전쟁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삼파전으로 번졌다.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싸움에 끼어든 것이다. 동네 빵집은 그중에서도 자본 면에서 단연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 「뉴욕 제과점」에 나오는 ‘뉴욕제과’처럼 빵을 진열하는 케이스까지 가게 주인이 직접 사는 동네 빵집은 하나 둘 문을 닫게 되었다. 그나마 지방의 대표 빵집이 하나씩은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 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대전의 ‘성심당’이나 광주의 ‘공룡제과’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말하면 그 정도의 유명세를 얻지 못한 수많은 개인 빵집들이 프랜차이즈에 밀려 사라졌음을 뜻하기도 한다. “대전의 역사 깊은, 유명한 빵집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는 질문에 성심당 한 곳 만이 아닌, 수십 개의 빵집 이름을 댈 수도 있었던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는 소비자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 동네의 작은 정육점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대형 마트 안 정육 코너가 모든 것을 담당하게 된 것과 비슷한 흐름을 빵집도 겪었다. 요동치는 경제 발전과 급작스러운 생활의 변화, 밀려오는 자본이 바꾸어 놓은 골목 안 풍경이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는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집 앞에 있던 빵집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이러한 뜻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며 코를 킁킁거리게 만들었던 기분 좋은 냄새가 사라진다. 밀가루를 옮기던 빵집 주인과의 눈인사도 사라진다. 우울해 보이니 덤이라며 하나씩 넣어주던 꽈배기도, 그 인심을 베풀 수 있는 주인의 존재도 사라진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는 함부로 덤을 줄 수 없다. 룰이 존재하니깐. 그 룰은 안정적이며 동시에 차갑다. 



사라진 빵집에서 유독 카스텔라가 생각났던 이유.

그건 아마, 따뜻해 보이는 카스텔라의 샛노란 색깔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릴 때 보기에, 카스텔라는 빵인지 케이크인지 그 정체가 모호한 존재였다. 케이크처럼 크림이 올라가 있지도 않고, 케이크 진열대에 들어가 있지도 않으니 빵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푹신함과, 빵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샛노란 색은 오히려 케이크라고 불려야 어울리지 싶었다. 특히나 어릴 적 집 근처 빵집에서 팔았던 카스텔라는 나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는데, 네모난 모양이 아닌 컵케이크 모양으로 둥글었기 때문이었다. 모양새까지 영락없는 케이크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카스텔라는 큰 분류로는 ‘케이크’에 들어가는 게 맞다. 시폰 케이크의 사촌쯤 되는 게 카스텔라고, 제과제빵에서도 엄연히 ‘제과’ 쪽에 분류되어 있었다. 그러나 과자와 빵, 케이크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몰랐던 어린 때에 카스텔라는 ‘빵’이었다. 제과점의 ‘빵’ 코너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으니깐. 슈퍼마켓에서 파는 공장제 빵 중 ‘카스텔라 빵’이 있었기에 그 인식이 더 강하게 자리 잡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빵이든 케이크이든, 카스텔라의 샛노란 색은 따뜻하고 예뻤다. 별을 그리던 노란 크레파스를 그대로 곱게 갈아, 맛있게 만든 듯한 색. 소설 「뉴욕 제과점」의 주인공이, 삶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마다 꺼내 보게 된다는 과거의 불빛. 추억 속에서 조금씩 밝혀진다는 불빛을 닮은 색. 카스텔라의 노란색은 그렇게,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련함을 가지고 있다.

며칠 전, 좋아하던 빵집이 몇 개월 후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홍대를 상징하던 R 제과점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던 사건이 퍼뜩 떠올랐다. 지금도 나는, 그 자리에 있는 커피 전문점이 낯설다. R제과점이 본래의 위치가 아닌,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는 골목 쪽에 다시 문을 열었을 때 한달음에 달려간 것은 그리움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카스텔라가 케이크에 더 가까운 존재라는 것도 알고, 하나에 천 원쯤 해도 망설이지 않고 사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도 정든 곳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일에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다. 

단골 빵집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정든 동네 빵집이 추억으로 바뀌지 않도록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모든 추억이, 그리움 묻은 장소가 사라져 버린다면 얼마나 쓸쓸할까. 한 자리에 굳건히 서서, 추억과 함께 빵을 구워내주는 빵집.

그런 빵집에서 사 온 카스텔라를 반으로 쪼개어, 우유에 담가보고 싶어 진다. (*)









[아홉수 가위]는 안전가옥의 쇼-트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의 매력 중 하나!!

사이즈가 콤팩트해서 부담 없이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거운 거 싫어해서 에코백만 들고 다니는 제가 들고 다니는 몇 안 되는 시리즈 중 하나랍니다.

물론 찬바람이 불면 따듯한 이불 안에서 귤 까먹으면서 읽는 소설이 제일이지만 말이에요. 근데 [아홉수 가위]가 또 예쁜 귤색이지 뭐예요...? 이런 게 운명.


가지고 다니기에도 좋고, 귤 먹으면서 읽어도 좋은 [아홉수 가위]를 만나보세요.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1154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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