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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는 쿠키 Oct 05. 2019

5. 중소기업 정규직에서 대기업 계약직으로

제네럴 일렉트릭

대기업은 대기업이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우리는 일보다 쿠키씨 건강이  중요해요" 사수의 말씀 한마디에 바로 시작하게  필라테스. 다들 점심시간 조금 일찍 나가서 운동하는 분위기가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선진문화에 빠르게 적응했다.


당시 GE에서 십여 년 근무하고 계셨던 내 보스, 본인은 P&P가 좋아 이곳에 계속 있는다고 했다. People and Proces. 좋은 분들은 어디에나 꼭 계시지만, GE만의 다른 점으로는 젊은 연령층의 구성원이었다. 주 고객이었던 군수사 관계자분들도 다른 업체와의 다른 GE의 장점으로 젊은 분위기와 효과적이고 빠른 일처리를 칭찬하셨다. 중소기업에서의 한계였던 내 성별은 이곳에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성 임원분들도 많았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성별이 아닌, 개개인의 의지와 성과로 평가받는 분위기가 처음엔 꽤나 낯설었다.





내 자리는 새로 생긴 자리였고, 내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1년 계약직, 그리고 1년 연장 (최대 2년)의 계약직 자리였다. 나로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면접 당시 5개년 계획을 묻는 질문에서 '결혼해서 런던에서 일하고 있지 않을까요?'라는 솔직 대범한 발언을 했음에도 계약직 자리에 부담 없는 사람이기도 하고, 또 다른 요소들이 잘 맞았는지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솔직하게 나눈 내 인생계획과 (영국으로의 이주) 그들의 채용 계획 (최대 2년 계약직)이 적당히 잘 맞물려 내게 있어 보다 유동적인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비록 나는 계약직으로, 정규직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GE만의 유명한 인재양성 교육에 참여할 기회는 적었지만, 내 이력서가 외국의 유명기업으로 업데이트되어 외국의 더 큰 무대로 진출(?)할 나의 계획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루는 내 회사원증 (출입증)의 색깔이 내 사수와는 다르단 걸 발견했다. 그분의 회사원증은 파란색 나는 초록색 그리고 내 회사원증에는 CONTRACTOR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맨 처음에 '아 내가 계약 관련 일을 해서 이렇게 직군별로 명시되어있는 건가'하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가소로운 생각이지만, 사실 그때 나는 살짝 진지하게 고민했다. '한국 사람으로서 미국 방산업체에서 일을 한다?'. 애매한 애국심으로 "회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파트 많이 팔고, 가능한 한 정비 많이 하는 게 이익이고, 한국 사람 입장으로는 우리 공군 전투기 엔진이 잔고장 없이 잘 운용되고, 또 파트 정비가 최소한이 여야지 국익과 국가 안보에 이바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쓸데없어 보이는 고민을 했다. 불타오르는 애국심의 한국인과 외국 방산업체의 직원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시던 평소 내가 잘 따르는 멘토님께선 닭갈비를 뜯으시면서 아주 깔끔하게 조언해주셨다. "하자관리만 잘해도 됩니다"




대구 군수사에서 열렸던 국외 상업 하자 구상 촉진회의에 참석했다. 본사 팀과 확인해 봤을 때 진행된 게 많이 없어서 말씀드리기 좀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벌써 내 차례가 되었다.


"방산업에 종사하는 '한국 사람'으로 미국 사기업에 이직할 때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고민하고 있으니 주변에서 하자관리만이라도 잘하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시 한번 본사와 확인해보고 열심히 팔로우업 하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하신 청과 군 관계자분 모두 박장대소. 그리고 꾸짖음 전에 박장대소할 수 있는 이유는 존재했다.


대기업은 대기업이다. 이름값을 한다고, 국내 협력업체와 우리의 주 고객인 군 관계자분들 사이에 그동안 GE가 쌓아 온 신뢰와 실력 그리고 명성이 탄탄했고 믿을 수 있는 존재로 이미 자리매김한 사실이 중요했다.


A brand is more than just a logo or trademark. Boiled down to the most fundamental, a brand represents a promise, an expectation and a relationship. (출처 미상)


 빛나는 이름의 회사를 다니는 나도 덩달아 빛나 보였다. 당시 유명 호텔의 지배인들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양 손 가득 케이크를 들고 인사를 하러 사무실을 방문하곤 하셨고, 보안상의 이유로 같은 회사이지만 다른 부서와의 차별을 위해 우리 사무실에만 도어락이 있는 게 괜히 우쭐하곤 했다.


2019년 싱가폴, 조언을 구하러 만나 뵙게 된 이스라엘 회사 지사장님께서도 내가 싱가폴에서 (열심히 한다는 가정하에) 잘 될 수 있는 세 가지 이유 중의 하나로 GE 같은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에 1년이라도 다녔다는 점을 손에 꼽으셨다. 그만큼 네임벨류의 중요성을 느꼈다. 앞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에서도 '용의 꼬리가 될 것이냐, 뱀의 머리가 될 것 이냐'라는 질문은 항상 나를 따라다닐 것 같다.  


사실 GE에서의 1년을 글로 쓰면서 어려움을 조금 많이 느끼고 있다. 감사한 일도 많았고, 서러운 일도 적진 않았는데 일단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글로 넘어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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