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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26. 2019

C. 영어, 영어, 영어

유엔에서 일하세요? 영어 잘하시겠네요! 

소제목과 같다, 유엔에서 일한다고 하면 처음으로 듣는 질문이 유엔이요? 그러면 영어 잘하시겠네요? 


영어를 처음으로 배운건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가 혹은 그 이전에 학교에 영어 시간이 있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영어 선생님은 교포 원어민 선생님이었고, 나는 알파벳을 몰랐다 내가 듣는 수업이 영어라는 것조차 몰랐다. 한 사람씩 문장을 읽어보라고 하는데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몇 번을 다른 애들이 읽는 것을 듣고, 나는 한국어로 영어 문장 아래에 발음을 쓰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하우 아우 유우 이런 식으로. 그리고 엄마가 5학년 때인가 영어 과외를 보냈다, 뒷동에 사는 외국에서 살다 온 선생님네 였다. 그렇게 나의 영어에 대한 애증은 시작되었다. 


언어는, 눈치인 거 같다. 나는 거의 한 달 동안 파슈토/다리어를 쓰는 사무실에서 지내고 있는데, 대충 직원들이 하는 말을 눈치로 알아들을 수 있다. 내가 언어를 배운 것은 아니지만, 말을 하는 뉘앙스나, 분위기로 보아 대충 아, 업무 이야기를 하는구나, 어떤 이야기를 하는구나 짐작을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2년도 그랬다. 물론 그때는 첫해에 러시아어 수업을 일주일에 2번 2시간씩 받아서 조금 더 수월하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2년이 다되어갈 무렵엔 우리 사무실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렇게 않게 간단한 부탁들을 러시아어/우크라이나어로 하였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영어로 답하였다. 러시아어/우크라이나어 들어서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의 숫자가, 말을 할 수 있는 단어의 수보다 훨씬 많았다.  


다시 영어로 돌아와서, 눈치가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거 같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영어 성적이 나를 속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 문법 문제 토익, 토플을 보면 울고 싶다. 아마 내 머리는 영어를 영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거나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해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영어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하였고,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내 적성이 아니라고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가 몰라서 못 설명하는 건 아닌데, 그게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걸 설명해야 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내 영어의 기반은, CSI 과학수사대 1~14 시즌 시청, 크리미널 마인드 1~14 3번씩 시청, 각종 미드로 섭렵된 영어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만 시간 동안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고, 어느 날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그러면 이미 범죄 해결의 달인이라고, 만 시간보다 더 본거 같다고 드라마를..) 


읽고, 듣고, 말하는 것은 글을 쓰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다. 대학원에 가서 처음 에세이를 쓰는데 막막했다. 내가 써놓은 글이 5살짜리가 써놓은 글 같았다. 말을 할 때 쓰는 동사와, 글을 쓸 때의 동사는 달라야 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동사 어휘가 많지 않아서, 글이 마치 5살짜리가 써놓은 거 같았다. 아마 그 시점에 조금 노력했던 거 같다,  명사를 많이 아는 것도 중요했는데, 사실 글의 퀄리티는 동사가 결정하는 거 같다. 아무리 글을 잘 써놓아도 Do, Be로 뒤덮여 있으면, 내 눈에는 덜 전문적으로 보인다. (내 개인적 취향일지도 모른다). 아, 그래서 유엔에서 일해서 영어를 잘하느냐? 그건 아닌 거 같다. 유엔에서 10년 넘게 일한 시니어 매니지먼트에서 작성한 글들을 봐도 종종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들이 쓰여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 문서에서 문서를 쓴 사람이, 정확히 뭐를 원하는지, 뭐를 의도했는 지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완벽한 영어문장으로 아름답고 매끄러운 글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뭐, 세상엔 그런 글을 위해서 영어 감수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닌가. SN을 작성할 때, 잘 쓴 SN이라고 HQ에서 몇 국가 샘플을 보내주었다. 소말리아 SN을 읽는데, 단어가 문장이 청산유수였다, 문장은 더할 나위 없이 매끄러웠으며, 단어의 선택 하나하나가 세련되었다. 그런데, 그걸 다 읽은 우리 팀은, 그래서..?라는 반응이었다. 이건 영어를 잘 쓰는 사람이, 현장의 상황을 배제한 채, 뉴욕의 어느 책상에 앉아서 소말리아의 5개년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우리 SN은 투박했으나 우리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점들이 들어 있었다. 여담으로, 나중에 영어 교정을 받은 분서는 빼먹은 관사, 동사의 시제, 등등의 교정으로 빨갛게 되어서 왔다. 그래서 결론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논리적으로 똑바로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제일 중요한 거 같다. 


- 그래서 영어를 잘하냐고 물으시면, 어.. 글쎄요.. 잘하다를 정의해 주시면 잘하는지 못하는지 답을 해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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