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또 다른 문으로 들어가다

1. 인생황금기

by 유정인

1. 인생 황금기


여든 살이 된 나는

스무 살이나 서른 살 때보다 훨씬 더 쾌활하다.

젊음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견뎌내기도 그만큼 고통스럽다.

- 헨리 밀러(Henry Miller) -


철학자 김형석은 그의 저서『100년을 살아보니』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60세에서 75세로 규정합니다. 이는 한 개인의 감상을 넘어, 서구와 일본의 노년 연구자들 또한 공명하는 지점입니다. 앞선 시기가 치열한 경쟁과 성취의 무대였다면, 이 시기는 축적된 경험이 지혜로 승화되는 전환의 국면입니다. 삶의 본질을 더 투명하게 드러내는 시기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행복은 순간의 쾌락이 아니라 한 생의 완결 속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저물녘 햇살이 산봉우리를 붉게 물들이듯, 후반기 삶은 속도가 아닌 깊이로, 외적 성취가 아닌 내적 의미로 빛납니다.

또한 공자는 예순에 “귀가 순해졌다”고(耳順),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종심:從心所欲不踰矩)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80세 이후는 어떨까요. 공자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후대 유학자들은 이를 삶의 완성과 내면적 자유의 경지로 해석했습니다. 80세는 더 이상 세상의 판단이나 외적 성취에 매이지 않고, 자기 삶을 온전히 돌아보며, 마음의 여유와 평화를 누리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여든 이후의 삶을 다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생의 연장이 아니라, 하이데거가 말한 ‘유한성을 자각하는 존재(Sein-zum-Tode)’로서의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묻고, 그 답을 매일의 삶 속에서 구현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초고령 노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한국에서 초고령 노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 산다는 사실을 넘어, 한 세기의 굴곡을 몸으로 살아낸 증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최빈국의 그늘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폐허를 건너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질곡의 역사를 인내로 견뎌낸 세대입니다. 눈물과 땀으로 버텨낸 지난날에서, 그들은 언제나 가족을 먼저 세우고 자신을 뒤로 미루며 시대를 지탱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든 이후의 문턱에 선 그들은 새로운 질문을 마주합니다.

“남은 생을 어떻게 마칠 것인가?”

이 질문은 삶의 마지막 장에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본질적 물음을 다시금 되새기게 합니다.


누군가는 비로소 자기 삶을 돌보며 내면의 지평을 열고, 또 다른 이는 도전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늦깎이 만학도가 되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도전하고, 미래교육원 사회복지과에 입학한 김정자 여사의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초고령의 나이에도 배움을 향한 열정과 사회적 기여를 향한 의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나이 듦이 곧 소멸이 아님을 웅변합니다.

8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전쟁과 가난 속에서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그녀는, 손톱이 닳을 만큼 일하며 가족을 지켜냈고, 이제는 거칠어진 손에 연필을 쥐고 또 다른 미래를 그립니다. 그녀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였기에 기초 한글부터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2024학년도 수능에 지원하여 83세 최고령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녀의 도전은 ‘여든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응답입니다. 굽은 허리는 시간을 이겨낸 훈장이며, 그녀의 삶은‘배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어납니다. 만학도 김정자 씨의 황금기는 여든에 이르러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늦은 시간일 수 있지만, 그녀에겐 바로 지금이 가장 충만한 순간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초고령 노인은 시대의 고단한 기억을 품은 증인이자, 여전히 현재와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주체입니다. 이들의 삶은 공동체 전체가 지혜를 배우고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정신적 자산입니다.

여기서 한국 사회가 마주해야 할 과제는 분명합니다. 초고령 노인의 삶을 개인의 사적 서사로만 두지 않고, 세대 간 연대와 사회적 배려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노인의 경험은 젊은 세대에게는 교훈이 되고, 노인의 현재 활동은 문화적 자산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