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과 현직, 차기(?) 대통령이 동시에 재판받는 웃지 못할 현실
대통령 탄핵심판 취재는 가혹했다. 유난히도 추운 날씨에 헌법재판소를 챙기느라, 매일 기사를 쓰고 스튜디오 출연하느라 온몸 마디마디가 시큰거리게 몸과 마음이 지쳤다. '선고만 나면 모든 게 편해질 거야'라고 되뇌며 버텼는데, 큰 착각이었다.
최근 대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상고심에서 다수의 예상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상고기각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건만 연장전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대법원장을 탄핵하네 판사를 끌어내리네 소란스럽다. 어느새 문재인 전 대통령도 뇌물수수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기소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같은 법원에서 내란 재판을 받고 있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심지어 한 명은 현직 상태에서 기소됐다-에다가 유력 대선 후보까지 한 시점 같은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이들이 재판을 받으러 올 때마다 법원이 경비를 강화하는 것도 촌극이다. 오죽하면 '대통령 특별법정'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냔 농담도 나온다.
과거, 현재, 미래의 최고 권력자가 동시에 형사재판을 받는게 과연 정상적인 나라인가. 정치는 여의도에서 해야 한다. 타협을 하든 지지고 볶든 정치의 영역에서 끝낼 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유력 정치인의 운명이 사법부에서 정해지고 있다. 법조 기자들의 고통은 오래갈 것 같다.
근본 원인은 정치 양극화에 있다. 요즘 정치인들은 상대방을 협치의 대상이 아닌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이든 경찰이든 고위공직자수사처든 각 진영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수사기관을 동원해 상대방을 파멸시키려 한다. 진짜 죄가 있는 건지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표적이 된 이들은 언젠가 법정에 선다.
이런 정치 행태는 최근의 풍토에선 대중에게 지지받는 것처럼 보인다. 샨토 아이엔가 미 스탠퍼드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엔 상대 정당에 대한 감정적 혐오와 적대감이 심화되고 있다. 이른바 '정서적 양극화'다. 예컨대 공화당 지지자는 민주당 지지자와 이웃에 함께 살기를 거부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심각하게 벌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은 상황이다.
정서적 양극화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인터넷 포털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미디어환경의 변화가 주요하게 꼽힐 것 같다.
신문이나 TV로만 뉴스를 소비하던 시절엔 소위 '메이저 언론'의 영향력이 컸다. 그러나 뉴미디어 환경에선 대형 매체의 기사나 군소 매체의 기사나 소비자 접근성에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 보니 각 언론사들은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념 마케팅이나 자극적인 뉴스를 쏟아낸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과 공생 관계를 형성하거나 정파적 편향이 강한 독자들에 소구 하는 식이다.
이런 미디어 환경에서 정치인 재판은 경마식 보도, 황색 저널리즘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실제로 유력 정치인이 피고인으로 재판에 출석하는 날엔 법원은 유튜버들로 바글거린다. 그들은 각자 유창하고 자극적인 언어로 재판 상황을 실시간으로 타전한다. 정치인에 대한 기소나 유죄판결은 이들에겐 도파민에 다름 아니다. 기성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 불똥은 법관들에게 튀곤 한다. 유력 정치인 재판을 맡는 판사들은 고향부터 출신 학교, 심지어는 사는 집과 가족까지 대중에게 까발려진다. 대중과 언론은 판사의 과거 이력을 열거하고 미래의 판결을 예단한다. 이들에게 재판 과정과 증거는 별 의미가 없다. 자신의 성향에 따라 이미 마음에 드는 결론을 정해뒀기 때문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면 '역사적인 판결'이고, 유죄를 선고하면 '정치개입'이다.
실제로 판사들은 고통받고 있다. 최근 법원행정처의 조사에 따르면 현직 법관의 47%는 특정 사건 재판을 하면서 정부와 대중, 정치권, 언론 등으로부터 외부적 부담을 느꼈고, 이렇게 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70% 안팎이 법원 일을 그만두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답했다.
소수의 판사들 어깨에 나라의 운명을 지우는 것도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내가 조선시대 사또냐'라면서 정치인 재판 도중 사표 낸 판사를 마냥 비판할 건 아니다. 정치를 서초동으로 끌고 오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