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웅의 <88\18>을 중심으로
그걸, 그걸 깜박 잊었습니다
2019년 11월 14일 밤 10시. KBS1은 10월 가을개편부터 방영을 시작한 <다큐 인사이트>의 한 에피소드를 방영했다. 10월 31일, 11월 7일, 11월 14일. 3주간에 걸쳐 ‘아카이브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달고 방영한 시리즈 <모던 코리아>의 3번째 에피소드였다. 10월 31일에 방영된 1부는 80년대 학생운동권의 통일운동을 다룬 <우리의 소원은>, 11월 7일에 방영된 2부는 군사정권 시절 팽창한 재벌기업의 상징인 ‘대우’와 대우의 창업주 김우중을 다룬 <대망>, 3부는 대한민국 대입전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던 93년의 제1회 수능을 둘러싼 맥락을 다룬 <수능의 탄생>이었다. 해당 에피소드가 종료되고 2020년 2월에 방영예정인 4,5,6부 예고영상에서 선보인 주제들은 삼풍, 해태 타이거즈, 그리고 92년의 ‘휴거’(종말론 종교 다미선교회와 이장림 목사가 92년 10월 28일. 예수가 재림하고 신자들은 하늘로 ‘들려 올라’간다는 ‘휴거’를 주장하며 일대 혼란을 벌인 사건)였다.
예고편 말미, 암전된 화면 너머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걸, 그걸 깜박 잊었습니다’. 80년대 학생운동권들의 ‘통일 운동’과 이 운동의 절정이었던 1989년 평양세계학생축전(이 행사에 한국의 대학생이 참가하여 일대 파장이 벌어졌다)도. ‘탱크주의’와 ‘세계경영’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설파했던 대우의 몰락도. 교육의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중대한 문제의식을 통해 출발했던 수능의 시작도. 차라리 황망하다고 표현해야 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도. 5월이면 홈에서 경기조차 하지 못하고 원정경기를 떠나야 했던 슬픈 영웅 해태 타이거즈도, 수많은 이들을 광신의 밤으로 내몰았던 휴거 사태도. 우리는 깜박 잊어버렸다. 그리고, 망각의 한 켠에서. 기록의 조각들을 이어붙여 다시 복원해내고자 하는 인상적인 시도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 흐름을 이끄는 사람은 <모던 코리아> 시리즈의 기획자이며 1부 <우리의 소원은>을 직접 연출(2,3부는 다른 PD가 연출했다)한 KBS 스포츠국의 PD 이태웅이다. 이태웅은 말 그대로 깜박, 잊어버린 것들의 의미를 다시 지금의 시간과 접속시키는 작업들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54분 짜리 다큐멘터리 <우리의 소원은>을 완성하기 위해 이태웅은 KBS에 보관된 아카이브 22테라 바이트. 테이프 천 개 분량 (테이프 한 개가 1시간에서 2시간 정도의 런닝타임을 가지고 있다)의 영상을 일일이 보고 편집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직조해냈다.
총 6부작으로 내년 2월에 4,5,6부가 방영예정인 <모던 코리아> 시리즈는 아직 방영이 완료되지 않았기에 이 시리즈에 대한 평가는 조금 보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태웅은 2018년에 이미 센세이션한 아카이브 다큐를 만든적이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88/18>이 그것이다. 더 되짚어 올라가면, 지난 2011년에는 1980년대 민속씨름의 흥망성쇠를 애수어린 시선으로 따라가는 <천하장사 만만세>를 연출했다. 지금 이 글에서는 <88/18>을 중심으로 이태웅의 작업이 건져낸 지점들과 그가 다시 세상으로 던져넣은 아카이브들이 지금 우리의 시대와 접촉되고 있는 풍경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언제 대한민국이 준비해놓고 뭐 제대로 한 일이 있나요? 우린 해놓고 봤다고
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 다큐 <88/18>은 KBS가 가진 서울올림픽 관련 아카이브와, 서울올림픽에 관여했던 인물들의 현재 인터뷰를 병렬배치해 전개하는 작품이다. 이태웅은 서울올림픽 다큐멘터리의 시작을 서울올림픽 개막식이나, 혹은 1981년의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당시 IOC 위원장이었던 사마란치가 1988년 올림픽의 개최지로 ‘쎄울’을 외치던 순간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88년 서울올림픽의 첫 시작점으로 이태웅의 시선이 가닿은 곳은 1988년 11월 2일에 진행된 5공화국 비리 청문회였다. 사실, 이 시작점은 이상하다. 서울올림픽은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진행되었다. 5공화국 비리 청문회는 서울 올림픽 폐막 한 달 뒤에 있었다. 자기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시점보다 미래 시점에 진행된 사건에 대한 자료화면을 먼저 가져오고, 뒤이어 이때 증언했던 5공 실세 허화평의 2018년 시점 인터뷰를 이어붙이는 이태웅의 전략은 일견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오프닝은 이 다큐멘터리 <88/18>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이정표가 된다.
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 다큐 <88/18>은 KBS가 보유한 방대한 아카이브를 조각조각 이어붙인 작품인데도, 정작 서울올림픽 당시 경기 자료화면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연출자 이태웅 본인이 ‘스포츠국’ 소속 PD로서. <88/18>이전에 연출한 작품들은 전부 스포츠를 주제로 한 (민속씨름을 다룬 <천하장사 만만세>, 런던 세대 올림픽 축구대표팀을 다룬 <공간과 압박>, 월드컵 8회연속 진출 기념 다큐멘터리 <태극전사의 탄생>, 기성용을 주제로 한 <토요일은 밤이 좋아>, 대한민국 양궁대표팀을 다룬 <숫자의 게임>) 작품들이다.
그중에서도 <공간과 압박>은 시종일관. 자막도 없이 어떤 설명도 없이 줄기차게 올림픽 축구대표팀 선수들의 훈련장면과 식사장면, 인터뷰로 채워놨다. 그런데 <88/18>은 스포츠 이벤트 중 가장 대규모의 행사인 ‘올림픽’을 다루면서도 경기장면이 없다. <88/18>에 이르러 이태웅은 ‘올림픽’이라는 주제가 아니라 이 주제를 발생시킨 맥락들. 그리고 이 주제가 발생시킨 파장과 영향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88 서울올림픽이라는 주제를 발생시킨 맥락과 그것이 남긴 영향을 쫓아가기 위해선 당연히 5공화국과 6공화국이라는 군사정부 체제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태웅은 허화평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관점을 뒷받침한다. 물론 허화평이라는 인물은 공히 5공화국의 핵심실세로 인정할 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태웅은 조금 더 확실하게 자신의 관점을 밀고 가기 위한 전략을 수립한다. 이태웅은 앞서 설명했듯 여러 편의 축구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연출자다. 이태웅은 축구에서 마치 ‘빌드업’을 하듯. 허화평이라는 인물이 적어도 이 ‘올림픽’을 둘러싼 정부의 관점에 있어 ‘믿을만한’ 증언자임을 세팅한다. 따라서 이 다큐멘터리가 시작하자마자 소환된 화면은 5공화국 비리척결 청문회 당시, 허화평에게 ‘자신이 5공의 핵심적 인물이었으며 실세였다는 것을 인정하느냐’라고 묻는 청문위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이 지나간 다음, 2018년 현재의 허화평이 88년 서울올림픽을 시작한 이유가 ‘정치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였음을 인정하는 인터뷰를 이어붙임으로서 이태웅은 <88/18>의 시작부터 이렇게 선언해버린 셈이다.
‘결국, 서울올림픽은 관제행사였다’
허화평은 이후.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허화평은 마치 자조섞인 듯한 웃음을 지으며 “언제 대한민국이 준비해놓고 뭐 제대로 한 일이 있나요? 우린 해놓고 봤다고”라고 88 서울올림픽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던 당시 정부의 결정을 요약한다. 88년 서울올림픽은 한 국가가 체계적으로 준비한 계획의 일환이 아니라. 당시 바닥으로 처박히던 경제상황을 타개하고 정치적 혼란을 한 점으로 모아 돌파하려는 군사정권이 즉각적으로 설정한 목표아래 시작되었다.
그리고 단순히 ‘3S’ 정책(SEX, SPORTS, SCREEN. 군사정권의 관제정책) 등으로만 설명되던 88 서울올림픽에 대해 이태웅은 하나의 명료한 관점을 제시한다. 88년 서울올림픽은 결국 관제행사였으며, 이것을 개최하기로 결정한 순간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올림픽을 위한 ‘동원령’에 들어가야 했다고. 그리고 이태웅은 바로 서울올림픽을 개최하기로 결정한 직후 한국의 시대상황으로 직진하기 시작한다. ‘외국인 손님’들이 찾아올 것이니 거리마다 골목마다 청소를 깨끗하게 해야 하며 집안 내부 역시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새마을 운동’ 식 뉴스릴부터 ‘올림픽 말고 중요한 게 있냐’는. 지금 보면 조금은 섬찟하게 들리는 일반시민의 인터뷰. 그리고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프로파간다 드라마 <지금 평양에선>의 특집 에피소드 화면(김정일을 연기한 김병기가 북한이 지금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책동을 획책하고 있다고 시청자에게 연설하는 장면)을 이어붙여 사회, 도덕, 정치 분야를 일별하며 횡단한다.
이태웅은 한국의 국민들이 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거대 목표아래 인권이나 사회정의 같은. 철학적이며 사실은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에 동원되어야 했으며 5공화국은 이 ‘동원령’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난관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했음을 보여준다. 이태웅은 <천하장사 만만세>부터 함께한 타이포디자이너 김기조의 감각적인 필체를 통해 “88올림픽은 마법의 주문이었다”고 압축적으로 88 올림픽이 어떻게 당시 대중들의 의식구조에 작동했는지를 설명한다.
이것에 대한 ‘직접적’ 논평은 허화평의 인터뷰와 자막을 제외하면 찾을 수 없고. 당시의 시대상황을 증언 할 수 있는 기록영상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당시의 시대상황을 조망할 수 있도록 만드는 놀라운 재능을 이태웅은 선보이고 있다. 군사정부가 ‘구체적인’ 과제(서울올림픽 개최)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분배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노사분규와 학생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시대 상황에 대한 인식 전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 동원된 개념이 바로 ‘중산층’이었다.
이태웅은 전작 <천하장사 만만세>를 통해서 80년대 중반에 태동한 민속씨름의 프로화를 따라가며 어떻게 씨름이 흥망성쇠를 겪었는지를 추적한 바 있다. 5공화국 정부는 ‘민속’. ‘전통’에 집착하던 정부였다. 그래서 81년에는 ‘전국 대학생 민속·국학 대잔치’라는 부제를 단 관제 행사 ‘국풍 81’을 진행하기도 했다. 민속씨름은 이 ‘민속’ 기획의 연장선으로 이전부터 인기가 있던 민속씨름을 ‘프로화’ 시킨 작업의 일환이었다. 우승상금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막대한 경품이 걸린 ‘판’으로 씨름은 변모한다. 이태웅은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로 ‘중산층’의 시대가 왔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다시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즉 80년대를 관통했던 하나의 단어라면 ‘중산층’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중산층’은 명확한 정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명확한 구분도 물론 불가능한 추상적 개념이라는데 있다. 그러므로 ‘중산층’을 실제하는 어떤 것으로 만들기 위해 동원된 언설 중 하나가 ‘마이카’ 였다. 차를 가지고 있으면 중산층이라는 편리한 구분법. 실제 80년대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일반 국민에게 차량이 보급되었다. 이태웅은 이 ‘마이카’ 열풍을 상징하는 혜은이의 뮤직비디오(<뛰뛰빵빵>)를 보여준 뒤 곧바로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을 부른 정수라의 인터뷰를 경유해 한국 최초의 독립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을 연출한 김동원의 인터뷰를 이어붙인다.
김동원은 ‘상계동에서 이 노래(<아 대한민국>)를 들었을 때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을 이야기한다. 앞서 설명했듯, 이태웅은 88 서울올림픽 그 자체가 아니라 88 서울올림픽이 파생시킨 영향에 더 관심이 있다. 이태웅은 88 서울올림픽이라는 마법의 주문이 어떻게 서민들의 삶의 터전을 ‘서울의 미관상 보기 싫은 철거’ 한다는 미명하에 파괴해버렸는지를 냉정하게. 그것도 KBS의 아카이브를 통해 보여준다.
아카이브를 통해 창작자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하는 이 방식 때문에 아카이브에 등장하는 자료화면 속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한 실제 자연인 간의 불일치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 캐릭터가 구청 공무원에게 하소연하는 드라마 클립을 삽입했는데 이때 공무원에게 하소연하는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훗날 정계에 진출하는 장군의 손녀 김을동이다. 마찬가지로 ‘젊은이의 축제’ 사회를 보며 ‘바덴바덴’을 언급하는 하이틴 스타 송승환과 드라마 속에서 학생운동권을 연기하는 송승환을 연이어 보여주는 편집은 마치 블랙코미디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태웅은 ‘사회정화’ 미명에 동원되었던. 정권에 협력했던 KBS의 아카이브를 통해 KBS의 과거를 직접 보여주는 이태웅의 방식은 섬뜩하면서도 절묘하다.
후반전
<88/18>은 마치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누어 성립된 작품처럼 보인다. 전반부에 5공 정부가 어떻게 국민을 동원하고 폭압적인 방식으로 국가를 이끌고 나갔는지를 보여주고 88 올림픽이 그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음을 입증한 다음, 후반전에는 역설적으로 그 88이 어떻게 5공화국을 몰락시켰는지를 묘사한다.
<88/18>은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88년의 서울올림픽이 주제이나 이 주제 자체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이 관심 있는 건 ‘반응’이다. 주제가 던져지고 이 주제에 반응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바꾼 변화의 흐름에 더 관심이 있다. <88/18>은 계속 ‘시의적인’ 부분들을 잡고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갑자기 ‘문화예술’의 영역으로 점프해 나간다. 88 서울올림픽은 많은 이들에게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던 계기로 기억되거나, 혹은 올림픽이라는 미명하에 민중을 수탈했던 폭압의 역사로 기억된다. 앞에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88 올림픽은 대한민국에서 ‘정경유착’이 합법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권장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88/18>은 짧지만, 허화평의 증언과 자료화면을 통해 각 스포츠 협회의 협회장직을 의무적으로 재벌총수들이 나눠맡아야 했던 촌극이 벌어진 순간들도 증언한다.
그런데, <88/18>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올림픽이라는 메가 이벤트 때문에 한국이라는 국가가 ‘모던’의 시간으로. 본의는 아니었더라도. 마치 떠밀리듯 발을 들여놨다 하더라도 어쨌든 ‘모던’의 시간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마땅한 문화공간이 없는’ 한국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등장했고 이것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예술의 전당’, ‘독립기념관’,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문화공간들의 설립계획이 시작되었다. 전시, 공연, 미술 같은 예술의 영역이 국민의 삶에 스며듦과 동시에 국가가 문화예술 분야에 지원과 육성을 맡아야 할 책임이 발생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88/18>은 예술의 전당과 독립기념관 등의 건축계획을 시행한 건축가 김원과 88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디자인한 김현의 인터뷰를 통해 80년대 중반 한국이 예술 영역에서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모던’의 시간에 진입했고 이전과는 다른 시간에 놓였음을 증언한다.
이태웅은 연이어 ‘백남준’을 꺼내든다. <88/18>이 결정적인 승부수를 던지는 시점은 바로 이 지점부터다. 동시에 이 지점부터 <88/18>은 자신들이 이 작품에서 정말로 내놓고 싶었던 메시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88/18>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의 인터뷰 중. 근 30여 년 전에 미래를 예측한 백남준의 인터뷰는 가장 충격적이다.
“미디어란 네 명이 보나 네 가구가 보나 400만 명이 보나 4억 명이 보나 가격은 마찬가지야. 그 경제성이 무시무시하지 않겠어? 그것이 이제 옵티컬 파이버(광섬유)나 이런 케이블로 말야. 미디어 혁명의 진지는 ‘테레비’가 낙하산적인 상의하달로 시작됐는데 미디어 혁명이 케이블화하려면 이것이 전화의 연장이 되는 평면적인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되어야 하거든. 컴퓨터도 마찬가지고”
즉 백남준은 ‘미디어’ 가 유통되는 방식의 요체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운운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백남준은 조금 더 ‘경제적’인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즉 미디어는 수없이 복제가 가능하고, 동시에 아주 낮은 값에 유통(경제성이 무시무시)시킬 수 있다. 초기의 미디어는 ‘텔레비전’ 같은. 즉 전파와 텔레비전 안에서 방영될 컨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본과 설비를 가진 인물들이 주도해 만든 미디어들이 불특정다수의 인원에게 ‘살포’ 되듯이 전달되었지만. 이제 수많은 케이블 들을 통해 불특정다수의 인원들이 모두가 ‘평면적인’ 하나의 데이터로 동작하면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리고 지금, 백남준의 이야기는 거의 모두 현실이 되었다. 이태웅은 백남준의 이야기를 빌어 미디어(정보)의 유통이 세상을 조금 ‘민주’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열망과 합치되어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열망이 추동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태웅은 <88/18>에서 최대한 창작자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려 하지만. 가장 필요한 순간에는 타이포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백남준의 인터뷰 이후 연이어 붙어있는 이미지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87년 6월의 시위현장이다. 그리고 이태웅은 타이포를 통해 “올림픽 체제는 한계까지 왔다”고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듯, 올림픽 체제는 종료되고 87년 6월 체제로 전환된다. <88/18>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는 묘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5공 정권이 자신들의 체제 유지를 위해 내린 대규모 동원령으로 시작된 88 올림픽은, 역설적으로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변화의 요구에 따라가던 국민들의 힘으로 5공 정권을 끌어내린 기폭제로 작동해버렸다는 것. 물론 실제의 역사에서 87년 6월 체제는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냈으나 88 올림픽을 치룬 정부는 6공화국. 여전히 군사정부였다. 어쩌면. 이태웅은 이 일련의 과정이야 말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88/18>의 마지막은 미래의 한국사회(2008년 3월 26일)를 상상해 만든 코미디 콩트(이주일이 출연한다)의 한 장면과 이 콩트에 출연한 민해경이 <서기 2000년>을 부르는 장면이다. 코미디 콩트 속에서 연기자들은 “화성 애들에게 뺏긴 금메달을 되찾아 와야” 한다는 대사를 하고 이주일은 “은하계 올림픽이 지구에서” 열린다고 능청을 떤다. 민해경의 <서기 2000년>이 백그라운드에 깔리는 동안, 전 숭전대 총장 이한빈이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여러분들이 어른이 되는 2019년이나 2020년에는 남북이 통일되고 민주주의가 꽃피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희망차게 역설하는 장면이 연결된다. 민해경의 노래 <서기 2000년>의 가사는 이렇다.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대. 우리는 로케트 타고. 멀리 저 별들 사이로 날으리. 그 때는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 그대가 부르는 노래 소리 온 세상을 수놓으리”
2000년을 넘어 2020년을 한 달 앞둔 지금. 1989년에 방영된 만화 <2020 원더키디>에서나 보았던. 사실은 엄두도 나지 않았던 2020년이 지금 다가온 시점에서. 우리가 꿈꾸던 세상은 정말 왔을까. <88/18>은 번영과 영광의 80년대로 기억하던 이들의 관점에서도, 동시에 자유와 민주를 위해 투쟁했던 시기로 80년대를 기억하던 이들의 관점에서도 각자가 어느 지점들에서는 동의할 수 있는 어떤 중간지대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다. 마찬가지로. 과거에 꿈꿨던 것들이 중 지금 현실이 된 것과, 여전히 이뤄지지 못한 여망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민해경의 <서기 2000년>은 대책 없는 낭만주의로 가득한 노래다. 그런데, 56분 55초 동안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결국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기 위한 투쟁으로, 그리고 그 투쟁을 견뎌낸 이들의 역사라는 걸 깨닫고 다시 듣는 민해경의 <서기 2000년>은 차라리 절절한 희망을 향한 목소리처럼 들린다. 이태웅은 아카이브의 편집만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뜨겁게 쥐고 흔드는 작품을 만들어냈음에. 틀림없다.
※ 이 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예술과젠더 연구소의 학회지 <NW4.5>를 위해 썼다. 2019년 연말에 썼으므로 해당 글에 표기된 <모던 코리아> 시리즈는 2023년 1월 현재 시즌 3까지 방영되었다. 이태웅은 시즌 2에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다룬 <포스트모던 코리아>, 시즌 3에서는 60년대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다룬 <싸우면서 건설한다>를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