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도 멋지게 양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는 일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원하든 원치 안 든 앞에는 강 뒤로는 산인 그런 곳에서 태어났다. 새벽부터 일찌감치 나가야 하는 부모님 덕에 어린 시절 대부분은 할머니댁에서 지내야 했었고 엄마 따라 양재동 꽃시장도 가고 아버지 따라 농장에 가서 장미꽃 밭에 물을 주거나 돌을 골라내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운이 좋을 때는 점심으로 맛있는 짜장밥을 시켜줘서 농장 일을 도와주시는 삼촌들, 품을 파시는 할머님들과 함께 맛난 식사도 하고 찹쌀떡 아이스크림을 얻어먹고 오기도 했다.
나는 흔치 않은 곳인 감자바우골에서 태어난 나무 농장 집 무남독녀였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 애지중지 키웠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쉽게도나의 아버지는 그런 분은 아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농장에서 커왔던지라.. 밭매고 잡초 캐고 하는 일들이 어릴 땐 너무 싫었더랬다. 물론, 철이 들고나서부터는 휴가로 한국에 갈 때마다 자발적으로 따라가서 일을 도울 때도 있었다.
지금 하는 일이 평생의 업이라 생각하시고 임하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왜 사서 고생을 하시는 걸까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 아버지를볼 때마다 답답해하면서도 마지못해 일을 도왔던 것이라 소가 일터로 끌려가는 듯한 기분으로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투덜거리기 바빴다. 그랬던 내가 업무적으로 자주 뵙는 친정언니 같은 협력사 과장님이 맡고 계신 사업에 일손을 돕고자 두바이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농장을 다녀왔다.
혼자 가기엔 좀 머쓱했는데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동료가 흔쾌히 함께 가 주겠다 하여 여행 가는 기분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짧은 시간이나마 땀 흘려 일하고 흙먼지로 뒤덮인 옷을 털어내며 어린 시절 아버지를 도와 일했던 것이 생각나면서 두바이에 살면서 지금껏 느낄 수 없었던 벅찬 기분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 왜 난 단 한 번도 아버지가 하는 일에 자랑스러워하지 못했던 걸까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죄송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부모와 자식의 연은 천운이라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제대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용기를 내어 먼저 손 내밀고 정서적으로 멀어졌던 관계를 조금씩 좁혀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