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고 싶을 때, 골뱅이 사과 비빔면

맵고 단 맛이 딱 너무나 다른 우리같아.

by 엄지언

먼저, 내가 무슨 요리 에세이를 쓰냐 싶다. 내가 요리 에세이를 쓴다면 다들 웃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의외로 요리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요리가 재밌다. 손이 빠르다. 무엇보다 나는 식의다. 건강을 생각하며 요리한다. 그리고, 맛있다. 맛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앞으로 선보일 요리들은 건강과는 조금 거리가 멀 수도 있다. 내가 진짜 힘들고 지칠 때 하는 요리들이니까. 그리고 사실 건강분야에는 짱짱한 전문가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내 요리는 간편하고 맛이 있다. 내 스트레스를 200% 날려 보내준다. 가족의 사이까지 돈독해진다. 이런 이유로 나는 공지영 작가님 <딸에게 주는 레시피> 간단 요리의 빅 팬이다. 무슨 요리를 선보이길래 이렇게 거창한가 싶을 것 같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련다. 첫 번째 손보일 내 요리는 ‘골뱅이 사과 비빔면'.


남편과 나는 육아하며 사이가 많이 틀어졌다. 육아에 철저한 나와 육아는 문외한인 남편. 여느 집들의 이야기와도 비슷할 것이다. 짜고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그리고 맛없는 음식은 전혀 못 먹는 남편.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무염 혹은 저염 음식을 만드는 나. 변하는 내 모습을 보고 섭섭한 남편, 그리고 육아하느라 힘들어 항상 도움을 외치는 나. 우리의 갭은 그런 정도였다.


우리는 둘 다 노력했다.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친정과 시댁의 도움은 일절 없었다. 마치 짜고 친 고스톱처럼 겨우 구한 도우미들도 다들 아이를 며칠 돌보고 도망가버렸다. 한결같은 반응, “이런 아기는 처음 봤어요.” 첫째에 이어 둘째도 그런 반응이니 망연자실했다. 남편은 일에 지장이 생겨도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나는 일과 공부 다 그만두고 아이들을 돌보며 어떻게든 버텼다. 그런데 우리 둘의 노력은 닿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못마땅했고 나는 남편이 불만족스러웠다.


첫째는 잘 자라났고 둘째는 고비(?)를 넘겼다. 결과는 괜찮은데 상처가 너무 많다. 이제야 우리 서로를 돌아보았다. 나는 많이 망가졌고 남편은 많이 늙었다.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생긴다.


이런 우리 사이에 내민 작은 내 손길. 남편을 위해 끓이는 라면. 아이들 건강에 좋지 않다고 멀리했던. 남편 혼자 밤에 끓여먹던. 나 열 받을 때 혼자 끓여먹던. 생각해보니 라면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내가 아이들 때문에 너무 열 받아서 힘들 때 밤에 내 속을 달래주던. 내가 한 음식이 만족스럽지 않았을 때 우리 남편 속을 채워주던. 그러고 보니 우리 첫째 헬렌 매운 것도 라면으로 떼었네. 내가 애써 멀리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항상 내 곁을 지켜주던 우리 가족 사이에 말없이 다리를 놓아주던 고마운 라면. 생각하니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팔도비빔면을 선택하였다. 맵고 달고 불같은 성격의 우리 사이처럼 딱 좋다. 싹싹 비벼 바닥까지 먹으면 잔금이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면이 불까봐 노심초사 사진을 여기까지밖에 찍지 못했다. 난 요리 블로거로는 글러먹었다. 글이나 써야지.


우리 남편이 좋아하는 골뱅이를 사 왔다. 골뱅이를 썰어 올릴까 하다 아니야, 남편은 통째로 오물오물 씹어먹는 골뱅이를 좋아한다. 저번에 썰려있는 골뱅이를 사 와 먹고는 맛이 없다고 실망한 표정을 했다. 남편을 항상 바라보며 취향을 기억하고 있는 내가 대견하다. 골뱅이를 그냥 통째로 접시에 담았다.


냉장고에 항상 있는 사과를 썰었다. 힘들어도 건강을 위해 하나씩 챙겨 먹던 사과. 내가 살아야 너희도 산다 라는 굳은 결심을 하며 매일 어기적 어기적 씹어먹던. 이걸 채 썰어 같이 먹으면 맛도 있고 건강도 챙길 것 같다.


그렇게 탄생한 골뱅이 사과 비빔면. 자, 시식시간이다. 남편은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먹으며 아무 말이 없으면 통과다. 맛이 있다는 뜻이다. 내가 먹어도 맛있다. 사실 맛이 없을 수가 없지. 맛은 스프가 해주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들인 소박한 정성이 그 맛을 더 업그레이드시켜주었다. 옆의 딸아이가 한 젓가락 먹고 싶다고 조른다. 그래, 그럼 너도 먹어봐. 아이는 한 젓가락에 얼굴 표정이 환해진다. 엄마 아빠의 웃음을 보고 환해지는 것도 같다.



남편과 나는 격정의 7년을 보냈다. 이혼 이야기가 몇 번을 오갔는지 모른다. 우리는 사자와 호랑이처럼 싸웠다. 너무 달라서 그리고 피 튀겨서 사자와 호랑이가 딱 맞는 표현이다. 결국 나온 이야기 “우리는 너무 달라.” 그래, 우리는 너무 다르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우리가 합을 이뤄 아이를 낳았잖아. 우리의 단점만을 가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장점만을 가진 듯한 아이들이야. 어쩌면 단점과 장점은 한 끗 차이인지도 몰라. 생각해보니 남편의 리더십 남자다움에 끌려 결혼했는데, 그게 육아하며 가장 힘들었거든. 우리 다시 회복하자. 가끔 우리 라면 끓여먹자. 외식이 별건가? 맛있고 행복하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