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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Sep 22. 2022

5만원으로 골프 라운딩 즐기기

부모님과 함께 하는 명랑골프

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반년이 지난 지금, 골프가 재밌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딱히 그렇지는 않다. 골프는 운동이긴 하나 몸매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골프연습을 하거나 라운딩을 나가면 햇볕을  일이 많아 피부건강에도 최악이다. 초창기 골프를 배울 때는 공이 하도  맞아 오기가 생기는 바람에 열심히 하느라 골프가 재밌다고 잠시 착각한 적도 있었으나, 막상  시간이 흐르니 뭐든 싫증이  나는 나의 본래 성향 때문인지 흥미가  떨어졌다.


그러나 골프를 그만둘 생각은 없다.


골프를 치는 이유의 8할이 순전 부모님 때문이라서다. 부모님은 일주일에 두 세번은 골프 라운딩을 나갈 정도로 골프를 사랑하는 분들이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의 골프 사랑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요즘들어 매년 딸집이 있는 미국에 방문해 내가 일하는 동안에는 집에 갇혀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골프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내가 골프를 쳐야 미국의 골프장에 대해 잘 알게될 것이고, 그래야지만이 부모님에게 미국에서도 골프를 칠 수 있게 해드릴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온 것이다.


그래서 골린이 주제에 부모님이 미국에 오시기 두 달 전부터 무작정 남편과 함께 집 근처 나인홀을 돌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골프 실력은 처참하지만 미국 골프장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이번에 부모님이 미국에 방문한 동안 나는 매주 부모님을 데리고 골프장에 갈 수 있었다. 부모님은 뭐 미국까지 와서 골프를 치냐며 초반엔 라운딩을 가자는 제안을 한사코 거절하더니, 막상 미국 골프장의 재미를 알게 된 후부터는 라운딩 나가는 날을 은근히 기다리고 계신 것만 같았다.


미국의 골프장이 한국과 비교해 특별한 이유는 캐디가 없다는 사실이다. 캐디없이 개인 또는 두명씩 짝을 지어 카트를 끌고다닐 수 있다. 또한 카트가 그린 안으로도 들어갈 수 있어서 내가 치고자 하는 공이 위치한 곳 바로 옆에 카트를 주차할 수 있다. 아빠는 혼자 카트를 끌었고, 엄마와 내가 한 조가 되어 카트를 탔다. 엄마와 함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카트를 타고 잔디 위를 넘나드는 기분은 기대이상으로 근사했다. 엄마, 아빠는 매주 골프를 두세번씩 나가는 사람들답게 골프를 잘도 쳤다. 나는 스코어를 낼 수도 없는 민망한 실력이었는데, 엄마 아빠는 처음 온 미국 골프장에서도 실력 발휘를 했다.


"엄마는 언제부터 그렇게 골프를 잘 쳤나?"

"엄마도 너처럼 초보였던 시기가 당연히 있었지. 어찌나 힘들던지."



엄마의 이야기


엄마가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건 40대였다. 사업을 하고 있는 아빠를 따라 부부 라운딩을 나갈 일이 많았던 엄마는 선택의 여지없이 골프를 시작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렇듯 골프란 운동은 한 번에 쑥쑥 실력이 늘지 않는 운동이다. 아주 지난한 시기들을 견디고 견뎌야지만이 그 다음 스텝으로 겨우 넘어갈 수 있다.



엄마는 한의원 치료를 병행하며 골프를 배워야했다. 골프 레슨을 받거나 연습을 한 후에는 꼭 온 몸이 아팠다. 침을 맞으며 엄마는 생각했다. 내 몸을 망치는 운동을 뭐하러 해야하나.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다. 


엄마는 부부라운딩 약속이 잡힐 때마다 전날밤에 잠을 설쳤다. 아빠의 거래처 직원 부부 앞에서 헛스윙을 하거나, 공을 다른 곳으로 날려보내는 순간은 이를 악물었다. 결단코 이 골프라는 놈과 싸워서 이기리라, 수치스러운 순간은 지금 한 번으로 족하다, 그런 생각들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골프를 끝장 내겠다는 다짐은 매순간 라운딩을 나갈 때마다 엄마의 몸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아빠는 골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를 돕기 위해 엄마와 단 둘이 라운딩을 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 골프 라운딩 약속이 잡히면 일주일 전에 엄마와 먼저 라운딩을 나가서 엄마에게 스파르타 교육을 시켰다. 필드에서 받는 골프레슨만큼 효과적인 레슨도 없다는데, 엄마는 그 말을 몸소 증명했다. 필드 레슨이 통했는지 어느새 엄마는 골프 라운딩을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는 궤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골프를 함께 치는 그룹 내에서 골프 실력이 선두를 달리게 됐다.


엄마는 이제 어느덧 골프 구력이 약 20년차에 접어들었다. 어느 그룹과 라운딩을 나가도 이제는 더이상 긴장이 되지 않는다. 엄마는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이 됐다. 


엄마는 딸에게 자신의 과거의 비참했던 골프 실력을 이야기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골프를 즐기라고 조언했다. 그저 시간만이 약이다. 골프만치 시간이 필요한 운동이 어디있는가. 그래서 골프는 인생과 닮아 있다. 연습한대로 되지 않고, 서두른다고 목표치에 빨리 도달할 수 없다. 느긋하게, 자연스럽게, 무리하지 않고, 매순간 즐기는 자가 끝까지 골퍼로 남을 수 있다. 


딸도 느린 마음으로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온 가족이 함께 라운딩을 다니는 미래를 그려본다. 



엄마, 아빠와 함께 즐기는 골프는 잘 쳐야 한다는 부담이 전혀 없었다. 내 공이 요상한 곳을 향해도 아빠는 쓱 자리 좋은 곳에 또다른 공을 올려주고는 다시 쳐보라고 하셨다. 아빠의 1대1 레슨을 통해 나도 모르는 새에 골프실력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걸 미세하게 실감했다.


엄마와 아빠는 미국의 골프 라운딩 가격에 매번 놀랐다. LA시에서 운영하는 골프장(18홀 기준)은 시간에 따라 1인당 14.5달러에서 35달러 사이. 그리고 동네 골프장(회원제 골프장 제외)의 경우 35달러~60달러 선에서 골프를 칠 수 있었다. 솔직히 20달러짜리 골프장의 그린 상태는 그닥 좋지 않았고, 60달러를 내는 골프장은 중상급 수준으로 잔디 상태가 양호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까지 세명이 100달러 내외로 골프 라운딩을 즐길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셋이서 라운딩을 나가려면 100달러가 아닌 100만원을 내야 할텐데,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이 시기에 미국에서의 골프는 환율을 따진다 하더라도 무조건 가성비가 좋았다.


내가 일하느라 바쁜 날은 엄마와 아빠 단 둘이서 골프를 나갔다. 두 명을 예약했기 때문에 또다른 두 명과 조인돼 함께 골프를 쳐야 했는데, 아빠는 이 때의 경험을 두고두고 흐뭇해 하신다. “미국인 30대 남성과 함께 골프를 쳐봤는데 말이야, 나보다 못 치던걸. 허허허. 내 골프 실력이 미국에서도 통하네. 80대까지 골프치는 게 내 목표라구.”


엄마도 나와 함께 나갔을 때보다 미국인과 조인해서 골프를 쳤을 때 훨씬 잘 쳐졌다고 하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국에 가신 후에도 엄마와 아빠는 종종 전화기 너머로 미국에서 골프 라운딩을 다녔던 추억을 곱씹는다. 되돌아보니 참 좋았다고, 앞으로 미국에 방문하면 무조건 골프를 치겠다고, 허허 웃는 엄마와 아빠의 명랑한 목소리에 ‘골프를 치기 잘했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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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미국에서 한달동안 환갑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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