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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Oct 20. 2022

부모님과의 로드트립

부모님과 1평 남짓한 공간에서
10시간 넘게 함께 있을 기회는 인생에서 몇 번이나 주어질까?


부모님과 10시간 넘게 한 공간에서 머물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현대사회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흘러가고, 가족들은 같은 집에서 거주한다 해도 퇴근 후 저녁식사 시간 혹은 티비를 시청할 때 잠시 마주치는 게 고작이다. 게다가 주말에도 가족 구성원 각각은 저마다의 개인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여유로운 시간을 함께 나누기 어렵다. 게다가 10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10시간 내내 그게 누구든 간에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곤욕일 수 있다.


엄마의 환갑여행 중 대망의 하이라이트가 멕시코 로스카보스 여행이였다면, 그 다음은 라스베가스다. 더 정확히 말하면 라스베가스에 도착한 후 다음날 가게 될 그랜드캐년이 부모님이 아주 고대한 여행지다. 라스베가스까지 내가 차를 운전해서 간 후에 다음날 현지 여행사 투어밴을 타고 캐년 투어를 떠날 예정이었다.


우리 집에서 라스베가스까지는 약 4시간 거리. 왕복 운전 시간, 전기차 충전 시간, 식사 시간 등을 합하면 우리 셋은 꼼짝없이 차 안에서만 최소 10시간을 함께 보낼 예정이었다. 작년에 부모님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차타고 갔을 때도 10시간 넘게 차 안에서 함께 보낸지라 장시간 로드트립을 앞두고 겁이 나진 않았다. 오히려 아주 기대가 됐다. 차 안에서 우리가 함께 나눌 이야기들에 대한 기대였다.



사람이 장시간 함께 있다 보면 평소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술술 읊게되기 마련이다. 좁은 공간에서 이 얘기 저 얘기라도 꺼내지 않고서는 몹시 지루하기 때문이다. 창 밖의 풍경도 한몫 한다. 라스베가스까지 가는 길은 볼거리가 많지 않다. 주변이 온통 사막으로 가득찬다. 흙색의 사막풍경을 바라보며 초현실감을 느끼고, 흡사 우주에 빨려들어온 감각을 느끼면서 아무말이나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엄마의 이야기


라스베가스를 향하는 차 안에서는 주얼리의 '네가 참 좋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뒤이어 거북이의 '비행기'가 재생됐다. 엄마는 이 노래들에 대한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 노래를 들으며 수영을 했었어. 수영이 끝나고 샤워실까지 걸어가는 길에도 이 노래들이 들려왔지. 이 노래를 들으러 내일도 또 이곳에 와야겠다, 생각했어. 수영장에서 들을 수 있는 이 노래들은 내게 가장 큰 위로이자 희망이었어."


글을 쓰며 주얼리의 '네가 참 좋아'를 검색창에 쳐본다. 2003년 7월 5일 발표된 곡. 거북이 '비행기'는 2006년 7월20일에 발표된 곡이었다.


2022-2003=19


그러니까 이건 19년 전의 유행가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고 엄마는 42세이던 시절의 노래. 42세의 엄마. 만 나이으로는 갓 불혹이 된 당시의 엄마를 떠올린다. 중학생 때는 40대의 엄마가 완전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보니, 40대는 별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40대가 뭐 어른이라고. 불과 6년 뒤면 40세가 되는 나는 이제 그 나이가 더이상 어른의 나이로만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40대에도 마음 속에는 어린 시절 아이가 살고 있을 것임을 지금의 나는 안다.


19년 전, 그러니까 엄마가 주얼리와 거북이의 노래를 듣고 자그만한 희망의 지푸라기를 쥐었던 그 시절은 우리 할머니가 풍으로 쓰러진 때였다.


신부수업을 받는 3개월 동안에만 홀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기로 했던 엄마는 살다보니 코가 꿰어 버렸다. 장손 며느리가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시집살이를 해야했던 엄마는 가슴 한 편에 억울함은 늘 가지고 살아야했다. 그래도 특유의 긍정과 낙관성으로 시집살이의 밝은 면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덕분에 평일에 육아가 조금 더 수월해질 수 있고, 요리도 배울 수 있으니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엄마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주말이면 친정을 향한다는 기쁨이 있었다. 시어머니 또한 주말이면 짐을 바리바리 싸서 막내딸 집으로 떠났으므로, 엄마 또한 가벼운 마음으로 외갓집을 향할  있었다. 외할머니에게 나와 남동생을 맡긴  자유를 얻은 엄마와 아빠는 일요일 아침이면 북한산으로 등산을 갔다. 등산이 끝난  아빠와 함께 먹었던 파전과 막걸리, 그리고  오는 길에 들렸던 온천장 물의 온기를 엄마는 지금도 두고두고 기억한다.  시간은 엄마와 아빠가 온전하게 그들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이자 일주일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풍으로 쓰러진 것이다. 멀쩡했던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시어머니의 꼬장은 나날이 강도가 심해졌다. 시어머니의 짜증과 분노는 그 집에서 가장 남이었던 엄마를 향했다. 자신의 아들과 손주들에게는 별다른 화가 일지 않았다. 오직 며느리만이 본인의 심기를 건드렸다.


시어머니가 몸이 성치않은 후로부터 엄마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자유를 빼앗기고야 말았다. 주말마다 방문하던 외갓집을 더이상 자주 갈 수 없게 됐다. 간다하더라도 눈치를 봐야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 했던 엄마에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던 수영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수영장에서 '네가 참 좋아' 노래 가삿말이 흘러나오면 엄마는 생각했다. "그래, 내 삶이 참 좋다. 피할 수 없다면 그냥 좋아해버리자."



라스베가스를 가는 길, 과거를 추억하게 만드는 노래들을 들으며 엄마는 자꾸만 20년 전 시간으로 돌아간다.




둘째 며느리인 엄마가 26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면 누구나 '헉'하는 반응을 내놓는다. 그건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듣는 이도 충분히 어림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나는 친할머니를 굉장히 미워했다. 엄마의 스트레스의 8할은 할머니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어린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할머니를 원망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현재 나에게는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원하는 만큼 쓸 수 있게 된 지금의 엄마 또한 나의 할머니를 때때로 그리워한다. 멀쩡했던 몸이 하루 아침에 말을 듣지 않으니, 할머니도 그 당시에 얼마나 힘들고 원통했을지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다고 엄마는 말했다. 


"떠나고 나면 후회 뿐이더라. 시어머니께 잘 해드려라."



네, 라고 대답했다.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되는 대화였다. 35세의 내가 42세의 엄마를 상상해본다. 로드트립을 통해 엄마와 나는 과거의 기억을 공유하며, 조금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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