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모습으로의 귀환

왕과 사는 남자와 인간성에 대한 그리움

by Brian Aum

어제 한국 문화계에서 가장 큰 뉴스 중 하나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마침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일 것이다.

이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들의 뛰어난 연기와 인간적인 모습이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에서 호랑이를 화살로 죽이는 장면의 CG가 다소 어색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러한 약간의 엉성함이 오히려 영화가 가진 인간적인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린다.

최근 흥행했던 ‘하우스 메이드(The Housemaid)’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과도한 스펙터클보다는 친숙한 이야기, 부담스럽지 않은 배우들의 존재감, 그리고 인간적인 감정의 결이 관객들을 끌어당기는 요소였던 것 같다.

물론 ‘아바타’나 ‘인터스텔라’ 같은 대형 블록버스터는 여전히 우리에게 경이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그런 작품들 역시 인류 문화의 중요한 자산이다. 또한 1990년대의 ‘쥬라기 공원’이나 ‘터미네이터’ 같은 글로벌 블록버스터를 떠올려 보면, 당시 영화 산업은 기술과 스펙터클을 통해 관객을 압도하는 일종의 과잉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런 영화들이 나쁘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나 역시 지금도 그 영화들을 다시 보며 즐긴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금 기술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조금 지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어쩌면 익숙한 이야기와 인간적인 감정을 통해 잠시 숨을 돌리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패션계에서 이야기되는 poet-core 스타일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화려한 과시보다는 감성과 인간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우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1990년대 인터넷 초창기 시절에는 신문 기사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신문사를 직접 방문해 종이 신문을 찾아봐야 했다. 나 역시 당시 신문 기사를 복사하기 위해 신문사를 찾아가 하드카피를 확인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몇 분만 투자하면 관련 기사뿐 아니라 데이터 분석, 학자들의 이론 검토, 모델링, 그리고 미래 예측까지 가능하다. 컨텍스트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작업은 과거보다 수천 배, 혹은 그 이상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인간은 어딘가 모를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단 90분 동안이라도 과거의 감정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인지 모른다.
실수도 많고 허점도 있었지만, 그만큼 인간적인 세계 말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잠시 그 세계 속에서 쉬어 간다.

예전에는 영화가 비현실적인 판타지의 세계로 떠나는 경험이었다면, 이제는 오히려 인간적인 감정을 다시 느끼는 시간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거의 자동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고, 이메일에 답장을 하고,
YouTube와 TikTok, Shorts를 다시 스크롤하기 시작한다.

이제 우리는 영화 말고도 무한한 콘텐츠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의 역할도 조금 달라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모험과 비현실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장르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어쩌면 이제 영화는 잠시 인간적인 세계로 돌아와 쉴 수 있는 쉼터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 저널리스트 데릭 톰슨(Derek Thompson)은 그의 책 『Hit Makers』에서 문화 콘텐츠가 성공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히트 작품은 친숙함과 어느 정도의 새로움의 결합에서 탄생한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인간의 감성이 묻어나는 작품이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인간 문명은 생존과 경쟁이라는 목표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데이터 기반의 최적화와 효율성의 시대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기술적 정점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만약 인류가 생존의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하고, 효율성의 극단적인 지점에 도달한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논의는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그 시점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루소의 말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그 말의 의미는 단순히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뜻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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