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Insight] '恨'이 느껴지는 트럼펫

19살 천재의 트럼펫에서 '한국의 한(恨)'을 듣다, 리 모건

by 에디터 엉클신

재즈(Jazz)는 어렵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어떤 재즈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먼저 때립니다.


마치 우리 국악의 아쟁 소리가 심장을 긁고 지나가듯, 듣는 순간 "아..." 하고 탄식을 뱉게 만드는 연주가 있죠.


오늘 소개할 앨범은 하드 밥(Hard Bop) 시대의 기린아, 리 모건(Lee Morgan)의 1957년작 <Volume 3>입니다.


Lee Morgan / 출처 : Wikipedia Commons


1957년 미국 뉴욕에서 녹음된 이 앨범이, 놀랍게도 한국인의 가장 깊은 정서 인 '한(恨)'과 공명합니다.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버릴 타선이 없는, 그야말로 거를 틈 없는 명반'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1. 상실의 시대, 소년이 관을 들다

이 앨범의 백미인 'I Remember Clifford'를 이야기하려면 슬픈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1956년, 당대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였던 클리포드 브라운 (Clifford Brown)이 25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요절합니다. 재즈계는 충격에 빠졌죠.


Clifford Brown / 출처 : Wifipedia Commons

당시 작곡가 베니 골슨(Benny Golson)은 친구를 잃은 슬픔을 곡으로 썼고, 그 곡을 연주할 사람으로 불과 19살이었던 리 모건을 지목합니다.

Benny Golson / 출처 : Wifipedia Commons


떠나간 천재를 추모하는 곡을, 이제 막 떠오르는 소년 천재가 연주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연주가 아닙니다. 선배의 관을 든 후배의 '진혼곡(Requiem)'입니다.


2. '한(恨)'의 정서 : 트럼펫이 울기 시작할 때

이 앨범이 한국인에게 유독 사랑받는 이유는 리 모건 특유의 '톤(Tone)' 때문입니다.


보통의 트럼펫이 화려하고 찌르는 소리를 낸다면, 이 앨범에서 리 모건의 소리는 '웁니다'.


특히 'I Remember Clifford'에서 그는 기교를 부리는 대신, 음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 담습니다. 마치 슬픔을 참다가 터트리는 듯한 그 묵직한 호흡은 한국의 판소리나 슬픈 발라드에서 느꼈던 '애이불비(哀而不悲 : 슬프지만 겉으로 비통해하지 않음)'의 정서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 앨범은 미국 재즈의 문법을 따르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 흐르는 정서는 '한(恨)의 배설'입니다. 끈적하고, 처연하며, 아름답습니다.


3. Track Insight : 버릴 곡이 없는 완벽한 서사

이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완벽한 드라마처럼 흘러갑니다.


- 오프닝: Hasaan's Dream

꿈속을 걷는 듯한 몽환적인 멜로디로 시작합니다. 베니 골슨이 작곡한 이 곡은 앨범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습니다. 리 모건은 마치 이야기꾼처럼, 청자를 신비로운 재즈의 세계로 부드럽게 납치해 갑니다.


- 클라이맥스: I Remember Clifford

이 앨범의 심장입니다. 숨소리조차 악기가 되는 순간을 경험해 보세요. 19살 소년이 불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성숙한 슬픔이 배어 있습니다. 비 오는 날, 이 곡 하나만으로도 이 앨범을 소장할 가치는 충분합니다.


- 엔딩: Tiptoeing

제목처럼 '발끝으로 살금살금' 걷는 듯한 위트 있는 곡입니다. 앞서 쏟아냈던 무거운 감정들을 산뜻하게 털어내며 앨범을 마무리합니다. 마지막 트랙이 끝났을 때, "다시 처음부터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완벽한 닫힘입니다.


4. 마치며 : 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리 모건의 삶은 비극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는 훗날 33세의 나이에 치정에 얽혀 무대 위에서 총을 맞고 사망합니다.) 하지만 그가 19살에 남긴 <Volume 3>는 영원히 남아 우리를 위로합니다.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 혹은 내 안의 울분을 어디론가 쏟아내고 싶은 날.

말 백 마디의 위로보다 리 모건의 트럼펫 한 소절이 더 깊숙이 들어올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 이 뜨거운 '한(恨)'을 추가해 보세요.


<추가 한문단>

* 추천 날씨: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혹은 늦은 새벽.

* 함께 하면 좋은 것: 소주 한 잔, 혹은 진한 에스프레소.

* 감상 포인트: 'I Remember Clifford'의 3분 20초 구간, 감정이 고조되다 잦아드는 리 모건의 호흡에 집중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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