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시간의 체를 통과한 것들의 위로
왜 우리는 지금 '낡은 것'을 다시 찾는가
최신 아이폰이 4K 화질을 자랑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흐릿하게 찍히는 필름 카메라 앱을 다운로드합니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으로 세상의 소음을 지우면서도, 정작 음악은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인 LP(바이닐)로 듣기를 원합니다.
기술은 매일 '더 깨끗하게, 더 빠르게, 더 매끄럽게'를 외치며 진보하는데, 우리의 취향은 자꾸만 뒷걸음질 칩니다. 우리는 왜 낡은 것에 열광할까요? 단순히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는 '복고(Retro)'나 '향수(Nostalgia)' 때문일까요?
저는 이 현상을 조금 다르게 봅니다. 이것은 "결핍에 대한 본능적인 탐닉"입니다.
1. 시간이라는 편집자
우리는 콘텐츠 과잉의 시대를 삽니다. 넷플릭스를 켜면 무엇을 볼지 고르다 30분을 허비하고, 유튜브에는 매분 500시간 분량의 영상이 쏟아집니다. '새로운 것'은 너무 많아서 오히려 피로합니다.
반면, 고전이라 불리는 '낡은 것'들은 '시간'이라는 가장 까다로운 편집자를 통과한 생존자들입니다.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잊히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 안에 인간의 본질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유행이 걷어차고 간 자리에 남은 알맹이. 우리는 그 단단한 알맹이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1956년의 재즈 앨범을, 1999년의 영화를 다시 꺼내 드는 이유는 검증된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2. 매끄러움에 지친 사람들의 저항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현대 사회를 '매끄러운 사회'라고 진단했습니다.
스마트폰의 액정처럼 흠집 하나 없고, 거슬리는 것 없이 매끄럽게 처리된 정보와 관계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은 이 완벽한 매끄러움 속에서 미끄러지고 맙니다. 붙잡을 곳이 없기 때문이죠.
'낡은 것'에는 마찰이 있습니다.
듀크 엘링턴의 라이브 앨범에는 관객들의 소음과 흥분이 날것 그대로 섞여 있고,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필름에는 거친 입자가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 거칠고 투박한 질감을 만지며 비로소 "내가 살아있는 세상에 있구나"라는 실감을 얻습니다.
디지털이 주지 못하는 '물성'과 '오류', 그것이 오히려 인간적인 안도감을 줍니다.
3. 미래를 보기 위해 백미러를 닦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시로 백미러를 봐야 합니다. 뒤를 보는 행위는 후퇴가 아니라, 현재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안전하게 전진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이 매거진 <영감의 단면도>는 바로 그 백미러를 닦는 작업입니다.
* 성공에 집착하다 번아웃이 올 때, 1950년대 재즈 뮤지션이 무대 위에서 보여준 '놀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 소유로 나를 증명하려다 공허해질 때, 세기말 영화 속 주인공이 모든 것을 파괴하며 던진 질문을 다시 듣습니다.
앞으로 이곳에 연재될 글들은 단순한 '작품 리뷰'가 아닙니다. 낡은 텍스트와 영상 속에 숨겨진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고고학에 가깝습니다.
오래된 것들은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귀를 기울이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건네줍니다.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들여다볼 준비 되셨나요?
오래된 미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