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도 하나 있었던 걸로 기억해. 애는 죽었을 거야. 높은 확률로.”
희주는 ‘절대 안정’, ‘면회 금지’ 팻말이 걸린 최준석의 병실로 들어갔다. 30분 전, 병동 복도에 서서 주치의가 병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15분 정도 더 기다렸다. 지금쯤이면 주치의 지시로 간호사가 놔 준 안정제가 효과를 발휘할 터였다.
예상대로 최준석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손목 신경을 다친 왼손은 시트 밖으로 내놓고 비교적 멀쩡한 오른손은 시트 속에 넣어 둔 채였다. 희주는 잠시 병실을 둘러보았다. 침대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창이 커튼에 가려진 채 있었고, 왼쪽에는 각종 집기들을 올려놓을 수 있는 선반이 달린 서랍이 있었다. 커튼을 젖히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1박에 70만 원쯤 하는 VIP 병실 창밖으로 보는 풍경은 제법 괜찮았다.
희주는 가방에서 준비해 온 벽에 부착하는 형태의 가정용 감시 카메라를 꺼냈다. 손바닥 위에 올라갈 정도로 앙증맞은 사이즈에 누리끼리한 병원 커튼에 파묻히면 별로 눈에 띄지 않을 아이보리 컬러. 침대가 사선으로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리고 커튼으로 살짝 가려 두었다. 최대 저장 기간은 일주일. 모든 상황은 감시 카메라에 녹화될 것이다. 그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누구시죠? 막 들어오시면 안 되는데요.”
희주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아, 경위님이셨군요.”
안면이 있는 간호사가 희주를 알아보고 경계심을 풀었다.
“선생님, 죄송해요. 말씀드리고 들어와야 하는데.”
희주는 지금 들어온 사람이 오치상이나 그 인간이 보낸 누군가가 아닌 간호사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조사 때문에 오셨군요.”
간호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잠든 최준석의 혈압과 체온을 재며 말했다.
“참 딱하세요.”
“뭐가요?”
“이렇게 혼자시잖아요. 얼굴도 점점 수척해지시고.”
희주는 대답 없이 그녀가 선의를 담아 베개와 시트를 꼼꼼히 점검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 말대로 최준석의 얼굴은 눈에 띄게 망가진 상태였다.
“혹시 그동안 찾아온 사람이 있었나요?”
“글쎄요. 제가 근무할 때 딱히 방문객을 본 기억은 없어요. 동료들도 얘기한 적 없고요. 아마 누가 왔었다면 바로 알았을 텐데. 가족분들도 안 오신 것 같고. 아마 사정이 있으시겠죠. 병원에 계신 분들 중에 그런 사연 하나 없는 분은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경위님이 제일 자주 오시는 것 같아요.”
“혹시 펜이나 메모할 만한 종이 같은 거 있으세요?”
“네?”
간호사는 당황하면서도 유니폼 주머니에서 볼펜과 병원 이름이 새겨진 작은 메모지를 꺼냈다. 희주는 거기에 자기 전화번호를 적어서 간호사에게 줬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저한테 먼저 연락 좀 해 주세요. 경찰을 부르셔도 되는데, 그 전에 저한테 문자라도 먼저 한 통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간호사는 망설였다.
“뭐 때문에 그러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다른 경찰들은 바쁠 테니 한가한 제가 바로 달려오려고요.”
“혹시 위험한 일인가요?”
“위험한 일이 생길까 봐요. 지금은 아니지만.”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희주의 전화번호가 적인 종이를 집어넣었다.
“범인 때문이죠? 또 이분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그렇기도 하고, 혹시라도 간호사 선생님들한테 피해가 가는 일이 생길까 봐요.”
“어떤 말씀인지 이해해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연락드릴게요.”
간호사가 병실을 나가고 나서도 희주는 잠이 든 최준석을 바라보았다. 보안관 모자도 잘 가꾼 콧수염도 없는 그의 얼굴은 그저 나이 들고 지친 중년의 그것이었다. 범인과 실랑이를 하면서 생긴 상처가 얼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기절한 최준석의 오른손에서 깨진 유리를 발견했다. 화장대의 대형 유리가 박살 난 상태였다. 최준석은 깨진 유리를 움켜쥔 채 범인을 위협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최준석이 눈을 떴다. 안정제 때문에 정신이 흐릿한지 멍한 표정이었다.
“좀 어떠세요?”
최준석은 붉어진 눈을 부릅떴다.
“제발 날 좀 가만 놔두게. 당장이라도 누가 내 목을 조를 것 같아. 그게 무슨 기분인지 자넨 상상도 못할 거야. 내 목을 움켜쥔 그 손아귀의 힘이 지금도 생생해. 자네가 굳이 묻지 않아도 충분히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니 집어치우게.”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진 않으셨잖아요. 그러니까 범인을 잡아야죠.”
“누가? 자네가?”
최준석은 퀭한 눈으로 희주를 응시하면서 쏘아 붙었다.
“내가 현역에 있을 때 내 밑에 자네 같은 오만방자한 여자 형사가 없었던 게 다행이군. 이미 자네 손을 떠난 사건이라고 알고 있네만.”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희주는 가까스로 화를 참았다. 원래 꼰대들은 남을 인정하는 걸 싫어한다. 이런 편견은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너희들이 용써 봤자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경멸이나 돌아올 뿐이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긴 싫었다.
“병실 밖에 아무도 없다는 거 아세요?”
“…….”
“만약 제가 이 사건 담당자라면 밖에 적어도 한 명 정도 앉혀 둘 거예요. 밤잠 없고 똘똘한 놈으로요. 그리고 한 시간마다 회장님이 괜찮은지 보고하라고 할 거예요.”
노회한 남자의 눈동자에 잠시 불안이 스치는 걸 희주는 놓치지 않았다.
“신경 꺼.”
“꺼야죠. 수사 권한도 뺏겼는데.”
희주는 최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감시 카메라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시간은 모든 일은 가볍게 만들어 준다고 했어. 시간이…….”
최준석은 시간이 마치 구원의 동아줄이라도 되는 듯 말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 구절이지. 난 가끔 그 구절을 떠올려. 시간이 지나간 일들을 점점 가볍게 만들어 주길 바라면서.”
“그래서 원하는 대로 되셨어요? 모든 게 가벼워지던가요?”
“…….”
“소포클레스도 놓친 게 있었네요.”
“이제 그만 나가 주게.”
“누군가에게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무거워지는 일이 있다는 거요. 10년, 20년이 지나도 가벼워지지가 않아서 담당 형사에게 범인을 잡았다는 전화가 오기 전까지 매일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떠올리고 슬퍼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요.”
희주는 최준석을 두고 돌아섰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최준석의 양심을 건드렸기를 바랐다.
희주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핸들을 움켜잡았다. 손바닥이 흥건하게 흘러나온 땀 때문에 자꾸만 손이 미끄러졌다.
“제 목숨은 선배 손에 달렸어요.”
“입 닥쳐. 정신 사나우니까.”
“거의 4개월 만에 아니에요? 운전대 다시 잡은 거. 정말 혼자 괜찮겠어요?”
“입 다물고 앞이나 잘 봐. 여차하면 핸들 바로 꺾어 버려.”
새벽 4시. 희주는 운전 연습 중이었다. 무원을 보조석에 태운 채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자그마한 공터를 몇 바퀴 채 돌았다. 누굴 칠 염려도 다른 차와 부딪힐 가능성도 제로에 가까운 시간과 장소. 이곳을 고른 건 무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말 많네, 정말.”
“운전 연습할 장소 찾아내면 알려 준다면서요.”
“조정배한테 연락이 왔어. 날 만나고 싶대.”
“단둘이서요?”
“그래. 설마 날 덮치려고 불러내는 건 아니겠지.”
희주는 가슴이 핸들에 닿을 정도로 상체를 최대한 앞으로 붙였다. 온몸이 긴장으로 뻣뻣했다.
“도대체 왜 선배랑 둘이 만나야겠다는 거예요?”
“……나 한계야. 내려야 할 것 같아. 눈앞이 캄캄해지려고 해.”
희주는 가까스로 차를 세웠다. 그리고 이마를 핸들에 대고 연거푸 숨을 몰아쉬었다. 무원은 차에서 내려 운전석 쪽으로 갔다. 그리고 운전석 문을 열었다.
“매너 좋네.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희주는 군말 없이 차에서 내렸다.
“타고났어요.”
희주는 그대로 공터에 드러누웠다. 등을 타고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식은땀과 두려움, 공포 말고도 많은 것들이 차갑게 식는 것 같아 기분이 나아졌다. 무원은 희주 옆에 앉았다.
“그래서 혼자 그 인간 만나러 가려고요?”
“오전 7시에 만남의 광장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어.”
“이유도 모르면서 만날 거예요?”
“이유는 가면 알겠지.”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뭐가?”
“일부러 자기 자신을 위험한 구렁텅이 같은 데 밀어 넣고 싶은 거냐고요.”
“난 범인을 잡고 싶을 뿐이야. 그게 다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무원이 운전을 했다. 무원은 희주가 잠깐이라도 눈을 좀 붙이길 바랐지만, 희주는 진한 커피를 택했다. 흥분돼서 잠도 안 와. 희주는 태연하게 말하며 창문을 열고 아침 공기를 들이마셨다.
무원은 희주를 오피스텔 앞에 내려다 주고 그대로 차를 몰아 만남의 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차장 가장 구석에 차를 세우고 정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2시간을 보냈다.
오전 7시 정각이 되기 5분 전, 희주의 차가 만남의 광장으로 들어섰다. 무원은 조정배의 차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무원의 예상은 빗나갔다. 조정배는 휴게소 건물 안에서 걸어 나왔다. 언제부터 저기서 있었던 걸까. 무원은 혹시 조정배가 자신이 와 있다는 걸 눈치챈 건 아닌지 불안했다.
희주의 차에 조정배가 올라탔다. 이제부터는 희주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냥 보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 무원은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진한 우디향 향수 냄새가 코점막을 강하게 자극했다. 바로 차를 버리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욕지기가 밀려왔다. 이미 창문이라는 창문은 전부 내렸지만 희주는 혹시라도 덜 열린 데가 있는지 백미러로 뒷좌석까지 확인했다. 조정배는 명품 브랜드의 여름 신상 상‧하의 세트피스를 깔끔하게 차려 입은 상태였다. 반면 희주는 어제 입은 옷 그대로였다. 잠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15분 정도면 충분하겠군. 그다음에는 같은 자리에 내려 줘. 블랙박스는 껐나?”
조정배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블랙박스를 가리켰다. 동작 하나하나가 위협적으로 보이는 사내라는 걸 희주는 다시금 깨달았다.
“녹음, 녹화도 하지 않고 있으니 솔직해지죠. 그런 일을 왜 한 거죠? 남의 뒷조사나 하려고 형사가 된 건 아닐 텐데.”
“피차 예의 차릴 필요는 없지.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어. 그런 식이라면 언젠가 호되게 한 번 당할 것 같으니까.”
“협박을 잘하시네요? 강희건을 위해 뒷조사를 하면서 그 여자들한테도 이렇게 협박했나요?”
“비슷해. 구린 구석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효과가 좋았나요?”
“늘 먹혔지.”
“별장 저수지에 빠져 죽은 여자 뒷조사도 했겠죠. 그 여자는 어느 구석이 구리던가요?”
“강 대표는 여자 약점을 하나 잡아 오라고 했어. 여자가 뜻대로 잘 안 움직인다고.”
“그래서 뭐가 나왔죠?”
“남편. 딸도 하나 있었던 걸로 기억해. 애는 죽었을 거야. 높은 확률로.”
죽은 여자에게 딸이 있었다? 희주는 저수지 괴담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이야기를 한 밥집 여자와 마을 회관의 노인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들 입에서 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었다.
“어떻게 확신해요?”
조정배는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 희주를 응시했다. 그 바람에 향수 냄새가 바로 코밑에서 지독할 정도로 진하게 났다.
“좀 불안해 보이는군.”
이번엔 희주가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에 대해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안 나왔어. 재미없는 여자였으니까. 별장에 안 나오는 날엔 수녀원 같은 데 종일 붙어 있었지. 거기서 봉사를 하더군. 뭘 위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천국? 그런 걸 노리는 건가?”
“그래서 그 여자에 대해 결국 뭘 알아냈죠?”
“시간이 얼추 됐군. 난 이제 곧 내릴 거야.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왜 날 만나자고 했어요?”
“치상 형은 널 수사에서 제외시켰지만, 넌 움직이고 있을 줄 알았어. 뭔가 찾아낸 게 있는지 궁금했어.”
“왜요? 다음은 본인일까 봐요?”
갑자기 조정배의 왼손이 희주의 목덜미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거대한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남들보다 2배는 손이 크고 두툼한 그가 목덜미를 누르자 곧바로 숨이 막혔다.
“이, 이거 놔요. 안 놓으면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버릴 테니까.”
“바라는 바야.”
조정배는 다시 한번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가 풀었다.
“죽는 건 상관없어.”
희주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운전에 집중했다. 주웅이 가르쳐준 대로 심호흡을 크게 서너 번 반복했다.
“그 여자도 그랬던 것 같아.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어. 다만 딸을 아꼈던 건 기억나. 그래서 강 대표가 하라는 대로 했겠지.”
“날 부른 이유가 뭐예요? 다 털어놓고 싶었던 것 아니었어요?”
“착각 마. 네가 무슨 신부라도 되는 줄 알아? 한 가지만 말해 주지.”
희주는 고개를 돌려 조정배의 옆얼굴을 보았다. 혈색 좋은 기름진 얼굴. 하지만 뭔가 빠진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중요한 걸 잃어버린 것 같은 텅 빈 얼굴.
“피해자는 과거를 잊지 못하고 가해자는 발을 뻗고 잔다는 건 틀렸어. 가해자도 분명히 망가져. 본인만 모를 뿐. 이 복수극이 20년 전 일과 관계된 인간들을 전부 죽여야 끝나는 거라면, 도대체 누가 이 모든 일을 벌이는 거지? 돈 없고 비참한 가정부 따위를 기억하는 게 누구냐는 말이야. 난 그게 궁금할 뿐이야.”
조정배는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사라졌다. 무원은 희주의 차 보조석 문을 열고 털썩 앉았다. 희주는 무원의 얼굴을 힐끔 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정배가 움켜쥐었던 목덜미에서 끈적끈적한 땀이 배어 나왔다.
“날 미행한 거야?”
“그게 중요해요? 괜찮아요?”
“보다시피.”
“주차장을 빠져나간 지 채 20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얘길 한 거예요?”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
희주는 무원도 어제와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날 못 믿어서 지키고 있던 거야?”
“괜히 비비 꼬지 말아요. 나도 내 나름의 사정이 있으니까.”
무원은 얕은 한숨을 쉬었다.
“시키지도 않는 짓 잘하네. 설마 나 납치라도 될까 봐?”
“그거 알면 사람 고생 좀 시키지 마세요. 그리고 저는 이제부터 잘 거니까 깨우지 마요.”
“뭐? 네 차는?”
“졸려서 운전 못 해요. 집에 도착하면 깨워요.”
무원은 보조석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너 목숨 서너 개 돼?”
“하나뿐인 목숨 선배한테 맡길 테니까 책임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