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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춤추기
by 서딘 Jun 09. 2017

한다와 안한다의 세계

두 세계 사이를 헤매는 것은 필연이다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이 있다. 나는 게으른 자답게 책을 몇 장 뒤적이다 말았지만, 그 순간에도 눈에 들어온 구절이 있었다.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이러하다. [게으른 자들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다. 거대 권력이 규정한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 최근 스스로 '아무것도 안하고 산다'고 여기고 있었던지라 이 구절이 머릿속에 띵-하고 박혔다. 그래,  아무것도 안하긴.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볶음밥도 사먹고. 먹느라 얼마나 바쁜데!


백수라는 신분을 가진 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나는 일단, 여행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거처를 결정하는 커다란 결정이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별 일 없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여행자금을 탈탈 털어 원룸을 구했다. 백수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는, 아. 이제 무지 심심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빈둥거리는 것이 일과이니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지루할 틈이 없다. 조용한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도 내부에서는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다와 안한다의 결투였다.


직장을 다닐 때는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자동으로 결정되었다. 출근? 해야한다. 퇴근? 해야한다. 출근과 퇴근을 하고 나면, 나머지 시간에는 아무 생각도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생활은 철저히 돈벌이라는 이해문제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돈이 나오는 일은 되도록이면 하고, 그렇지 않은 일은 되도록 안하는거다. 향초의 심지가 타들어가는 것을 몇 시간씩 쳐다보고 있거나, 이불의 네 귀퉁이를 침대 모서리에 맞게 정돈하는 일은 후자였다. 지금에 와서 그 둘은 무척 즐기는 일이 되었다.


백수에게는 직장이라는 거대한 이해의 구심점이 없다. 이제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어낼 시간인거다. 당연히 기준은 내가 그것을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로 정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렇게 사는 것이 쉬울 줄 알았다. 쉽고 재밌을 줄 알았다. 머지 않아 깨달았다. 욕망은 직관적이면서도 아주 복잡하다는 것을. 눈 앞에 선택지가 놓일 때마다 그게 좋으냐고, 진짜로 정말로 좋아하느냐고 몇 번이고 묻고 확인한다. 자문자답을 반복할수록 입장이 바뀐다. 그동안 좋아하는 척 해왔던 게 많아서였다.  눈치 보며 얹혀갔던 세상의 욕망에서 진짜 나의 욕망을 분리해내야 했다. 촘촘한 거름망을 몇 개씩 지나야했다. 욕망은, 아주 디테일하게, 완벽하게 자신을 발견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욕망이 계속 계속 바뀌었다. 실제로 나의 욕망이 변화한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 욕망이 아니었던 것들도 많았다. 


좋아하는 걸 하자. 근데 그게 뭔지 알아야 할 거 아냐. 일단 해보면 알 수 있겠지. 이 3단계를 거쳐 '시도'라는 행위가 발생한다. 일단 해보기 전에 묻는다. 시도해볼만해? 여기서 솔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내키지 않는 것을 내킨다고 했다가 내 기분만 나빠진다. 직장 다닐때야 내키지 않아도 방긋 웃어야 할 때가 있었지만, 그러면 돈이라도 나왔지만, 지금은 웃어야 할 명목도 없고 웃는다고 돈이 나오지도 않는다. 솔직하게 무표정으로 가야한다. 솔직해지니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 지구력이 생겼다. 지구력이라곤 쥐똥만큼도 없던 나인데. 시간이 많고 눈치를 안보니까 자연스레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다. 둘째, 하기 싫을 때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자했는데 반대로 하기 싫어도 하는 게 생겼다. 누워있으면 운동이 가기 싫어진다. 운동을 하고 싶다. 귀찮아서 운동 가기 싫다. 두 가지 욕망 중에서 내 진짜 욕망은 전자임을 안다. 그러니까 머릿 속에서 가기 싫다고 땡깡부리든 말든 몸은 운동하러 나간다. 


지구력이 생기고 하기 싫은 것을 하러 나가는 힘이 생겼대도 그것들이 결코 쉽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속에서는 하기 싫다와 하고 싶다가 격렬히 싸우고 있다. 다만 진짜 내가 무얼 원하는지 생각하고 찾아나가면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스스로 나누면서, 조금씩 방향을 틀고 있다. 굳이 중요하지 않은 쪽을 택할 외부적 환경이 없으니까. 백수라고 하면 주위에서 한심하거나 딱하게 바라본다. 책의 구절처럼 '거대 권력에 규정한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백수들이 스스로를 한심하게 혹은 딱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 연고도 없는 지금, 한다와 안한다의 치열한 격투를 느긋하게 감상할 절호의 기회이다. 동시에 이 격투를 심판할 유일한 심판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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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칠정의 세계 / undressj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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