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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춤추기
by 서딘 Jun 11. 2017

토요일을 살았습니다

6월의 밤

시원한 밤이다. 살갗에 닿는 공기의 습도와 온도가 너무나 적당하여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오전에는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직장 다닐 때는 사람 만나는 것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하루에 한 마디도 안하는 날이 대부분으로,  일부로 사람을 만나러 나가지 않으면 아무도 만날 수가 없다. 고립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는 쪽이 되었다. H가 물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그간 살아온 시간들을 되짚어보았으나 딱히 꼬집어 어땠다고 말할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운동. 독서. 글쓰기. 아주 심플하죠. 만족해요."


그는 질문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책을 많이 읽으셨겠네요?

"아뇨."

항상 이 질문에는 아니라고 답한다. 많이 라는 것이 얼만큼 많이 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그는 이 질문을 두 번 반복했다. 내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했나보다. 사람들은 나의 겉모습을 보고 단정 짓는다. 책을 많이 읽을 것 같다, 술을 잘 마실 것 같다. 둘 다 아니다. 책과 술이 내 삶에 빠져서는 안되지만 말이다.


최근에서야 독서를 시작했다. 수업시간의 지루함을 때우기 위해 소설책을 폈던 10대를 지나고 거식증처럼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던 20대를 지났다. 30대의 독서는,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게 해주는 모르핀 같다. 이것저것 집히는 대로 읽는다.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섹스라는 단어를 써도 된다는 것을. 꼭 19세 구독불가 딱지가 붙지 않은 소설이라도 섹스를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에는 섹스가 나오면 얼른 앞표지를 확인해봤다. 그리고 신기해했다. 19세 구독불가가 아니네. 알랭드보통, 천명관, 은희경. 그런 사람들의 책에도 하나쯤 섹스가 있다. 써도 되는거였구나. 나는 대체 섹스를 뭘로 생각한거지. 괜히 머쓱해진다.


동생이 문학공모전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일단 축하를 보냈다. 동생은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주말 오후 내가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면서 티비를 볼 때도 옆에서 공책 가득 수학문제를 풀었다. 그걸 보고 물었다.

"야, 넌 어떻게 주말에 공부를 할 수가 있어?"

그때는 몰랐다. 사춘기 동생이 자신의 답답함을 수학으로 풀고 있었다는 것을. (답답함을 수학으로 푼다는 것 자체가 놀랍지만.) 답답함은 수학 뿐 아니라 글로도 풀어져나왔다. 동생은 한 문제 푸는 데에 공책 몇 장씩 넘겨야 하는 수학문제를 풀었다. 글도 많이 썼다. 그리고 공모전에 당선됐다. 상금도 탄단다. 내가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글쓴다고 나불거리기만 하고 이게 뭐람.


"축하한다. 대단하네."

-누난 요즘 뭐해.

"나. 백수다. 아무것도 안한다."

-그래. 살아있으면 된거지.

전화를 끊고 책을 읽으러 갔다. 한 번 갔다가 집에서 좀 쉬다가 다시 갔다. 두 번이나 갔는데도 오늘은 도통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일까. 자신이 쓰레기 같아서?  스스로 '아무것도 안한다'고 말해서였다. 어제 써놓고 금새 까먹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게 아니라니까. 많은 것을 하고 있다니까. 스스로 폄하하니까 풀이 죽어버렸다. '아무것도 안함'이라는 잣대가 꽤나 끈질기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쩔 수 없이 불안하겠지만, 결국 백수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불안의 정면에 서서 똑바로 바라보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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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칠정의 세계 / undressj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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