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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일기
By 서딘 . Jun 12. 2017

밥 잘 챙겨먹어요

그러면 괜찮아지니까

너한테 밥보다 더 신성한 건 없다

-신동옥, <서정적 게으름>


아침. 부스스 일어나면 감각을 깨우는 것은 밥이다. 모닝페이지를 쓴다든가 요가를 한다든가 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다. 밥을 먹어야 한다. 산발머리로 부엌에 서 있는데 집배원이 찾아왔다. 에어메일을 건넨다. 21세기로 넘어온지 10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 여전히 누군가 나를 생각하며 태평양 너머에서 편지를 보내온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책을 읽다가 가난 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작가는 자신이 가난하다 하였다. 나는 가난한가? 잘 모르겠다. 가진 것이 없는 것은 분명한데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감각이 없다. 동생은 늘 우리집이 흙수저라고 했다. 

정말?

나의 반응은 그게 다였다.

정말?

맞장구일 뿐이다. 진짜 흙수저인지 아닌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쨌든 당장 먹을 쌀이 있는 한 함부로 가난을 논하지 말자는 입장이다.


전자렌지가 없어서 피자를 후라이팬에 데워 먹었다. 저녁이었다. 마른 팬 위에 오래 두었더니 도우가 바삭바삭해졌다. 바삭바삭한 것이 좋다. 입 안에 탄 맛과 기름 맛이 남았다. 아침에 맥도날드에서 카톡이 왔었다. 자두 스무디가 새로 나왔다고. 입가심으로 자두 스무디를 먹어야겠다. 옷을 챙겨입고 문을 나섰다. 맥도날드로 향하기 위해서. 나를 움직이는 것은 철저히 식욕이다.


이 도시에 남기로 한 건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도시를 떠나려고 했을 때는 모든 것을 피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피하지 않고 보니 아무것도 나에게 해를 주는 것이 없다. 아무것도 나를 해치지 않는데 나는 왜 그렇게 숨고 싶었던 걸까. 세상에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란다.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서점에 갔다. 시끌벅적했다. 어느 작가의 강연회를 하고 있었다. 작가는 외치고 있었다. 꿈을 가지세요! 아. 네. 그곳을 지나쳐 구석에서 책을 읽었다. 몇십 분 후 강연이 끝나고 작가가 나왔다. 서점 직원과 이야기나누는 작가를 훔쳐봤다. 까만 정장을 입고 있었다. 주먹만한 팬던트가 달린 은색 목걸이와,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기다란 은색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서점보다 밀롱가에 어울리겠는걸. 작가의 목소리는 매우 커서, 멀리서 훔쳐보고 있는 나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제 책을 추천도서코너에 놓아주세요! 잠깐 작가가 사기꾼 같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모든 일이 그런 식 아닐까, 그렇다면 저 작가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하고 약간의 부러움이 들었다.


생각보다 나라는 인간은 예민한지도 모르겠다. 엊그제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몸이 몹시 안좋아졌다. 선풍기 바람 때문이었다. 선풍기를 끄자마자 멀쩡해졌다. 고작 이 바람 때문에? 그때는 그러고 넘겼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에 크게 좌지우지되는 게 나의 몸이었다. 우울해지는 것은 나의 성격이 우울해서가 아니었다. 물이 마시고 싶어서였다. 물 한 잔만 마시면 우울감은 금새 나아졌다. 새벽에 깨어있는 것이 아무리 좋아도 한 시에는 자야겠다. 옆방 여자의 삶이 새벽 두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여자는 새벽 두시에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하고 수다를 떨고 배달음식을 시켜먹는다. 뭐가 되었든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 잘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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