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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일기
By 서딘 . Jun 18. 2017

그냥 백수입니다만

구직을 꼭 해야하나요

모임에 갔다. 모임이란 매번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는 곳이므로 만날 때마다 자기소개를 한다. 돌아가면서 이름, 나이, 직업, 취미 등등을 말한다. Y는 소개를 한 후 이렇게 덧붙였다.

'직업이 없어서 뭐라고 말씀 드릴 게 없네요.'

직업이 있어야 뭔가를 말할 수 있는걸까. 취미든 관심사든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큼 지금 Y에게는 직업이 가장 중요하겠거니 넘겼다.


모임이 끝나고 Y랑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녀가 말했다.

'언니, 여기서 미취업자는 우리 둘 뿐이네요.'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미혼과 비혼이 다르듯이 미취업과 비취업은 좀 다르지 않을까. '미'라는 접두사는 말그대로 완성되지 않음을 뜻하는데, 나는 지금만큼 온전한 하루를 보내본 적이 없다. 이런 말들을 늘어놓으면 너무 구차하고 한심해보일 것 같아서 웃어보이기만 했다. 하루종일 '미'라는 접두사가 거슬렸다. 정말 나는 미취업자야? 당연하지. 정말 그렇게 밖에 볼 수 없는거야? 누가봐도 그렇잖아. 속에서 목소리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최소한 올 한해만큼은 취업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불안감에 나도 모르게 취업사이트를 뒤지다가도 퍼뜩 정신이 들면 야 뭐하는 짓이야, 올해는 일하지 않기로 했잖아. 하고 창을 꺼버린다.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돈이 많으냐고? 아니. 돈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냥 오래전부터 백수가 되고 싶었다. 팔자 좋은 소리하고 있네. 누군가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맞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팔자 좋은 시간이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불쑥 불쑥 솟아오른다. 그래도 나는 이대로 지내보기로 한다. 적어도. 이번 일년만큼은. 출판제의여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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