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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혜 Jun 25. 2021

유네스코가 말하는 여성과 ICT(4)

정부와 양심과 교육의 삼위일체가 필요한 때

지금까지 총 3편의 글을 연재하며 남녀 간 디지털 역량 격차의 심각성, 그리고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의 성차별적 면모를 알아보았다. 그럼 문제가 존재함을 인지했으니, 이제는 해결책을 찾아나서야 할 때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지금까지 소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정부, 교육기관, 가정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액션을 제안하고 있다.



이쯤이면 여러분들께도 친숙할 유네스코의 성별 간 디지털 역량 격차에 관한 보고서(c) UNESCO


먼저, 디지털 비서 서비스가 성차별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고 사회에 이로운 촉매제가 되기 위해서 유네스코는 정부 및 IT 기업 등이 실천할 수 있는 다음 18가지를 제안한다.


1장. 기초 데이터 수집

(1) 디지털 비서를 포함한 각종 AI 제품이 영향을 미치는 성차별의 종류, 정도 등에 대한 연구를 지원해 인공지능에 성별이 부여되는 과정과, 바람직하지 않은 편향을 재생산하게 되는 이유를 찾아내기

(2) 온.오프라인 환경에서 디지털 비서의 성별이 사람들의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특히 아동과 청년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

(3) AI 기능의 성별 비율을 조사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남성/여성의 목소리가 쓰이는지 조사

(4) IT 기업 및 기술 개발팀 내 성별 균형 조사

(5)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모니터링하며 디지털 비서와 성평등 관련 우려 발생 가능성 예측 및 이에 대비


2장. 새로운 도구, 규칙, 프로세스 도입

(6) 디지털 비서 목소리의 기본 셋팅을 여성으로 해두지 않기. 기기 초기 설정 시 남성/여성 목소리 간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제공

(7) 여성도 남성도 아닌 성별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인공지능의 ‘인공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으로 인식되지 않는 캐릭터 부여하기

(8) 성 인지적 언어 분류 체계 등을 공공 저장소에 모아두고, 데이터와 프로토콜 공유를 통해(오픈 데이터) 다양한 디지털 비서 서비스 개발 장려

(9) 성 인지적 데이터 생성 및 공유 통해 AI 기술이 사용자의 질문에 성중립적으로 대답할 수 있게 하는 기술 고도화

(10) AI 비서 서비스가 성적인 모욕이나 기타 폭력적 언사를 단호히 거부하고, 성차별적 언어를 은근히 부추기는 듯한 대답을 송출하지 않도록 프로그래밍

(11) AI 비서가 사람과 상호 작용을 하기 전 자신은 인간이 아님을 미리 고지할 것을 규정으로 제정


3장. 디지털 기술 개발에 성 인지적 접근법 적용

(12) 여성과 여아의 디지털 역량 개발에 힘 쏟기             

(13) 명확한 타깃과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테크 업계, 특히 결정권자 중 여성 비율 늘리기

(14) 포용적인 제품 개발 위해 성인지감수성 트레이닝을 제공하는 등 직장 내 성평등 촉진에 도움이 되는 문화 정착 시키기

(15) 기술 R&D 단계부터 젠더 분석을 시행하는 등 젠더 요소를 고려한 혁신으로 AI 제품 개발


4장. 감독 및 인센티브 

(16) 공공조달 및 펀딩을 통해 성인지적 스크립트, 캐릭터 등을 가진 AI 제품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정부 펀딩을 받는 AI 개발 프로젝트는 성별 균형이 맞는 팀이 꾸려져야 한다는 요건을 거는 등 AI 기술이 성 인지적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게 기여

(17) 데이터 간 상호운용성을 강화에 사용자가 서로 다른 AI 제품 간 데이터를 쉽게 옮길 수 있게 하고, 그로 인해 다양한 AI 제품을 경험해 볼 수 있게 지원

(18) 공공 감독과 책무성 관련 절차 강화




위 18가지 제안은 정부가 강제하지 않는 이상 다양한 기업들의 양심에 맡겨야할지 모른다. 어쨌든 이런 개선책들을 통해 AI 비서가 우리 사회 내 성차별적 인식을 악화시키는 것은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유네스코는 인공지능 기술과 같은 새로운 기술 활용을 위한 국제적 윤리 규범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c) UNESCO


그렇다면 애초에 이렇게 성차별적인 AI 서비스가 생겨나기 시작한 그 원흉, 즉 남녀 간 디지털 역량 격차는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유네스코는 정부, 교육 기관, 기업, 그리고 부모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실천할 수 있는 15가지 개선책을 제안한다.


제안 01. 지속적이고 다방면적인 생애주기별 접근

미국에 살면 영어 배우기가 더 쉬운 것처럼, 뭔가를 제대로 익히려면 지속적인 노출이 중요하다. 따라서 학교 안과 밖(가정, 직장 등)에서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디지털 역량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하며, 격차가 특정 연령대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 연령대에 맞는 평생교육적 접근법이 필요하다. 특히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며 1-2년만 지나도 새로운 기술 앞에 무기력해질 수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된 지식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제안 02.  인센티브, 타깃, 쿼터제 도입

여성의 ICT 관련 전공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장학금 제도 마련, ICT 관련 전공 신입생 중 여성 쿼터제(할당제) 운영 등이 필요하다. 다만, 이 때 ICT가 남초분야이기 때문에 여성이 도움을 받아야 진출할 수 있는 분야라는 이미지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서 마케팅해야 한다. 앞서 목 쉬도록 말했듯 여성이 ICT 분야에 진출하기 어려운 이유는 개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적인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 내 성평등한 문화 조장, 업무와 사생활 간 밸런스 보장, 육아 휴직 지원 등 여성이 노동 시장을 떠나도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관련 정책 입안자의 자리에 여성을 더 많이 영입해 정책의 기획 단계부터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안 03. 공교육 내 ICT 학습 기회 제공

빠르게는 1학년 때부터 공교육의 틀 안에서 여아들에게 ICT 학습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초등교육은 무상 + 의무교육인 경우가 많아 여아들이 학교에 가장 많이, 오래 남아있는 단계이므로, 이 때부터 ICT 교육을 제공해 여아들이 ICT 기술을 익히고 자신감을 가지며 여성과 ICT의 관계를 일상적이고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두어야 한다. 중고등학교 수준에서는 여아들이 집안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학교를 떠나거나, 또래 및 어른들의 사회적 기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재량이 주어지는 시기이다. 즉, ICT는 남자애들만 듣는 과목이라는 인식을 갖고 ICT 과목을 선택하지 않거나, 아예 학교를 다니지 않게 되는 시기인 것이다. 따라서 ICT 교육을 졸업 요건으로 만들어서 여성의 이탈을 막고 지속적인 교육을 제공하고자 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실제로 한국, 일본, 영국 등은 중고등교육 내 ICT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대학(원)에서도 과도하게 ICT 관련 경력을 요구하거나 하지 말고 여성이 ICT 전공에 진입할 수 있는 문을 넓혀 초중고등교육의 맥락뿐만 아니라 대학교육의 맥락에서도 다양한 ICT 관련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제안 04. ICT 관련 참여형 경험 증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여아들의 관심과 의지를 불타오르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직접 ‘해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방과 후 활동, 해커톤, 코딩캠프, 심지어는 컴퓨터 게임을 통해서라도 ICT를 직접 경험하고 체험해볼 수 ‘재미있는’ 기회를 계속 만들어주어야 한다. 실제로 연구에 의하면 비디오 게임을 어렸을 때부터 해 온 여아들일수록 컴퓨터 코딩 관련 직업을 가질 확률이 4배 정도 높다고 한다. 실제로 학교 수업에서 각 연령대에 적합한 간단한 게임을 학생들이 직접 코딩해 만들어보고, 부모님들에게도 이러한 게임을 교육적인 경험으로 봐달라는 안내를 제공할 수도 있다.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활용해 도시계획 프로젝트를 설계하며 ICT에 대한 흥미를 키워나가는 베트남의 '블록 바이 블록' 프로젝트 (c) Block by Block


제안 05. 유의미하고 실질적인 혜택 강조

디지털 역량을 기르는 것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직접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학생들을 데리고 ICT 관련 현장에 견학을 가거나, 테크 업계 기업들과 협력해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기술에 대한 직업교육을 제공할 수도 있다. 또한, 경제적 활동, 보건 등 일상생활과 밀접히 연관된 기술을 소개해 ICT 역량 증진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여성의 입장을 대변해 여성의 수요에 부합하고 다양한 사용자의 수준에 맞는 방향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제안 06. 또래와 협력하며 배우는 기회 마련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또래 친구들과 협동하며 뭔가를 해내는 교육법은 가장 효과적인 교육법 중 하나라고 한다. 특히 여아들에게 더 효과적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남아들에 비해 여아들은 친구들과 함께 뭔가를 배울 때 더 디지털 기술을 적극 사용했고, 무언가를 배웠다는 인식을 더 강하게 갖는다. 성인 여성들에게 교육을 제공할 때에도 이 교훈을 적용할 수 있다. 실제로 인도의 한 마을에서 구글이 시골 마을 여성들에게 인터넷 사용 교육법을 제공했는데, 외부 강사보다는 그 마을의 여성 몇 명을 먼저 훈련시키고, 이들을 강사로 활용해 그 마을의 나머지 여성들을 가르치도록 했다. 그 결과 여성은 서로 도와가며 빠르게 인터넷 사용법을 익혔고, 거기서 만난 인연들과 협동조합을 설립해 사업을 시작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여성이 뭉치면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현지 여성을 강사로 양성해 주변 여성들에게 교육을 제공한 인도의 Internet Saathi 프로젝트         (c) Intenet Saathi


제안 07. 안전한 교육 환경 제공

특히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ICT 교육을 제공한다면, 각종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교육을 받으러 자유롭게 다닐 수 없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PC방이나 도서관은 남자만 간다는 인식이 있다거나, 너무 멀다면 여성들은 그 공간을 이용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내 주민센터, 공원, 공공도서관 등에 여성이 안전하게 교육 받을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 안에서 되도록이면 여성 전용 수업을 운영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있는 오전 시간대에 수업을 제공하거나 미취학 아동 동반이 가능해야 한다. 왜 여성 전용이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으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여성들만 모인 안정적인 공간이 제공될 때 더 질문도 많이 하고, 토론도 자유롭게 펼친다고 한다. 이는 중고등교육 및 대학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 여성들의 참여와 자신감이 증대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이런 조건이 조성되기 어렵다면 온라인 및 모바일 수업도 (여성 전용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


제안 08. 여성을 배제하는 관행과 언어 사용 지양

대학교 수강편람, 구인 공고  ICT 업계에서 연구하거나 취업하기 위해 여성이 맞닥뜨려야 하는 글들에는 여성이 다가가기 힘든 언어와 관행들이 가득하다. 예를 들면, ICT 관련 과목은 난이도가 높아질 수록 남성적인 언어로 소개가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개론 과목은 ‘협동이나 ‘윤리 강조하는 반면, 고학년 대상 과목일수록 ‘몸으로 부딪히는,’ ‘강한 자들만 살아남는등의 표현이 자주 쓰인다고 한다. 또한, ICT 업계의 구인 공고 역시  튀기는 경쟁과 강력한 자기주장을 미덕으로 삼는 뉘앙스로 점철되어 있다. 유네스코는 이런 언어 사용을 지양할 것을 권고하며, 대신 편견이 담기지 않은 성중립적 언어 사용을 제안한다. 예를 들면, ‘가장 OO 사람류의 과장된 표현을 삼가고, 자격 요건은  필요한 것만 나열해 개수를 한정하며, 해당 기업의 다양성  유연성을  보여주는 공고를 작성할 것을 제안한다.


위 8가지 외에도 유네스코는 (9) 성인지감수성을 갖춘 교육자 양성 및 채용, (10) 여성 롤모델 및 멘토링 제공, (11) 가정 내 양육자 참여 유도, (12) 지역사회 구성원 참여 유도, (13) 기술 사용에 있어 여성의 독립성 확보, (14) 네트워크 인프라 건설용 공공 재원을 활용한 여성 ICT 교육 재원 마련, (15) 세분화된 데이터 확보 및 실천 가능한 정책 목표 설정 등을 추가로 제안하고 있다. 하나하나 다 주옥같은 제안들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꼭 보고서 원문을 일독해보시길 권해드린다.




자, 이렇게 해서 장장 네 편의 글에 걸쳐 유네스코의 보고서 “할 수만 있다면 얼굴을 붉혔을 거에요(I’d Blush If I Could)”를 국내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렸다. 평소에 잘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를 다수 제기한 만큼 유네스코는 다양하고 실천 가능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려 33개나 되는 유네스코의 제안들을 요약해보면, 정부 정책, 기업의 양심, 그리고 교육계의 노력이라는 삼위일체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해?라고 반문하기 쉽지만, 한국계 미국인 배우 산드라 오(Sandra Oh)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변화는 매우 느리게 찾아와요.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오니까요.” 원래는 미국 내 인종차별에 대한 질문에 답한 발언의 일부이지만, 디지털 젠더 격차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하루 아침에 남녀가 동일 수준의 디지털 역량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유네스코가 제안한 방향대로 열심히 변화를 만들어나가다 보면 마침내 변화는 반드시 찾아오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끝까지 읽은 여러분, 화면 상단의 URL 복사를 눌러 주변의 많은 분들과 이 연재 시리즈를 공유해 주시면 정말 좋겠다! - 이상 4주 내내 주1회 마감에 시달린 직장인 올림 -


[7월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유네스코 보고서 연재로 돌아오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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