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왔다, 개학

바야흐로 정신없는 3월이 시작되었다

by 우연과 상상

오늘은 2학년 첫 날.


여유롭게 일찍 출근해 준비해놓은 수업 자료를 확인하고, 잔잔한 BGM을 깔기 위해 지브리 스튜디오 OST 유튜브 영상을 틀었다. 그런데 갑자기 TV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코드 이것 저것 빼보며 컴퓨터를 만지다보니, 이젠 아예 본체가 켜지지 않았다. 멘붕의 시작. 여유롭게 아이들을 맞이하고 싶었으나, 내가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땀을 흘리고 있을 때 막내 티를 갓 벗은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하며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시 코드를 다시 꼽았을 때, 다행히 본체에 불이 들어왔다. 휴... TV 소리는 여전히 안 들렸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정말이지 십년감수했다.


아이들이 오자마자 신발장에 출석번호랑 이름 명단을 붙여놓고, 자기 이름에 써있는 번호에 신발주머니를 넣으라고 안내를 했다. 그러나 역시 아이들은 자기 번호를 확인하지 않고 신발주머니를 아무데나 넣어놓았다. 자기 번호를 제대로 확인한 아이들이 자기 자리에 누군가의 신발주머니가 있는 것을 보고는 너도 나도 나에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가 출석번호 1번인데 1번 자리에 신발 주머니가 있어요."

"그래요? (정말 1번 자리에 주머니가 있다. 1번 자리에 있는 신발 주머니를 꺼내 묻는다) 이거 누구건가요?"

주인이 나왔다.

"선생님이 여기 붙여놓은 번호를 확인하고 넣으세요."

"아 맞다. 저는 11번이네요."

내가 자리로 돌아왔을 때 11번 아이가 다급하게 나에게로 걸어왔다.

"선생님 근데 11번 자리에 누구 주머니가 있어요."

"그래요?"

다시 나가 보니 11번 자리에 있는 신발 주머니가 또 있었다. 아. 놔.

"이거 누구껀가요? 번호 확인하고 넣어야지요."

주인이 나왔다.

"아 제꺼요. 근데 저 몇 번이에요?"

"여기 봐봐. 5번이라고 적혀있지?"

"아. 5번이구나. 근데 5번 자리에 누구 주머니가 있어요."

"(또야?) 이거 누구거니? 이 신발주머니 주인?"

이걸 아침부터 무한 반복했다. 신발장과 교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천 보는 걸었을 듯.


1교시.

아이들은 자기 몸 만한 쇼핑백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쇼핑백 안에 든, 부모님이 챙겨 준 준비물들을 어디다 두냐고 묻기 시작했다.

"색칠이나 만들기 할 때 쓰는 것은 바구니에 넣어서 책상 서랍, 청소도구는 사물함에 넣으세요."

내가 말했으나 아이들은 다시 묻기 시작했다.

"선생님 근데 물티슈는 어디다 놔요?"

"사물함이요."

"휴지는요?"

"사물함."

"선생님 크레파스는요?"

"서랍."

"선생님 바구니는요?"

"서랍."

"선생님 이건요? (가방을 아예 통째로 열어서 보여줌)"

"... 일단 자리로 가세요. 다시 설명할게요."

결국 하나하나 다시 설명해야 했다.

"색연필 들어보세요. 이건 서랍에 넣으세요. 사인펜 들어보세요. 이건 서랍. 물티슈 들어보세요. 이건 사물함."

아이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짐이 땅바닥에 어수선하게 깔려 있었다.




교과서 배부를 시작했다.

받아야 할 권수는 8권.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고, 한 권씩 가져가도록 했다. 그러나 같은 과목을 두 권을 가져가거나, 하나를 빼먹고 가져가는 아이들이 수두룩. 게다가 국어는 난이도가 높은 과목이었다. 국어 가와 국어 나가 있어서 헷갈리기 쉬웠기 때문이다. 역시나 아이들은 국어가 두 권이라고 얘기를 해도(1학년 때도 물론 두 권) 아이들이 자기가 국어책을 두 권을 받았다며 하나씩 반납하기 시작했다. 원래 두 권이 맞단다 얘들아. 역시 마찬가지로 한 권씩 다시 검사했다.


"국어-가 들어보세요 머리 위로!"

"아! 선생님. 저 국어-가가 안 보여요."


쉬는 시간이 되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카페인 수혈을 하러 연구실에 가던 중에 한 아이가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선생님."

그러더니 갑자기 이상한 모양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러고는 양 주먹을 내 눈앞에 들이댔다.

"응?"

"고양이."

"응?"

"고양이 발바닥이랑 비슷하죠."

"아하!"

(고양이 발바닥과 별로 비슷하진 않았음.)


아이는 커피를 타러 가려는 나를 또다시 멈춰세우고는 이번에도 양손으로 주먹을 쥐더니 내 앞에 들이댔다.

"그래. 정말 고양이 발바닥이랑 똑같다."

"아니. 이건 강아지."

끝끝내 나는 고양이와 강아지 발바닥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수업 시간이 되었다. 학급 규칙 세우기 시간. 작년에 수업 시간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시계도 안 보고, 시간표도 안 보고 하도 물어보기에 첫날부터 두 가지 문장을 금지시켰다.


"올해 우리반 금지어가 있어요. 첫째는 지금 몇 시에요, 둘째는 지금 몇 교시에요. 왜냐하면 이건 선생님께 묻지 않아도 여러분이 스스로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시계를 봐요."

"그렇죠."

"친구에게 물어봐요."

"그렇죠. 그래도 모르겠으면 어떻게 하라고 했죠?"

"칠판을 봐요."

"네. 분명히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놨을 거라고 했죠. 그런데 혹시나 없다면 반드시 손을 들고 물어보세요. 알겠죠?"

"(다같이) 네~"

어떤 아이가 손을 번쩍 든다.

"근데 선생님 지금 몇 교시에요?"


집에 가기 전 청소 시간이 되었다. 무작정 청소를 하라고 하면 멀뚱멀뚱 쳐다보는 아이들이 있어, 어디를 청소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려줘야 한다.

"청소는 두 군데를 합니다. 첫번째 책상, 두번째 바닥, 따라하세요."

"첫번째 책상, 두번째 바닥."

"첫번째는 뭐라고 했죠?"

"책상."

"자 그럼 청소 시작하세요."

하교시간이 되어 부랴부랴 수업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을 하교 시키고 교실로 돌아왔다. 제대로 검사할 시간이 없어 아이들 보내고 교실을 살펴보니, 몇 명이 필통을 책상 위에 떡 하니 올려놓고 갔다. 게다가 아주아주 크다랗고 눈에 잘 띄는 필통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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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정신없는 3월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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