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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Jan 30. 2021

행복한 덕후의 기본 조건

습관성 불행 집착 증후군 극복기

□ 덕후는 우연한 기회에 탄생한다


중학교 때부터 우연한 기회에 듣기 시작한 KBS 제 1 FM. 친구들은 헤비메탈이다 뭐다 하며 최신 트렌드의 음반을 가져와 자랑할 때, 나는 90분짜리 공테이프에 녹음한 클래식 음악들을 들으며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클래식 음악을 오래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클래식 악기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런 인연으로 첼로를 시작한 게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간다. 정말 긴 덕질의 세월이었다. 


물론 덕질의 기간이 길었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연주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집중해서 연습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제대로 된 방법으로 연습을 했는지에 달렸다. 나는 열심은 있었을지언정, 제대로된 연습 방법의 관점에서는 아주 제대로 무지했다.


이제 그 실패와 집착의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 예체능은 국영수가 아니다


피아노에 바이엘이 있다면 첼로에는 베르너 교본이 있다. 이 교본만 떼면 일단 하이 포지션의 기본은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한 나는 빠른 속도로 진도를 빼기위해 매일 미친듯이 연습했다. 하지만 실력은 늘지 않았다.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이른바 예체능이 국영수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첼로 교본을 '수학의 정석' 보듯이 많이 보기만 하면 첼로 실력이 늘 것이라 생각했다. 내 음정이 얼마나 틀렸는지, 소리가 얼마나 투박한지는 신경 쓰지도 못했다. 마치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이 눈에 보이는 음표만 박자에 맞춰 끼워 넣으면 연습이 되는 줄 알았다. 


새로운 첼로 선생님한테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정말 죄송한데요. 첼로를 더 못 가르쳐 드릴 것 같아요."

"바쁜 일 생기신 모양이에요?"

"아...그런 게 아니라 첼로 하시는 게... 처음부터 끝까지 음정이 하나도 맞지 않아서 도저히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뭐가 맞는 음정인지 찾다가 제 머리가 이상해 질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그날 처음으로 남의 입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 음정은 하나도 맞지 않았을 뿐더러, 나는 그 음정이 틀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에게 정확한 피드백을 해준 선생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잘 하고 있다고 얘기할 뿐이었다. 아마도 어차피 취미로 하는데 초반부터 기 죽일 필요는 없겠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날 들고 갔던 한 달치 레슨비로, 내게 처음으로 진실의 피드백을 준 그 선생님과 기절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이 일 덕분에, 예체능 덕질의 기본은 집중적인 연습과 제대로 된 피드백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점점 더 불행해지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자체 피드백 시스템도 도입했다. 내가 하는 모든 연습을 녹음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녹음한 소리를 듣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야, 이게 첼로 소리라고?  그리고 활을 긋기만 한다고 다 똑같은 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전공자들은 마치 활에 접착제를 바른 것처럼 현에 찰싹 달라붙은 소리가 나는데 내가 내는 소리는 풀피리 부는 소리만도 못한, 이른 바 소리 반 공기 반인 어설픈 소리가 났다. 녹음기의 성능 탓을 하지 않기 위해 라이브 연주 전용 고성능 녹음기를 샀다. 그 녹음기로 녹음해도 내 첼로 소리는 역시 허접했다. 장비빨로라도 버티자며 악기를 바꿨다. 밤 늦게까지 연습을 하기 위해 울림통이 없는 전자첼로도 샀다. 이것도 안 되겠다 싶어 방에 방음설비를 했다. 


투자한 돈과 시간이 늘어나면서 실력은 전보다 눈에 띄게 나아졌다. 하지만 내 욕심과 기대수준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높아졌다. 좋아서 시작한 악기가 내 인생의 짐처럼 느껴졌다. 나는 첼로 때문에 점점 더 불행해 졌다.


□ 운명의 선생님들


십 여년 전, 이란에서 지내고 있을 때다. 아르메니아 음대 교수님으로 부터 레슨을 받고 있었다. 6개월 쯤 레슨을 받고 있던 어느 날, 선생님은 내가 연습해 간 하이든 협주곡을 몇 마디 들어보지도 않고 곡을 멈췄다.


"앤디, 너는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 그런 상태로 연주하는 건 연주가 아니야. 그렇게 연습하면 넌 곧 몸을 다치게 되고 평생 악기를 못하게 될지도 몰라. 집에 돌아가서 힘 빼는 연습을 하고 그때 다시 찾아오도록 해."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매우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날 레슨은 15분 만에 끝이 났다.


나는 선생님이 주문한 연습 방법으로 몇 달을 연습했지만 힘을 빼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다시는 그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 (유튜브 연주 영상으로 지금도 만나고는 있지만...나는 좋아요도 댓글도 남기지 않는다....아직도 너무나 원망스럽다.)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리 없다. 한국에 돌아와 모 시립 오케스트라 첼로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엔 9개월 정도 지났을까,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순간 아르메니아 음대 교수님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아 선생님...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제발.’


"죄송하지만 드릴 말씀이 있어요."

"(올게 왔구나) 네?"

" 이렇게 매일 방에 쳐박혀서 연습만 하시면 좋으세요?"

(내 귀를 의심했지만, 분명히 쳐.박.혀.서 라고 말했다)

"네??"

"늘지도 않는 어려운 곡만 하지 마시고 친구분들하고 합주나 하시고 가볍게 즐기시는 게 좋지 않으시겠어요?"

"..."


애초에 너무 의욕적으로 어려운 곡을 시작한 내 잘못이었다. 선생님은 고의적으로 모욕할 의도는 없었겠지만 선생님의 말은 그 자체로 완벽하게 모욕적이었다. 이렇게 여러 선생님에게 버림 받고 모욕을 당하고 나니, 첼로를 더 이상 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무슨 음대를 가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이제는 그만 내려놓을 때가 되었나 보다.'


□ 외도에서 얻은 것


그런 생각은 바로 실천으로 옮겨졌다. 동네 록밴드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골프에 미쳐서 무리하게 연습을 하다가 갈비뼈에 두 번이나 금이 가기도 했다. 멕시코에 가 있는 동안은 오토바이에 빠져서 아무 생각 없이 도로를 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게 리셋된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그 동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즐긴 것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록밴드, 골프, 오토바이, 이 모든 것들도 첼로와 비슷했다. 그저 시간을 떼우기 위한 취미로는 내 실력이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었지만, 평생 연마하며 완성해 가기위한 취미로는 첼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열심히는 하는데 즐겁지 않은 상태. 처음에는 너무 재밌어서 시작한 것들이었지만, 나는 더 잘하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이내 실망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 없었다. 행복한 덕후가 되기 보다는 불행한 집착의 그늘에 머무르려고 하는 사람. 습관성 불행 집착 증후군.


첼로를 떠나 외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포기하고, 내가 나 스스로를 포기했던 그 시간은 이제 과거에 남겨둘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원래 첼로를 좋아했던 사람이고 지금도 변함없이 좋아하고 있으니까. 여전히 요요 마의 따뜻한 미소를 사랑하고, 미샤 마이스키의 유려함을 존경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악기를 다시 꺼내들었다. 말랑말랑해진 손 끝의 굳은살도 조금씩 단단해졌다. 이제 나는 조급함과 스트레스를 떨치고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까? 비록 내일 다시 좌절에 빠지더라도 금세 잊고 다시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덕후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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