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듦의 계절, 인디언 서머(6)
나는 주말 아침마다 레이싱 자전거(트렉 마돈)를 탔다. 몇 년 전만 해도 50분 안에 3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었다. 풍속에 따라 시간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지만, 평균적으로 1시간 이내에 30킬로미터를 주파했다. 사실 나는 로드 자전거의 속도감을 즐긴다기보다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기만족과 위안에서 자전거를 탔다.
어쩌면 이렇게 열심히 자전거를 타면 다리에 근육이 생기고, 오히려 더 젊어질 수 있다고 착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심하게 몸살을 앓고 난 뒤부터는 1시간 안에 30킬로미터를 타는 게 힘겨워졌다. 예전에는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오히려 수명이 단축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근육이 붙기는커녕 피로만 쌓이는 듯했다.
언제부턴가 자전거를 타면서 속도계를 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40대 중반에 노안을 받아들이고 안경을 바꿨듯, 이제 50대 중반이 된 나는 몸의 노화를 받아들이며 자전거를 편안하게 탈 수 있는 것으로 바꾸었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 하던 일들을 하나둘씩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늘어났다. 젊었을 때는 몸에 무리가 가는 운동을 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일종의 극복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줬지만, 이제는 오히려 몸을 관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노화되고 불편해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지는 것도 많다. "좋아진다"보다는 "진실해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나이 듦을 통해 배우고 얻는 것이 의외로 많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종종 피부와 외형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기 때문에, 나이 들고 노화되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다. 하지만 나이 듦의 실체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넘침과 모자람을 경험해 봐야 충분함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것을 잃어봐야 그 가치를 깨닫는다. 젊은 시절에는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만, 40대 후반이나 50대쯤 되면 공감하게 된다. 이처럼 인생은 나이를 먹으며 많은 실수를 통해 배움을 얻는다. 머리로는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다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
은퇴를 앞두고 있다면 이제 더 잘 사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동안은 자신을 혹사하며 ‘되어야 하는 나’로 살아왔지만, 은퇴 이후에는 그동안의 자리에서 물리적으로도 벗어나야 한다. 중장년이 되면, 반강제적으로나마 ‘되고 싶은 나’로 살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주어진다. 이제는 해야 하는 일이 아닌,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자연스럽게 마련된다.
이 시기가 바로 ‘인디언 서머’다.
예전에는 자전거를 탈 때 속도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속도를 내기보다는 풍경을 눈에 담고, 자전거 안장 위에서 사색할 여유가 생겼다. 일정한 속도로 페달을 밟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며 ‘움직이는 명상’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앞바람이 그저 고통스러운 저항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바람의 두께와 결을 느끼며 도로 위를 유영하듯 나아갈 수 있다.
30~40대에는 속도가 인생의 목표였고, 성공과 발전이 삶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50대가 되니 방향이 중요해졌다. 이 시기에는 성숙과 반성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하고 싶은 일과 할 필요가 없는 일을 구분하게 되었다. 마치 고기에서 지방과 살을 갈라내듯, 타인의 일과 나의 일, 내가 되어야 할 모습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모습들을 분명히 가려내게 된다. 이는 갑자기 지혜가 넘쳐서가 아니라, 몸이 피곤해지면서 자연스레 최적화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입이 즐거운 음식만을 찾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 대부분은 건강에 해로운 음식이었다. 이제는 몸이 그런 음식들을 거부하거나 병으로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입에 즐거운 음식보다는 몸에 좋은 음식을 선택한다. 결국, 원래 그래야 했던 것을 나이 들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50대는 자의 반 타의 반, 반강제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이는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 나만의 ‘인디언 서머’인 것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제는 죽음이 가깝거나 타인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시점이 온 것이다. 이런 시기에는 돈 없이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고, 반드시 발견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돈을 벌기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돈 없이도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세계일주 같은 버킷 리스트는 이제 내려놓자. 돈을 쓰면서 하고 싶은 일은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 것보다는, 돈에서 벗어나 죽을 때까지 후대에 남길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지구상의 동식물을 보자. 그들에게 은퇴라는 개념이 있을까? 은퇴한 경찰견은 본 적이 있어도, 은퇴한 사자나 은퇴한 은행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은퇴한 범고래가 있을까? 그렇다면 사람에게 은퇴란 무엇인가? 은퇴라는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다소 도발적인 질문이지만, 은퇴 사회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는 은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아 ‘나듦’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50대 이후의 삶을 ‘인디언 서머’라는 비유로 설명했다. 내가 은퇴라는 단어를 꺼리는 이유는 이 단어가 나이 듦을 마치 재앙처럼 여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종족을 번식하며 생명을 이어간다. 인간의 경우에도 생물학적 번식은 주로 정자와 난자의 역할로 이루어지지만, 인간은 문명과 문화를 창조하는 독특한 존재다. 그렇다면 인간의 종족 번식도 다른 생물과 같아야 할까? 은퇴 이후, 즉 나의 표현으로는 ‘인디언 서머’, ‘나듦의 시간’에 접어들면 이제 자신이 남길 열매와 씨앗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속도계를 보며 달려왔다면, 이제는 방향계를 들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나아갈 시간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씨앗 있는 열매로 맺어야 한다. 은퇴 후에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해온 일들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나에 대한 소명이자 내 삶에 대한 존중이다. 과일의 당도는 뜨거운 여름에 최고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과일은 가을이 되어서야 당도가 높아진다. 일교차가 큰 가을밤에는 과일이 당을 더 많이 축적하며, 나무에 달린 열매는 후숙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어간다.
흔히 50대를 겨울을 앞둔 가을에 비유한다. 많은 사람이 50대에 가장 높은 보수를 받으며 개인 라이프 사이클의 정점에 오르지만, 그 시간이 영원하지는 않다. 당도가 최고조에 이른 과일이 나무에 계속 매달려 있다가 서리를 맞으면 발효가 시작되고, 결국 썩게 된다.
50대가 ‘인디언 서머’에서 자기다움을 찾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위한 열매로서 의미 있는 결실을 맺어야 한다.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통해 후세가 성장할 수 있도록 당도를 더하고, 그 속에 ‘자기다움’이라는 씨앗을 담아 전달해야 한다.
이제 나는 자전거 속도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스마트폰 지도의 자전거 내비게이션을 활용해 항상 다니던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로 다닌다. 기록을 달성하는 기쁨보다는 우연히 마주치는 즐거움을 따라가는 중이다. 이제서야 자전거가 주는 진짜 행복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전거를 타는 행복을 배웠다.
몸의 노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전거 타는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방식을 배운 것처럼, 중년이 되면 이제 나이 듦의 기쁨과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은퇴 전까지 사용했던 기존 OS를 지우고, ‘나’로 살아갈 새로운 OS를 다시 설치해야 할 때다.
아래 교육 과정은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와 [두 번째 나] 책을 모두 읽으신 사람을 위해 2025년에 시작될 [두 번째 나를 위한 자기다움 워크숍]입니다.
1주 차. 발견과 인정 (Uncover & Accept)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결정할 때 비로소 나답게 살 수 있듯이, 중장년의 전환기를 인정해야 비로소 성장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이 듦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나답게 사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이 듦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여정을 시작하자.
2주 차: 발견과 개발 (Discover & Develop)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직업명으로 그려진 목표였다. 중장년이 되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직업이 아닌 진짜 나의 정체성으로 답할 때가 되었다.
3주 차: 정의와 습관 (Define & Habit)
삶의 중요한 부분은 습관으로 이루어진다. 직업과 역할을 넘어선 정체성을 정의하고, 작은 습관을 통해 진정한 자기다움을 구축하자. 정체성은 반복된 선택과 습관에서 피어난다. 내가 되는 습관을 통해 자기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4주 차: 변화와 일상 (Change & Routine)
하루의 작은 변화가 인생의 혁신을 만든다. 하루를 설계하고 기록할 수 있는 종이와 연필만 있다면 충분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가면 단순히 나이 들어갈 뿐이지만, 변화를 통해 내가 될 수 있다.
5주 차: 리셋과 설치 (Reset & Install)
나이 들어가는 것은 단순한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평가하며 진정으로 나다운 삶을 시작할 준비가 필요하다. 내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실천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자.
6주 차: 탄생과 명명 (Birth & Naming)
새로운 시작은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할 때 완성된다. 이제 새로운 정체성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자. 그것이 바로 자기다운 삶이다.
7주 차: 회상과 성찰 (Recollection & Reflection)
과거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다. 실수와 성공을 회상하며 얻는 교훈은, 현재 나를 성장시키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8주 차: 기억과 창조 (Memory & Creation)
미래의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도구다. 상상을 통해 떠올린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자.
9주 차: 목적과 유산 (Purpose & Legacy)
나의 유산을 정의할 때,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가 분명해진다. 지금까지 나답게 살아온 삶을 정리하며 나의 인생 황금기를 준비하자.
10주 차: 연결과 공동체 (Connection & Community)
진정한 공동체는 혈연이나 학연이 아닌 같은 목적과 소명을 공유하는 사람들 속에서 찾아진다. 중장년의 삶은 직장인의 정체성을 넘어, 나와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부족의 일원이 되어가는 여정이다.
관련 사이트
https://www.goodbrandgoodecosyste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