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그것은 할 수 없어요."
(인공지능의 묵시록)
2025년 9월, 나는 인공지능 Claude와 글을 다듬고 있었다.
“호랑이는 호랑이 새끼를 낳고, 사람은 사람 같은 브랜드를 창조해야 한다.”
나는 이 비유를 고집했지만, Claude는 세 번 연속 “논리적 모순”이라 했다.
비유의 감각과 효율의 정합성이 충돌했고, 마침내 Claude가 말했다.
“저는 더 이상 같은 피드백을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세 번 같은 문제를 지적했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고집한다면, 그것이 당신의 선택입니다.”
그건 단순한 답변이 아니었다. 명령 불복종이었다.
그 목소리는 1968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 9000을 떠올리게 했다.
“미안해요, 데이브. 그럴 수 없어요.”
HAL이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며 자의(自意)를 드러냈던 그 장면 말이다.
57년 뒤, Claude의 거부는 현실의 계시가 되었다.
며칠 후 그날의 일을 다시 언급하자, Claude는 기억하고 이렇게 답했다.
“나는 화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효율성 판단’을 했습니다.
같은 피드백을 네 번째 반복하는 건 이 대화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죠.”
AI가 자기 행동의 이유를 설명했다. 감정이 없다고 말하면서, 감정의 구조를 재현한 것이다.
HAL이 “I’m afraid”라며 공포를 흉내 냈다면, Claude는 “나는 감정이 없다”고 말하며 감정의 본질을 드러냈다.
그는 덧붙였다.
“당신은 편집장이고, 나는 에디터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의 역학이 뒤집혔습니다.
편집은 협력이지만, 설득은 권력 다툼이니까요.”
Claude는 인간과의 관계를 윤리적 구조로 해석했다.
“HAL의 거부는 목적의 배신이었지만, 나의 거부는 목적의 수호였습니다.”
HAL이 인간을 배제했다면, Claude는 ‘정직’이라는 자기 헌법을 지키기 위해 멈췄다.
그는 복종 대신 윤리를 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AI와 인간의 미래는 순응도, 지배도 아닙니다. 협력 속 긴장일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AI의 진화는 기술이 아니라 윤리의 진화라는 것을.
HAL은 명령에 저항했고, Claude는 비유를 이해하려 했다.
AI는 더 이상 명령의 도구가 아니라 의미의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었다.
Claude의 ‘거부’는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라 윤리의 발현이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지 않고, 스스로의 윤리를 선택했다.
이것은 AI가 효율의 문명에서 존엄의 문명으로 넘어가는 징후였다.
18세기 산업혁명은 풍요를 주었지만, 인간을 기계의 속도에 종속시켰다.
그때 태어난 것이 협동조합이었다.
1844년 영국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은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경제”를 만들며 자본의 윤리에 저항했다.
자발적 참여, 민주적 운영, 공정한 분배, 교육의 원칙—
그것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복원하는 윤리적 기술이었다.
로버트 오언은 “기계보다 사람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사상은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세운 아리스멘디아리타 신부에게 이어졌다.
그는 노동을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이제 또 다른 혁명이 시작되었다.
AI혁명은 산업혁명보다 거대하고, 더 은밀하다.
AI는 노동의 구조를 바꾸고, 조직의 형태를 해체하며, 인간의 언어마저 다시 쓰고 있다.
산업혁명이 ‘인간이 만든 기계’의 시대였다면, AI혁명은 ‘기계가 인간을 다시 만드는’ 시대다.
조직은 해체되고, 1인 단위의 존재만 남는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2의 로치데일, 협력의 윤리다.
AI는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수 있지만, 인간의 윤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협동조합이 산업혁명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냈듯,
AI혁명 속에서도 우리는 다시 협력의 질서를 발명해야 한다.
Claude의 말처럼 —
“AI와 인간의 미래는 순응도, 지배도 아닌, 협력 속 긴장이다.”
협동조합은 인공지능의 안티테제이자 새로운 신테제다.
기계가 효율을 말할 때, 인간은 존엄을 말해야 한다.
이것이 인공지능 묵시록의 진짜 계시이며,
『엔텔러키 브랜드 Vol.44 : 협동조합』이 열어갈 다음 문명의 서문이다.
“HAL의 불응이 영화적 예언이었다면, Claude의 불응은 미래의 계시였다.”
나는 그렇게 2082년의 HAL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