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현으로 태어나, 권민으로 죽다.
조태현으로 태어나, 권민으로 죽다.
지금 마감 중인 『엔텔러키브랜드 Vol.3』의 주제는 ‘1인 기업가의 휴먼 브랜드’다.
오늘로 열 명의 인터뷰를 모두 마쳤고, 그들의 이야기를 엮고 있다. 9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유목민이 밤하늘의 별을 잇듯, 나는 그들의 말과 삶을 선으로 이어 하나의 별자리를 만든다.
인터뷰가 시작될 때, 사람들은 내 명함을 바라보고 다시 나를 쳐다본다.
“이름이…?”
권민 옆의 작은 세 글자가 이름인지, 직함인지, 혹은 필명인지 묻는다.
한때는 ‘권민’만 썼지만, 혼란을 막기 위해 본명 ‘조태현’을 함께 넣었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한다.
“필명이 아니라, 조태현의 묘비명이 권민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잠시 멈춘다. 그 순간부터 나는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낸다.
나의 일은 이름처럼 존재하는 법을 찾는 일이다. 경영에서는 그것을 ‘브랜딩’이라 부른다.
우리는 태어날 때 하나의 이름을 받는다. 그리고 살아가며 또 하나의 이름을 만들어 간다.
부여된 나와 선언된 나, 그 사이를 잇는 과정이 브랜딩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증명은 성취나 스펙이 아니라 자기다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일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휴먼브랜딩(Human Branding)의 출발점이다.
브랜드는 내가 가진 기술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존재의 언어다.
브랜딩은 ‘무엇을 하는가’보다 ‘왜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이 질문이 단순한 사명 선언이 아니라 존재의 정당성을 향한 물음이 될 때, 일은 생계가 아니라 소명이 된다.
그때 브랜드는 상품이 아니라 삶의 형식이 된다.
존재의 질문이 곧 브랜딩의 질문이 될 때, 우리는 일과 존재를 분리하지 않는다.
일은 나를 닮아가고, 브랜드는 나를 증명해 준다. 우리는 1인 기업가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나’는 결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다움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드러난다.
그래서 협동조합(Cooperative)은 인간 중심 브랜드의 철학적 거울이다.
협동조합은 이익의 조직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이곳에서는 개별의 브랜드가 해체되지 않고, 서로의 철학 안에서 공명하며 성장한다.
개인의 엔텔레키(Entelechy)가 모여 공동체의 브랜드십(Brandship)을 이룰 때,
브랜드는 생존을 넘어 영속의 단계로 진입한다.
브랜드는 결국 나의 초상화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일에 임하는 태도, 관계를 맺는 방식이 모두 브랜드의 언어로 남는다.
브랜딩은 ‘나답게 존재하는 기술’이다.
진정성은 수사가 아니라, 존재의 일관성이다.
브랜드는 하루를 닮는다.
그 하루의 선택들이 쌓여 ‘나는 누구인가’를 증명한다.
“브랜딩이란, 이름처럼 살아가는 일이다.
브랜드는 상품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열 명의 인터뷰이, 그들은 모두 자신다운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금, 그들의 이야기를 별자리처럼 엮으며
1인 기업가들이 만들어 가는 존재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