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져야만 보인다
인생의 결말을 먼저 본 후에야 비로소 해석되는 것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 어제 막을 내렸다. 나는 1, 2편을 보다가 멈췄다. 더 이상 보기 싫어서가 아니다. 마지막 회를 먼저 보고, 다시 3편부터 이어 보려 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도 결말부터 확인하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편이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며 황당해하거나 기괴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Story)’가 아니다.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감독과 작가의 숨겨 둔 의도, 그리고 치밀한 복선들이다. 결말을 알고 보면,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장면조차 의미를 입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극 중 김낙수는 도진우 부장에게 뼈아픈 말을 던진다.
“넌 왜 임원이 되고 싶었냐? 왜 안 됐는지 말고, 왜 그렇게 바둥바둥 살았는지, 뭘 위해서 살았는지 알아? 너 자신에게 좀 솔직해져 봐. 그럼 사는 데 좀 도움이 될 거다.”
김낙수가 도진우에게 던진 이 일갈은, 사실 임원이 되지 못한 과거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 질문은 화면을 뚫고 나와 나에게도 날아와 꽂혔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가장 잘 속는다. 때로는 알면서도 속아 주기로 작정한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나는 2020년, 3개월의 휴직 기간을 가지며 ‘내가 왜 이렇게 바둥바둥 사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나에게 걸어 둔 최면과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렸다.
참회록을 쓰려는 게 아니었다. 나는 단지 질문을 던졌고, 그 대답을 찾고 싶었을 뿐이다.
‘더 이상 일해도 돈을 벌지 못할 때, 나는 누구인가?’
답을 찾기 위해 나는 계속 내 안으로 파고들어 글을 썼다. 그렇게 치열하게 스스로와 마주하며 써 내려간 기록이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와 『두 번째 나』라는 책이 되었다.
인생의 고난도 ‘해석’이 되면 견딜 수 있다. 해석된 고난은 단순히 버티는 것을 넘어 에너지와 용기, 심지어 새로운 가치로 전환된다. 그리고 고난을 해석하게 해 주는 힘은 바로 ‘솔직함’에서 나온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지나온 삶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솔직해지기 위한 첫 질문은 이것이다.
“목적이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고 열망하는 모든 것의 밑바닥에 깔린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다소 당황스럽고 불편한 질문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답이 거창한 소명이 아니라, 때로는 돈이나 권력, 인정 욕구 같은 날것의 욕망임을 인정할 때 진짜 솔직함은 시작된다.
결국 나는 드라마를 결말부터 보는 것처럼, 내 인생의 결말도 먼저 묻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계급장이 떼어지고, 노동의 가치가 사라진 순간, 남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이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을 때, 지금까지의 바둥거림도 비로소 하나의 맥락 있는 이야기가 되어 해석되기 시작했다.
솔직해져야만 숨겨진 목적(의도)이 보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9cgTYxyyVI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