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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4) 둘만의 장례식

by 송영채

루아를 보내고 나온 남자는 소년에게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루아를 보내고도 장례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어요.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때라, 법적으로 장례식이 금지된 시기였죠.”


게다가 의식을 복제한 루아는 죽은 게 아니라고, 남은 가족들은 자위하고 있었으니 장례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생각해 보니 오늘 아침 정원에서 할아버지가 쪄 주신 감자를 먹은 뒤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소년의 뱃속에선 아주 오랜만에 강한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둘은 혁신기술센터 건물 옆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제가 체육관을 운영하고, 국제대회에서 상금도 타서 돈을 좀 모았어요.”

남자가 눈을 찡긋하며 소년에게 말했다.


집에서 로봇이 제공해 주는 뉴트리팩은 무료로 먹을 수 있지만, 시내 음식점에서의 외식 비용은 매우 비쌌다. 그래서 기본소득을 받으며 외식을 한다는 건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였다. 소년 역시 밖에서 식사를 해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레스토랑은 전구색 조명이 공간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테이블들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어 다른 사람들의 대화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레스토랑 안에는 로봇이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자리 안내, 메뉴 설명, 주문, 서빙, 조리까지—이곳의 모든 일은 오직 사람들이 맡고 있었다.


“오늘 함께 와 줘서, 그리고 조언해 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제 동생이랑 같은 나이인데, 오히려 어른인 제가 더 많이 의지했던 것 같아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많이 힘들어하실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덜 힘드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오늘 하루, 정말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많았네요. 부모님과 루아, 과거에 대한 기억을 다 되찾았고, 루아도 다시 만났고… 그런데 또다시 보내 줬네요.”


남자는 씁쓸한 표정으로 혼잣말하듯 말을 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10년 전의 나라면 무너졌을 텐데, 오랫동안 너무 그리워했던 기억이라 그런지… 아픔도 괴로움도 다 품어지는 것 같아요. 아픔보다, 괴로움보다… 사랑과 추억이 더 커서 그런 것 같아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음식이 서빙되어 나왔다.

구운 스테이크는 테이블에 놓인 뒤에도 한동안 돌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냈고, 감칠맛 나는 향기가 끊임없이 올라와 코를 찔렀다. 아삭거리는 신선한 샐러드도 오랜만이라 더 맛있게 느껴졌다.


루아의 장례식답게, 남자는 식사를 하면서 가족 이야기와 루아와의 추억을 많이 들려주었다.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년의 가족 이야기와 X 박사에 대한 주제도 다시 등장했다.


“증발이라는 게 뭐 같아요? 말 그대로 사람이 어느 순간 없어져 버리는 것?”


“네. 어렸을 때는 말뜻도 제대로 모르고 엄마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정말 좋은 단어처럼 느껴졌어요. 저희 엄마는 오래전부터 삶을 외면하고 싶으셨지만, 저 때문에 그러지 못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차라리 사라져 버릴까 고민하셨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어머니는 어떤 게 그렇게 힘드셨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고민해 봐도… 사실 별 정보가 없어서, 상상이 잘 되지 않더라고요.”


“부모님과 대화해 본 기억이 별로 없지요? 사실 나랑 나이 차이가 14살밖에 안 나지만, 그 사이에 큰 일들이 참 많이 있었고 사회도 많이 달라졌죠. 제 어린 시절에는 그래도 가족이 있었고,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남아 있거든요. 회원님도 부모님께 사랑을 많이 받으셨을 거예요. 너무 어려서 기억나지 않을 뿐… 마음속 어딘가에 그게 쌓여 있을 거예요. 저는 알아요.”


소년은 남자의 말을 들으며 샐러드를 더 먹었다. 남자는 소년에게 매일 방과 후 운동하러 오라고 채근했다. 몸을 빨리 만들어서 로봇으로부터 스스로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며 농담까지 곁들였다.


소년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레스토랑을 나서던 순간,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과 로봇들이 소년에게 다가와 명패를 내밀었다. 교정국 직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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