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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5) 다시, 낯선 집

by 송영채

교정국에 끌려온 소년은 혈액 검사와 뇌파 검사, 그리고 모니터를 보며 진행하는 인지·정서 검사 등 여러 가지 스크리닝을 받았다. 잠시 후 나온 결과지를 본 검사원들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자살 위험까진 아니라도 불안 정서나 우울 정서가 조금은 나타나길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사실 무단가출에 실종까지 일삼는 열네 살 꼬마를 계속 쫓아다니느니, 약물 교화 대상으로 분류해 로봇이 관리하게 하는 편이 그들에게는 리스크도 적고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소년을 대기실에 남겨 둔 채, 교정국 직원들이 옆방에 삼삼오오 모여들어 소년의 거취에 대해 토론하는 듯했다.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소년은 다시 방 안을 둘러보았다.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는 바닥에 단단히 고정돼 있었고, 옆자리에는 하얀색 로봇이 묵묵히 서 있었다. 하얀 벽에는 외부에서만 내부를 볼 수 있는 거울이 나 있었으며, 천장에 달린 CCTV에서는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듯 붉은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대기실 문이 열렸다. 검사 때는 보이지 않던 중년 남성이 들어와, 자신을 교정국 청소년과 과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소년이 우려와 달리 정서 모니터링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알렸다. 다만 부모가 둘 다 불안정 교화 대상이고, 청소년기라는 것이 워낙 들쑥날쑥하므로 오늘 결과만으로 속단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청소년 조사 인권에 어긋나므로 오늘은 집에 돌아가 푹 쉬도록 하겠지만, 며칠간은 로봇이 더 밀착 감시를 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러곤 “이 모든 조치는 인간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처사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소년의 손목에 스스로는 끄거나 풀 수 없는 전자 팔찌를 채워주었다.


밤늦은 시각이었던 터라, 과장은 자동 모빌리티에 동행해 소년을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만 이틀 만에 돌아온 집은 공기도 온도도 어쩐지 달라 보였다. 둘러보면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도, 마치 다른 곳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년은 현관을 지나 습관처럼 신발을 벗고 화장실로 가 손을 씻은 뒤 샤워를 했다. 몸은 습관대로 움직였지만, 평소엔 보이지 않던 물건들, 벽지 무늬, 바닥의 결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삶의 흔적이 많이 묻어 있지 않다는 인상이 들었다.
‘내가 지금껏 살던 곳이 맞나?’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화장실 문 앞에는 소년의 잠옷과 새 속옷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잠옷을 입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소년은 침대에 몸을 뉘었다. 정원사 할아버지의 딱딱한 침대에서 잠들었던 것이 고작 어젯밤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틀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다 보니, 마치 밖에서 1년은 넘게 지내다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던 소년은, 문득 무엇인가 떠오른 듯 벌떡 일어났다. 소년은 옷장 속에 숨겨 둔 하이데거의 책을 꺼내 다시 책장을 열어 보았다. ‘증발’에 대한 메모가 있는 17쪽을 펼쳐, 그 메모를 손끝으로 한 번 쓸어 본 뒤 책을 닫았다. 책을 다시 옷장 안에 넣으며, 소년은 당분간 X 박사를 찾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쉬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


소년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이제야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몸이 깊은 잠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소년은 평소처럼 뉴트리팩을 먹고 등교했다. 로봇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아마도 소년을 더욱 면밀하게 감시하고 있을 터였다.


학교에 도착한 소년은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모든 것이 조금 더 참을 만하게 느껴졌다. 이제부터 매주 세 번, 소년은 교정국 청소년과에 가야 한다. X 박사에 대한 생각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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