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7년 9월 15일 토요일
남편이 집을 나간 지 3주가 지났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밝고 희망차며 강인하던 사람이었는데… 마음이 쓰리도록 아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남편은 늘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원대한 꿈을 품고, 그 꿈을 향해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던, 누구보다 건실한 사람이었다. 아마 그때쯤부터였을까. 그래, 그 무렵부터 남편이 조금씩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4년 전, 남편이 직장을 잃었던 그날부터.
그 이후에도 그는 겉보기에는 꽤 잘 지내는 듯했다. 고정적인 직장이 없어도, 스스로 꿈을 꾸고 이룰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다 우리 수호가 찾아오고, 태어나 직접 돌보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그의 눈빛에도 다시 생기가 돌았다.
그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일궈 성취해 내는 것.”
테크놀로지 기업에 다닐 때 그는, 열심히 일해 임원이 되고, 돈도 많이 벌어 멋진 전망이 보이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건 지나친 욕망이 아니라, 그를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선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직원의 80%를 해고하면서, 그는 직장과 함께 꿈까지 잃어버릴 위기에 쳐했다. 하지만 수호 아빠는 어떻게든 다시 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물론 사회는 우리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했고, 집도 배정해 주었기에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그럼에도 사회는 빠르게 양분되고 있었다. 모든 사다리가 걷어차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새로운 꿈을 찾겠다고.
낙오하지 않기 위해, 급변하는 시스템을 따라잡겠다며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고 또 배웠다.
디지털 신(新) 화폐 개혁이 단행되었을 때, 사람들은 지금 쓰는 화폐가 종잇조각이 될 거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큰 두려움이 사회를 휩쓸었다. 그때 남편은 전 재산을 디지털 자산 회사에 투자했다. 돌이켜보면 그것도 지나친 욕망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대대손손 낙오자가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 투자금은 계좌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찰도, 국가도 그 돈을 찾아줄 수 없었다.
기술 변혁과 사회 발전은 이렇게 급격하게 이루어지는데, 왜 우리를 보호할 장치와 윤리는 이렇게 느리게 따라오는 걸까. 도대체 왜 범죄자들은 기술과 사회 발전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진화하는 걸까. 첨단 기술을 활용해 사방에서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오는 범죄 앞에서, 과연 우리를 지킬 방법이 있기나 한 걸까.
꿈이 독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남편은 그렇게 무너져갔다. 어느새 도박에 빠지고, 외박을 반복하더니, 이제는 집에 돌아오지 않은 지 3주가 되었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지만, 과연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건지… 너무 답답하다.
우리 아들 수호. 너무나 예쁜 수호. 남편도 우리 아들을 그렇게 사랑했는데, 왜 저렇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을까. 이제 제법 말을 하는 수호와 대화를 하다 보면, 더 슬퍼져 눈물이 쏟아진다. 국가에서 배정해 준 집에서, 나눠주는 돈을 받고, 우리 세 식구 그냥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갈 순 없었던 걸까? 그에게는 무엇이 그렇게 부족했던 걸까?
꿈과 사랑이 가득하던 남편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이 현실을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보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더 아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