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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5) 햇살 요양원 203호

by 송영채

기대하던 목요일 아침, 소년은 힘찬 발걸음으로 학교를 향했다. 방과 후에 혜린이 이모와 함께 혜수의 생일파티에 간다는 생각에 들뜬 것이다. 약속, 기대, 설렘, 이 모든 감정이 소년에게는 낯설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답답하고 거슬렸던 학교에서의 시간이, 오늘도 여전히 천천히 흘러갔지만, 이상하게도 충분히 견딜만했다.


학교가 끝나고 소년은 바로 순례길로 향했다. 오늘 혜린이모는 근무를 쉬고 파티준비를 한다고 했다. 소년이 도착해서 두리번거리며 순례자 할아버지를 찾는 사이 혜린이모가 곧 두 팔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순례길에 도착했다.


“할아버지 저기 계시네. 오늘은 우리 같이 가서 이 도시락 드리자.”

소년은 여자의 뒤를 따라 순례자 할아버지에게 향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오늘이 제 동생 생일이에요. 그래서 미역국이랑 잡채 좀 해봤어요.

맛을 제대로 냈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먹어본 지 오래돼서.”


“축하해요.”

오늘은 웬일인지 할아버지가 쉰 목소리로 나직이 대답을 했다.


“할아버지, 여기 이 친구는 14살인데, 수호라고, 할아버지가 좋다고 맨날 숨어서 지켜보고 있대요.”

여자가 미소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소년은 너무 놀랍고 부끄러워서 여자 뒤로 몸을 숨겼다.


“멋진 이름이네요.”


할아버지가 온화한 미소로 소년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여자는 흠칫 놀라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년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소년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제야 소년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감사합니다.”


여자와 소년은 이제 순례길을 떠나 햇살 요양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햇살 요양원은 국가중심부 북쪽에 있는 국가보건부에 위치해 있었다. 20분 정도 거리를 걸어가면서 소년은 여자의 짐을 하나 들어주었다.


“종이 쪼가리 같은 것도 선물이 될 수 있겠죠?”

“종이 쪼가리?”


“아… 네. 그냥 종이들인데, 저한텐 소중한 책에서 뜯은 종이들이에요.

그걸로 종이배를 접어봤는데, 별거 아니라서… 생일 선물로 괜찮을지…”


여자는 말끝을 흐리는 소년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너한테 소중한 책에서 뜯은 거야? 그럼 대단히 귀한 선물인 것 같은데?

근데 종이 접는 취미가 있는지 몰랐네?”


“학교 취미개발 시간에 배웠던 걸 겨우 기억해 냈어요.”

“취미개발 시간이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나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종이가 흔해서, 종이접기 같은 거 많이 했는데

지금은 종이 구하기가 힘들어져서, 취미로 종이접기를 배운다는 게 현실성이 있나 싶네.”


여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듯 말하다가, 곧 소년을 바라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을 이어갔다.


“고마워. 내 동생도 분명 엄청 고마워할 거야.

동생이 눈을 뜨면 볼 수 있게, 우리 병실에 그 배들을 붙여주자.”


소년은 왠지 으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햇살 요양원은 굉장히 오래되어 노후된 건물에 있었다. 적극적인 치료는 못하지만, 가정간호가 힘든 환자들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예산이 빠듯해서 시설 개선이 항상 뒤로 밀리고 있다고 여자는 얘기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도착한 여자는 익숙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소독약 냄새와 오래된 빨래 냄새 같은 것이 소년의 코를 찔렀다. 2층 로비에 서 있던 로봇이 여자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병실을 향해 걸어가면서 흘낏 본 병실 안에는, 침상에 손발이 묶인 채로 잠들어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소년은 황급히 시선을 거두며 몸서리를 쳤다. 소년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여자를 따라갔다.


203호에 도착해 보니 마침 하루에 한 번 있다는 요양원 원장 선생님의 회진시간이었다. 머리가 반은 벗겨지고, 누렇게 때탄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침상 발치에 서서 패드를 들여다보며 보조로봇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실에 들어가니 둘의 대화가 들리기 시작했다.


“욕창은 없지?”

“네. 매일 4회씩 자세를 변경시키며 관리하고 있습니다.”


“식이는?”

“네. 자가섭취 실패 후 영양관 삽입으로 필요 열량 충족하고 있습니다.

아이오(I/O)(*) 정상 유지 중입니다.”


“재활은 잘 진행 중인가?”


“현실세계 적응 훈련은 2차 실패 후 아직 계획에 없고,

재활로봇으로 수동적 근력 운동 시행 중이고, 가상세계랑 연결해서 감각자극 훈련도 진행 중입니다.”


단조로운 말투로 무기력하게 대화를 나누던 의사가, 무슨 생각이 나서인지 갑자기 로봇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다음주쯤부터 현실세계 적응 훈련을 위한 준비, 다시 시작해 보지. 보니까 수면상태부터 적응시키는 연구도 하나 나왔던데… 모션 연동도 성공사례 보이고…

“네. 알겠습니다. 최신지견 확인해서 다시 계획해 보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모니터를 더 들여다보던 의사는 별말 없이 병상을 떠났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여자는 떠나는 의사의 뒤통수를 향해 애써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의사가 자리를 떠나자, 그 뒤에 숨어있던 혜수의 모습이 보였다. 창백한 얼굴, 얇은 관이 연결된 코와, 고글아래에서 가끔씩 움찔대는 입,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마른 몸까지.. 거기 그렇게 종이처럼 가벼운 소녀 하나가 누워 있었다.




*I/O(Input/Output) : 병원에서 환자의 섭취량과 배설량을 기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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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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