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우주 Jan 18. 2024

부모님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

엄마가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

'OOO님 보호자분~', '보호자분 가셔서 수납하시면 돼요'

2023년 11월부터 2024년 새해를 맞이한 첫 주까지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다니면서 나는 '보호자'라는 호칭으로 자주 불린다. '보호자'라는 그 호칭이 나에게 참 낯설게 다가왔다.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흘러버려서 이제, 내가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그런 시기가 온 것이다.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엄마와 병원을 다니면서 엄마와의 하루하루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생각하면서, 한편으론 겁이 나고  망설여지기도 했다. 훗날, 언제일지 모르겠으나 엄마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난 이후에 내가 이 기록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 그 사무치는 그리움들을 내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이 몇 줄을 쓰면서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그 훗날의 시간에 내가 그 모든 슬픔과 그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모든 것을 기억했을 때의 그 슬픔과 아픔과 괴로운 마음을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까 봐 신이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듯도 하여, 그 말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2024년 1월 16일 화요일, 우체국에서 카톡이 왔다. 시골에 계신 엄마에게 보낸 택배가 도착했다는 메시지였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택배 받았어?"

나의 질문에 엄마는

"응~ 잠깐만~"

하며 서둘러 박스를 뜯어보는 듯했다. 이내

"약이 하나씩 밖에 없네?, 엄청 작다~ 아이고 귀엽다~"

라는 전화 너머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같이 웃다가, 엄마는

"저녁 먹고 하나씩 먹으라고? 알았어 잘 챙겨 먹을게"

하고는

"고마워~ 사랑해~"

라는 말했다. 엄마의 말에

"나도 사랑해~"

라고 답하며 전화를 끊고는 나는, 엄마와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해야겠다고 다시 마음먹었다.



내가 엄마에게 보낸 약은 '아리셉트'.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쓰는 약이다. 2024년 1월 12일 금요일, 나의 엄마는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 MRI로 확인한 엄마의 뇌 속 해마는 쪼그라들어 있었고, SNSB-II 인지검사 결과 엄마의 기억력은, 엄마와 비슷한 수준의 연령대와 조건의 사람들에 비해 많이 낮은 수준이었다. (나는 지금도 차마, 이 문장 안에 '현저히'라는 부사를 쓰지 못하고 '많이'로 대체했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엄마의 피검사 결과는 치매 환자들과 비교해 정상 수준이지만, 해마의 위축은 알츠하이머의 대표적 증상이라고 했고, SNSB 결과 또한 인지장애 진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SNSB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전체 검사 결과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내린다는 이야기를 하며, 경도인지장애, 특히 기억상실형 경도인지 장애의 경우 빠르게 알츠하이머로 발전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며, 의사 선생님은 계속 나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검사만 끝내고 시골로 내려가셨고, 나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홀로 진료실에서 의사와 마주하고 있었다.

의사로서, 치매 진단을 내리고 아리셉트 약을 처방하는 것이 의사들 사이에서 얼마나 의견이 분분한지, 본인의 어머님도, 시아버님도 경도인지장애를 거쳐 치매로 발전했다는 경험을 이야기하며, 젊은 시절 의사로서의 본인과 지금의 본인이 어떻게 달라졌는지까지 설명을 해 주며, 돌리고 돌려 의사 선생님은 치매 진단을 내리고 약을 드시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했다. 본인의 이야기까지 길게 하면서, 조심스러워하는 의사 선생님이 고마웠다.

의사 선생님은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그날까지 세 번째의 병원 방문에서 내가 조금은 화가 나 있다는 걸, 그리고 그건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 때문에, 그 사실을 회피하고 싶어서 방어하고 있다는 것을.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 자식으로서 경도인지장애이건 치매이건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요. 뭔가 다른 이유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고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싶고. 그런데 어제는 엄마가 아침에 전기밥솥 작동법을 모르겠어서 아빠가 도와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만은 없는 거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인 건 제 욕심이고요, 여전히 마음 한 켠에는 그 마음이 남아있기도 하고요 ㅎㅎ 제 욕심으로 고집부린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알아서.. 진단하신 대로 약 처방받고 빠른 속도로 나빠지지 않게 여러 방면으로 관리하는 게 최선일 거 같아요.. 약은 엄마도 드시겠다고 하실 거 같고요, 생활적으로 어떻게 관리를 하면 좋을지 알려주세요"

엄마의 치매 진단을 받아들인다는 말을 하기까지 나의 마음과 생각이 얼마나 멀고 험한 길들을 돌아왔는지, 나는 마치 마라톤이라도 뛴 사람처럼 그 말들을 뱉고 나니 온몸에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후 바빴던 금요일 밤과 토요일을 보낸 후 나는 강아지 산책을 제외하고는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실컷 자고 최근에야 알게 된 '최강야구'를 유튜브로 찾아서 보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 일요일 아침엔 잠에서 깨어 엄마와 통화를 하고 난 후 목놓아 울었다. 차분하게, 무덤덤하게 사실을 받아들이는 듯,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엄마의 진단명을 이야기하고, 미리 예정된 일정들을 마치고 나니 마음 깊은 곳에서 깊은 슬픔과 두려움이 올라왔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20여 년 전부터 나는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서 그 감정들이 괜찮아지는 건 아니었다. 부모님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이 더 가까이 한 발자국 내 앞으로 다가온 느낌이었다. 나는, 괜찮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괜찮지 않은 일요일을 보냈고 월요일이 왔다.



2024년 1월 15일 월요일, 여느 때처럼 7시 15분에 집에서 회사로 출발하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기분이 좋으신지 "예에~" 하며 전화를 받았다. 아빠와 같이 걷기 운동을 꼭 하라고 당부를 하며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하다가 시간이 좀 비면 틈틈이 정보들을 찾아보았다.  


경도인지장애 mild cognitive impairment
동일 연령에 비해 인지기능이 떨어져 있으나, 일상생활동작의 독립성은 보존되어 있는 상태.

정의: 경도인지장애는 기억력이나 기타 인지기능의 저하가 객관적인 검사에서 확인될 정도로 뚜렷하게 감퇴된 상태이나,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능력은 보존되어 있어 아직은 치매가 아닌 상태를 의미한다. 이 상태가 섬망이나 다른 정신과적 질환의 진단기준을 만족시키지 않는 상태여야 한다. 즉 치매 고위험군 상태로써 정상노인의 경우 매년 1~2%만이 치매로 진행하지만, 경도인지장애는 매년 약 10~15%가 치매로 진행한다. 또한 이 상태는 치매를 가장 이른 시기에 발견할 수 있는 단계이며 치료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하다.

원인: 경도인지장애는 장애를 보이는 인지 영역이 무엇인가에 따라 기억상실형 경도인지장애와 비기억상실형 경도인지장애로 분류한다. 기억상실형 경도인지장애가 대부분 알츠하이머병으로 이행되는 반면, 비기억상실형 경도인지장애 환자들은 알츠하이머병과는 다른 신경병리를 가지는 경우가 많아 향후 이마관자엽치매나 혈관치매 같은 다른 치매질환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방방법: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혈관성 위험인자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며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노인에게서 발생하는 가벼운 건망증이라 하더라도 규칙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진료를 받으면서 치매를 조기에 진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도인지 장애 [mild cognitive impairment]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고맙게도 인터넷에는 정보들이 넘쳐났다. 치매 가족이 있는 사람들만의 카페도 있었다. 사람들은 정보를 교환하고 본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응원하고 힘을 얻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정보들을 찾고 알게 되니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심플하게 돌아오기로 했다. 간단히, 단순하게 생각해서 알츠하이머로 발전하는 10~15%의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이 아닌, 경도인지장애 그 상태를 유지하는 85~90%의 범위에 들어가면 되는 거다. 약, 음식, 운동, 생활적인 면에서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엄마를 도와주면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부모님이 나와 함께 할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부모님이 나와 함께 숨 쉬는 이곳을 떠나 먼 여행을 가실 때, 지나간 시간이 어떠하였건, 우리는 참 행복했었노라고, 좋은 시간을 보내시다 가셨노라고, 아주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다 헤어졌노라고. 그래서 후회도 아쉬움도 없이,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노라고. 마지막 길에 그렇게 서로 웃으며 인사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순간을 그렇게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모든 날, 모든 시간이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새삼스레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그리하여 모든 순간에 감사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고령은 비극적인 현상이 아니다. 노화의 진정한 의미는 변화다. 인생의 모든 과정은 끝없는 길로 향하는 다음 단계다.
퇴행성 장애가 나타나는 이유는 꼭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몸과 마음에 해로운 노화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세월 그 자체가 아니라 세월을 향한 두려움이다. 세월이 미칠 영향을 과도하게 두려워하는 것이 실제로 조기 노화의 원인일 수도 있다.
고령은 영광과 성취, 활력과 생산이라는 패턴을 보이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충만하게 사는 삶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 조셉 머피 [잠재의식의 힘 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