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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희 Jun 23. 2021

계약직, 미국이라고 다를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삼 년 만에 다시 계약직이 되어있었다.


대기업 취업준비를 하다가 계약직으로 빠진 사람 중 하나가 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준비를 한지 반년이 되었을 무렵, 데스크탑에 조금씩 다른 자소서가 늘어나는 만큼 절망과 수치심도 커지던 시간이었다.


서류에 겨우 붙었다해도 적성검사에서 떨어지자 대기업 취업은 포기해야 했다. 생활비를 받으며 취업준비를 할 형편도 안됐고 의미를 찾을 수 없는 테스트들을 공부하는 게 지겨웠다. 그냥 뭐라도 일을 하고 싶었다.


 뒤로 나는 공기업, 외국계 기업, 중소기업  여러 조직을 경험하며 계약직으로 다채로운 직무들을 해냈다. 다양한 조직과 직무 간의 차이를 직접 경험하고 일머리를 배우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올어라운드 직장인(All around, 만능의, 다재다능한) 되어간다고 느꼈다. 나는 뭐든지 배우면  해낼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근데 사람들 눈에 나는 여전히 계약직이었다. 계약직을 다닌다는 건 취업을 한것도 안 한 것도 아니다. 외국계 계약직 때 옆자리 사람이 취업 잘 돼가냐, 계약기간 얼마 안 남지 않았냐 오지랖을 떨 때마다 실감했다.


계약직은 잠깐 탔다 내리는 지하철 같은 거구나. 그런데 어쩌나, 너도 언젠간 여기서 내려야 할 거야. 그럼 같은 지하철 승객인 우리가 다른 게 뭐지?


지하철은 기억력이 없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한국 사회에서 언제까지고 계약직만 할 수는 없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오로지 나 혼자 감당해야 될 몫은 그렇다 쳐도 사람들은 왜 그리 급을 나누고 치사하게 구는지. 언론고시 준비했던 짬으로 경제 잡지를 운영하는 중소기업에 기자로 채용됐고 드디어 정직원이 될 수 있었다. 정직원이면 뭐하나, 몇 달 버티다 화장실 청소를 하라고 하자 그만뒀다.


그리고 또다시 외국계 기업에 출산휴가 간 어드민 담당자 대체로 계약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입에 풀칠은 해야 하니까. 거기서 운이 좋아 3개월 만에 마케팅으로 옮겨 정직원이 됐다. 그리고 이제 계약직은 진짜로 끝이다 생각했는데 서른이 가까워져 오는 나이, 다시 제자리였다.





우리처럼 평생직장 개념이 없고 근속연수도 비교적 짧은 미국은 계약직에 대한 시선이 좀 다르다. 해고 자유 원칙(At Will Employment Laws)이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회사는 정당한 사유가 없어도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고, 근로자도 자유롭게 언제라도 퇴사할 수 있다는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 계약을 맺지 않는 이상 계약직과 정규직의 차이는 크지 않다.


한국처럼 인턴 수준의 노동력을 잡일에 값싸게 부려먹는다는 인식보다는 내부에서 전문인력을 양성할 자원도 수요도 없는 경우 외부에서 필요에 따라 전문성과 노동력을 찾는다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어떤 직업이든 고용주가 필요에 의해 합당한 보상을 주고 피고용인의 노동력과 재능(전문성)을 빌리는 ‘계약’ 지나지 않는다.


아랫것 주제에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탕비실을 들어오느냐! 상놈은 썩 물렀거라!


그런데도 정규직, 비정규직 나누면서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건 '나는 양반 출신이야'하며 대접을 받으려는 것처럼 촌스럽고 무식한 생각이다. 이런 논리라면 평범한 정규직 회사원이 나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물리학자를 무시해도 당연한 것인가? 물리학자든 청소부든 애초에 서로 간 계급을 나누고 강약약강 태도를 바꾸는 자체가 천박한 짓이란 말이다.


천박함하면 미국이지!


우버에서 계약직 배지는 흑백이었고 정직원은 컬러였다. 최고 수준의 보험이나 무제한 휴가 같은 파격적인 복지정책의 혜택도 당연히 정직원들만 받을 수 있었다. 제일 신경 쓰였던 건 전 세계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얼핸즈 미팅(all hands, 모두가 손에 있던 걸 내려놓고 회의한다는 뜻으로 전체 직원회의를 말한다)에 참석할 수 없다는 거였다. 당시 회사 기밀이 유출되는 일이 많았어서 아예 얼핸즈 미팅룸 밖에 누군가가 지키고 서있었다. 계약직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일할 때는 정직원이라 더 일하고 그런 건 없었는데 놀러 갈 때는 정직원끼리만 갔다. 팀원들 친목 활동을 위해 나온 예산으로 우버이츠팀은 포틀랜드로 놀러 갔다. 계약직은 빼고. 팀의 의미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때쯤 퀸튼이 떠났다. 가장 먼저 팀에 조인했고 뉴질랜드 우버에서 일했던 경험도 있던 그였다. 그가 떠나면서 뒤풀이 장소에서 해준 얘기는 나머지 사람들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사실 퀸튼은 우리의 매니저인 케이티보다도 먼저 팀에 조인해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에밀리는 퀸튼에게 파트너십 팀 매니저 자리를 약속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매니저 자리에 정직원으로 케이티를 채용했다는 것이다. 피가 끓어올랐다. 퀸튼이 그때까지 버틴 것만 해도 용했다.


이런 식으로 초창기부터 프로그램을 키워 온 귀중한 인재가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봤다. 스타트업이란 다 이런 것일까? 아니, 회사라는 조직 자체가 수익을 위해서라면 인정사정없다는 것은 알겠는데 열심히 일해서 사업을 키워도 보상이 없다는 걸 알면 어느 누가 열심히 할까?


응. 누가 열심히 해.


회사는 이런 인재들이 모자랄 일이 절대 없다. 우버에서 일할 수 있다면 계약직이고 뭐고 다 상관없이 열심히 할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우버는 정말 핫했다. 근 10년간 가장 멋진 발명, 역사상 가장 빠르게 큰 회사라는 칭송을 받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미디어에 오르내렸다. 이력서에 한 줄 올리려고 들어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정직원이 되겠지 하며 회사에 열과 성을 바친 이들은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깨닫는다. 왜 자기를 트레이닝 시켜줬던 그 직원이 떠났는지. 왜 진작 그의 미래가 자신의 미래라는 것을 몰랐는지.


이윤이 최고의 목표인 조직인만큼 왜 회사들이 계약직을 쓰는지 이해는 간다. 일반 회사들보다 미래가 훨씬 불안정한 스타트업은 계약직을 특히 더 많이 쓴다. 아무래도 신생 프로젝트들이 많다 보니 그만큼 언제든 어그러지는 프로젝트들이 많기 때문이다. 돈도 훨씬 적게 들겠다, 정직원이라는 미끼를 보고 열심히 일하겠다, 정직원을 뽑았다가 필요가 없어져서 퇴직금 주고 내보내는 것보다 훨씬 나은데 왜 안 쓰겠는가?


삼 년 뒤 시카고 오피스에서 일할 때였다. 어디서 본 익숙한 사람이 남편과 내 자리로 찾아와서 아는 척을 했다. 시애틀 오피스에서 일하던 애덤이었다. 그는 정직원 전환 기회를 잡아 시카고 오피스로 전근을 왔다고 했다. 시애틀에서 나보다 먼저 일하고 있던 친구니까 거의 4년을 계약직으로 지낸 것이다. 애덤의 남편은 애덤을 위해 직장도 포기하고 시카고로 이사했다.


슬프게도 얼마 안 있어 회사는 또 리더가 바뀌어 구조조정을 했고 애덤이 조인한 시카고 팀은 사라졌다.


회사를 다니면서 정말 답답했던 일 중의 하나가 이런 경우였다. 몇 년 동안 그 일에 숙련도와 전문성을 키워왔고 노하우가 있는 직원들은 회사에 엄청난 자산이다. 그런데 회사는 이런 사람들을 자르고 다시 새로운 계약직을 뽑았다. 근속연수가 올라갈수록 급여도 스톡옵션도 더 줘야 하니까.


우버의 Diversity & Inclusion 광고


그렇게 한 치 앞만 보고 사람을 자르는 게 정말 회사에 득이 되는 걸까? 기업들은 철저히 이윤과 관련된 일에만 윤리를 지킨다. 우버가 수많은 다른 테크 회사처럼 사람이 최고의 가치 인척 Diversity & Inclusion(다양성과 포용성, 성별⋅나이⋅출신에 상관없이 채용되고 잠재력을 발산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홍보할 때 나는 진저리를 쳤다.  


사람이 먼저라는 가치관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 돈이 되기 때문에 한 거라는 걸 아니까. 사람이 먼저라면 근속연수가 오래된 직원들을 이렇게 대할 수가 없다.


오로지 이윤의 관점으로 본다고 해도 오랜시간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노하우를 터득한 사람을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한다는 건 손해다. 포지션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도 아니고 필요는 그대로인데 당장 드는 돈을 좀 아끼려고 이런 파렴치한 짓을 하면 안 된다. 그래 봤자 테크 회사 엘리트 소시오패스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It makes good business sense.
이윤을 따져보면 합리적인 방법이야.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인적 자원에 투자하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고 윤리적이라고 본다. 사람 가지고 놀면 벌 받는다!!! 아, 계약직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나 많다.


나는 계약직으로 시작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 회사들은 신사업을 진행할 때 계약직을 많이 뽑고, 신사업이라는 건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도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직장에서 커리어를 키우려는 사람에겐 귀중한 경험과 가르침이 될 수 있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이 점차 가속화되면서 고용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곧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노동시장의 대부분을 채우게 될 것이다.


문제는 계약직을 하대하는 소시오패스들로부터 우리 멘탈을 지키는 것이다. 지들끼리 과자를 먹는 치사한 짓을 해도 내 자존감이 상처를 받지 않게 지켜야 한다.


첫째는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일을 일로 보는 방법이 있다. 나는 이 일에서 뭘 배우고 있고, 이게 나를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실제로 나는 계약직들을 전전하면서 배운 것들을 나중에 다 써먹었다. 전혀 연관 없는 분야에서 잘 써먹기도 해서 내가 그래서 그 계약직을 했던 거구나 했을 때도 많았다.



계급을 나누고 차별하는 사람이 있다면

외계인이 침공하면 너나 나나 손잡고 걸음아 나 살려라 내뺄 텐데.


하고 지 잘난 맛에 행복하게 살게 내버려 두면 된다. 나도 직장에서 계약직이어서 받는 차별 때문에 자존감에 타격을 받을 때면 우주에 대해 읽거나 입자물리학을 공부했다. 어이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효과 있다. 갑자기 내 시야가 사무실을 떠나 저 멀리 안드로메다까지 흘러가거나,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수천억 개의 원자 속으로 빠져들고 나면 다 그러려니~ 하게 된다. 어차피 이 지구에서도 백 년 뒤면 아주 새로운 사람들이 내가 잘났니, 네가 잘났니 하며 싸우고 있겠지.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현장감과 자연스러움을 위해 부득이하게 영어 단어들을 사용하는 점 이해 바랍니다. 저는 한글을 정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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