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는 나를 후퇴하게 만든다
이상하게도 나는 책을 읽으면 선생님에게 매를 맞는 기분이 든다. 선생님이 회초리 들던 시절에 학교를 다니진 않았지만 비슷한 느낌 아닐까. 흥미가 북돋거나 지식을 쌓거나 응원받는 느낌보다는 '핑계 대면서 계속 그렇게 살거니? 최선을 다하지 않을 거면 후회만 하려고 그러니? 아닌 거 알면서 왜 그러니?' 같은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리면서 회초리가 왔다 갔다 한다.
어쩌면 다행이다. 정답 없는 육아와 인생에 대해 혼자 걱정의 꼬리를 물다가도 책이 방향을 잡아주니 참 고맙다.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할 수는 있지만 시간과 공간 등 제약이 있고 원하던 답이 아니라면 상대방의 시간도 나의 시간도 낭비한 셈이다. 300페이지 정도로 묶여있는 종이책 한 권이 어쩌면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스승의 스승인 것 같다. (책의 대단함에 대해서는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텐데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오늘 또 한 번 매를 맞았다. 며칠 전부터 읽어보던 [책 읽기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책을 계속해서 읽고 있었다. 아가들을 재우고 난 후 고요한 시간에 홀로 앉아 집중하니 뿌듯했다. 224쪽.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심심한 아이로 키우자는 내용이다. 225쪽. 규칙에 대한 내용이다.
게임은 주말에 정해진 시간만큼 합니다. 게임 중독이 무서운 게 매일 습관처럼 해서 일상이 되는 거거든요. 주말 1시간씩 하는 게임보다 매일 10분씩 하는 게임이 더욱 위험합니다. 재미로 보는 유튜브 영상도 주말만 이용합니다.
세상에. 며칠 전부터 첫째의 영상 노출 때문에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Paw patrol 이란 애니메이션에 엄청 빠지면서 갑자기 아침에도 보여달라고 하고 거의 매일같이 보고 있다. 나름의 규칙을 정해 엄마가 저녁 설거지 할 때 3편만 보는 걸로 약속은 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너진 느낌이다. 작가는 게임이라고 적어놓았지만 '영상'이라고 바꿔 넣어도 틀린 말 하나 없다.
아가들에게 영상 안 보여주려고 티비도 안 샀는데 우리 집 아닌 곳에서 나 편하라는 핑계로 틀어주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핑계는 이제 그만 둘러대기로 마음먹었다. 첫째도 첫째지만 아직 두 돌도 안된 둘째에게 매일 30분 이상의 영상 노출은 엄마의 잘못이 매우 크다.
종이와 펜을 들었다.
주중&주말 시간표를 잤다. 주중 시간표에서 중요한 점은 아가들 하원 후 집에서 놀기(영상 금지). 집에서 놀면 책을 보든 장난감 놀이를 하든 본인의 놀이에 집중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그리고 주말 시간표에 영상 시청을 넣었다. 원한다면 보여주겠지만 되도록이면 안 보기를 바란다.
달력 사이즈 종이에 만들었더니 크기가 엄청나다.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다. 현간문에 붙였다. 첫째에게 이 시간표를 왜 만들었으며 지켜야 되는 약속임을 어떻게 설명해 줄지 오늘 밤 고민해봐야 한다. 어쨌든 제일 중요한 엄마의 마음가짐이 잡혔다. 내일부터 실천하면 된다. 영상 노출이 주는 달달함을 맛보기 전으로 돌아가서 잊어버리자. 아직은 강한 자극이 필요 없는 아가들이다. 다시 잘 키워보기로 했다.
_I CAN DO IT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