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생각할 시간을 마련해 준다는 것

by unknownbox

아이에게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부모는 어떤 마음으로 품고만 싶은 자식을 내놓고 살까. 밥 먹을 때 장난치는 아이에게는 밥상머리 예절을, 눈물콧물 다 짜며 떼쓰는 아이에게는 세상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음을, 낯가림에 부끄러움이 가득한 아이에게는 인사와 안부를 나눌 수 있어야 함을, 가르치고 또 가르치며 평생을 애기로만 보일 자신의 가장 큰 행복의 행복을 소망한다. 누군가는 자신이 가르친 아이가 착하고 배려넘치는 행복이 되기를 바랄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행복이 되기를 바랄테다. 가르치는 이의 마음은 배우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또 그 다음의 배움을 이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서브웨이에서 만난 상사인 매니저는 가르치는 이로서 모든 신입에게 같은 마음을 전달했다.


“누구든 배우면 일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교육받으며 첫 알바의 가르침이 그 다음과 또 그 다음에서 나를 얼마나 주눅들게 했는지 몸소 깨칠 수 있었다.


첫 알바 근무지였던 생선구이 화덕집의 사장님은 스무살이 되고 처음으로 사회에 나온, 또 한 번 아이가 된 내게 좋은 첫인상을 남겼었다. 조곤조곤한 말투에는 알바생을 향한 존중이 담겨있었고 웃으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주름엔 친절함이 묻어났다. 그러나 첫 날 첫 점심시간이 찾아오며 나는 사장님을 잃고 말았다.

근무 첫 날부터 만석에 손님이 바닥에 흘린 음식물까지 치워야했는데 빗자루가 어디있는지도 교육받지 못한 채 맞이한 피크타임에 정신을 잃고 싶은 지경이었도 다행히 그때 들려온 사장님의 호통 소리에 정신은 잡고 내가 알던 사장님은 떠나보내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도 계속 된 구박으로 마침내 정신까지 반쯤 떠나보내며 돌솥에 손이 데이고 말았었다. 물집까지 났더랬지, 처음으로 화상을 입은 날이라 아마 첫 직장에 들어가 또다시 아이가 되기 전까진 선명한 기억으로 보관할 듯 싶다.

알고보니 알바를 구할 때 피해야하는 요건 중 하나,


알바 공고가 자주 올라오는 곳


에 해당하는 곳이었으며

기분파인 사장님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알바생들끼리 잡담을 나누다가도 후다닥 흩어져 할 일을 억지로 만들고야 마는 고충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기분좋게 근무를 끝내고 싶다면 휴게시간 밥 풀 때 빼고는 사장님과 마주치지 말 것. 그때는 유일하게 떠나보낸 나의 사장님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다음 알바에서도, 그 다음 알바에서도 항시 눈치보며 구박받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일을 하는 알바생이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자세가 사람을 얼마나 작게 만드는지 첫 사회생활을 좋은 어른이자 좋은 상사와 함께한 이라면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한없이 작기만하고 클 기미가 보이지 않던 아이는 새로운 마음을 만나 방학 새 15센치나 커온 같은 반 남자아이처럼 성장통을 이겨내곤 자라있었다.


배우면 할 수 있다는 마음은 아이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가 배움을 찾아 그 뜻을 이해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구속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 그것부터가 아이가 자라게 하는 것의 시작이다.


느려도 서툴어도 처음엔 누구나 그럴 수 있고 각자마다 능숙해지는 시간이 다르니 노력하지 않는 게 아니라면 그 시간을 간섭하지 않는다. 대신 생각할 수 있는 길은 열어주었다. 무언가를 놓치고 빠뜨리면 바로바로 지적하며 그걸 외우게만 시키는 게 아니라 그 부분을 혼자 깨달을 수 있도록 그래서 다시는 같은 일로 버벅거리지 않도록 그렇게 기다리고 상대의 방식을 존중한다. 그게 서브웨이에서 만난 나의 상사가 신입을 가르치는 마음이었다. 스스로 깨치고 배워 습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크라는 마음.


그 마음을 이어 나는 그 뒤로 모든 교육생을 동일한 방식으로 교육했다. 체계가 잡혀있는 곳에서 그 체계대로 업무를 설명하고 그걸 자신의 속도대로 익힐 수 있게. 그렇게 매니저 밑에서 반 년을 넘게 일했으니 그게 너무 당연한 배움의 전제였고 선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가르침이기에 모두가 다 그렇게 가르치고 기다린다고 여겼다.


서브웨이를 그만두고 반년이 지난 지금, 머나먼 타국에서 만난 나의 민족은 내게 색다른 가르침을 선사했다.


무언가를 알려준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 끝맺음을 짓는지 전달하는 것이며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은 그 알려줌을 익히도록 기다리는 것일텐데 이곳의 선임은 제대로 알려주지도 도무지 기다리지도 못하는 전형적인


눈치껏 알아서 터득해 나에게 묻지 말라


를 선보이는 우리의 민족이라 할 수 있으려나


봉투드릴까요? 하는 말에

그럼 이걸 손에 들고가요? 라고 답하는 선임에게 어떤 신입이 하나하나 물어가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까.


신입의 실수을 꼬집었다면 신입이 그걸 인지하고 수습한 뒤 그걸 몸이 익힐 수 있도록 기다릴 수 있어야 함을, 나는 왜 그걸 가르친 선임과 함께할 때는 그게 값진 가르침임을 몰랐을까.


만일 후에 여기서 계속 일하며 가르치는 입장이 된다고 해도 서브웨이에서 한 것만큼 체계적으로 인내를

가지고 적응을 돕지 못할 것이다. 내가 배우지 못한 체계를 전달할 수는 없으니. 다만, 매니저에게 받은 그 마음만은 전달할 수 있을 테다.


사람은 누구에게 배웠는지 표가 나기 나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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