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차, 왜 언니차인가요?
아빠차, 오빠차가 아닌 운전하는 여성들을 위하여.
1. 왜 여성운전일까? - 여자분이 1종 따시게요?
‘언니차 프로젝트’로 신문 기사가 나간 후, 유투브 댓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여성 이동 독립권이라니? 누가 여자를 묶어 놓았나?” 정말 의아한 듯한 말투에 내용과는 상관없이 웃어버린 기억이 난다. 그렇다. 2021년에는 여자가 집 밖에 얼굴을 가리지 않고 나다닐 수 있다. 운전면허도 딸 수 있고, 심지어 차도 가질 수 있다. 자유가 있는 듯하다.
그런데 언니차 프로젝트를 하며 만난 여성분들의 이야기는, 모두 같은 경험을 보여주고 있었다. 운전면허 학원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어떤 여성이 1종 면허를 따고 싶다고 말한다면, 거의 예외 없이 ‘여자분이 1종 면허를 따시게요?’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이 질문은 나도 받았었는데, 학원 접수처는 물론이고 같이 운전면허를 따려 했던 친구조차도 이 말을 내게 했었다. 그런데 이 말이, 나에게만 있었던 일인 줄 알았는데, 언니차 SNS를 하며 1종 면허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덧글 등으로 반응이 백여 개가 넘게 '자신도 1종 면허를 만류당하거나 왜 따냐는 시비를 들었다'라는, 다채로운 사연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어떤 여성분은 왜 1종을 따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집에서 모는 차종을 들어 말해야만 했을 정도였다. 여자가 1종을 따겠다면 따면 그만인데, 마치 특이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라도 한 것마냥 굳이 그 이유를 설명해야만 하는 절차가 한 가지 추가되는 것이다. 휴가를 쓰면 쓰는 거지, 왜 쓰냐고 굳이 묻는 것과 비슷하다. 이유가 시답잖으면 못 하게 하려고? 그런데 운전면허 학원이 우리의 상사였나? 우리에게 무엇을 허락할 처지인가? 왜 묻는 것일까? 1종이 어려워서? 그러면, 여자는 어려운 것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일까?
나 역시도 첫 면허를 딸 때에 이어, 1종 대형 면허를 접수하러 갔을 때 학원 접수처의 첫마디가 “대형 왜 따세요? 어려워요.”였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아연해졌다. 이 사람들은 내가 학원에 접수해서 학원비를 받는 것보다 여자인 내가 1종을 따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먼저인가 싶었다. 그 직원은 계속해서 “대형을 왜 따야만 하는지, 2종이 있는데 왜 따는지”를 계속 물었고, 나는 왜 이것을 해명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언니차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형 면허를 따는 것이었음에도 그 집요함과 '딱히 큰 이유가 있지 않으면 접수할 생각 말라'는 무언의 태도에 질려서 그날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후에 다른 직원에게 접수한 후 대형 1종 면허를 한번에 합격하긴 하였지만, 이런 식으로 1종 면허를 만류하는 운전면허 학원에 대한 이야기는 언니차 트위터에서 몇천 회 공유되었고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이 겪은 운전학원에서의 1종 만류 이야기를 덧붙여 주었다. 그렇지 않은 ‘특별한’ 몇몇의 학원이나 강사 이야기가 주목을 받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흔한 일이었는지, 그런데도 마치 여성에게는 아무 문제도, 차이도 없이 운전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주어진다는 것처럼 파묻혀 있었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언젠가는 차를 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여기서도 여성들의 이야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남성 딜러가 차의 구매자인 나를 보며 차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행인 남성을 보며 설명한다’라든가, 옵션을 상담한 후 시승차를 가져오기로 했는데 사양이 낮은 시승차를 가져온 후 ‘여자분에게는 이 정도 차도 충분하다.’라 주장하는 남성 딜러라든가, ‘여자분이 이런 큰 차를 타느냐’라며 이미 어머니와 결정하여 사기로 결정한 SUV 모델을 만류하는 듯한 남성 딜러라든가. 모두 공통점은 비슷했다. 여자에게는 이렇게 큰 차, 좋은 차는 필요없다는 듯한 태도와 남성 동행인이 있으면 마치 그 사람이 결정권자인 것처럼 대우하며 정작 돈 내는 사람이자 실제로 그 차를 타는 사람인 여성 차주의 선호나 선택 여부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여자가 차에 대해 스스로 설명을 듣고 결정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었던가?
운전이나 자동차를 새롭게 만나는 첫 관문인 운전면허 학원에서부터 ‘나 한 명의 예민함이겠지.’라고 생각하고 넘겼을 많은 여성들의 경험이, 사실 특별히 운이 나빴던 나 한 명의 일이었던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여성들이 그 상황만 되면 거의 유사한 일들을 겪고 있었다. 나로서는 짐작을 했던 일이지만, 실제로 이렇게 이야기가 터져나오자 그 사례들의 양에 놀랐고 다양하지만 똑같은 방향성으로 여성 운전자를 무시하는 것에 다시 놀랐다. 특별한 인맥이 있거나 우연히 훌륭한 딜러나 강사를 만나지 않은 이상은 상당수가 이런 일을 겪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새삼 다시 느꼈다.
운전은, 이미 여성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여성에게 텃세를 부리고 있는 영역이었다는 생각이었다. 내 얼굴이 드러난 유투브 영상을 보고도 ‘누가 묶어 놓았나?’ 라고 여성들이 실제로 겪었던 일들이 마치 잘못된 일이라기도 한 것처럼 비웃지만, 그 말을 하는 그 사람조차도 여성인 내가 자동차 이야기를 하는 것에 어떻게든 한마디, 어깃장을 놓고 싶은 모양새 아닌가? 저 댓글 말고도, 나는 단지 ‘여성 운전자를 위해 여성 전문가와 만나 배우는 워크샵을 준비했다’라고 할 뿐인데 불만스러운 남성들의 댓글이 꼭 있었다. 왜일까? 굳이 따지자면 ‘김여사-이 말은 싫어하지만’가 줄어드니까 나를 환영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도 어떻게든 싫어하는 티를 내었다.
왜 그런지 추측해 보자. 그런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이런 이야기들,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일어나는 실랑이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한다. 혹은, 그런 말을 듣는 여성은 ‘유난히 운전을 못하는 일부 여성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지 실제로 여성을 편견으로 차별하는 사람은 없다고 믿고 싶어한다. 남성과 여성이 똑같은 대우를 이미 받고 있다는 환상을 믿고 싶어한다. ‘김여사’는 정말 운전을 못하는 ‘일부’ 여성에게나 하는 말이지 여성을 비난하는 말은 아니라고 믿고 싶어한다. 차를 사러 가서도 상당수의 여성 차주가 ‘여성분은 그런 것이 필요 없다’라며 여성이기에 그런 대우를 받은 것이 보이는데도, 단지 그건 몇몇 ‘양아치’딜러의 이야기일 뿐이라 믿고 싶어한다. 사고가 일어나면 지나가던 남성 운전자가 그 사고를 잘 보지도 않았는데도 여성운전자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가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을, 경차와 중형차의 사고 현장에서 당연히 경차 차주가 여성일 거라고 생각하며 그 차가 가해자인 것처럼 말하는 일을, 이런 일들이 실제로 흔하게 일어나서 여성들이 자동차에게서 멀어지고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도로 위에서 거친 대접을 받을 때마다 위축되어 결국 운전을 포기하거나 사고 현장에서도 자신감을 잃어 잘못된 주장을 하는 상대 남성에게 굽히고 마는 일이 있다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여성 운전자의 진짜 경험에 대해 말하는 나를 마치 잘못된 사실을 말하는 사람이기라도 하는 양, 한마디라도 어깃장을 놓지 않으면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이다. 이 일들은 모두 주변에서 있었던 실제 사례를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물론 그런 한명한명의 사람들이 ‘여자를 구박해서 운전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그러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성이 운전을 하려 하는 각각의 모든 단계마다, 운전면허 학원에서, 운전을 처음 시작한다고 말하면 주변 남성들이 하는 훈계에서, 당연히 뭘 모르고 말하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비롯된 낮추어봄이, 운전석 차창을 내리지 않으면 시비가 걸리지 않지만 무심코 운전석 차창을 내리고 운전을 하는 날에는 유독 시비가 걸리는 경험들이, 차를 사러 갔을 때 나를 차주 취급을 하지 않고 남자만 찾으려 하는 그 태도들이, 초보 때 미숙한 운전을 마주치면 꼭 운전석을 보고 여성운전자면 굳이 한번 더 욕을 하고 가는 그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운전을 접하고 익혀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단계마다 세상이 이렇게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여자가 운전을 한다고? 굳이 하려는 이유가 뭐야? 보나마자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나왔겠지. 똑바로 하지 않으면 내가 손을 봐 주겠다.’ 마치 해서는 안될 일을 감히 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것마냥 시험하려 들고, '똑바로' 하는지 마는지 시험하듯이 말하고 있는 듯했다. 주변의 운전 초보 남성에게 이러한 사례들이 매우 흔하게 있다고는 들은 적이 없다.
면허를 딸 때부터, 혹은 어린 시절부터 여자아이에게는 자동차 장난감보다 인형을 손에 쥐어 주는 부모님들의 흐뭇한 시선 아래, 당연히 자신은 운전을 한다는 전제 하에 자동차 이야기를 하는 남자들 사이, ‘여자는 공간지각력이 부족해서’라는 말들 속에서 못하니까 안 해도 된다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애매한 ‘00씨는 위험하니까 운전하지 마요’, ‘1종 어려운데 굳이 딸 필요 있나요’, ‘여자는 대접을 받아야죠(조수석에 앉으라는 뜻)’ 같은 위하는 척 하는 말들이 결과적으로는 차를 사지 못하게 말리고, 큰 차를 운전할 기회를 줄이고, 언제건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기를 제한함으로써 결국 남성이 마음대로 어디든 돌아다닐 가능성보다 여성의 활동반경이 좁아지는 결과를 낳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여성이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독립적으로’ 이동할 수 있을 권리가, 자동차를 다루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 '추가적인 감정적 고통-위에서 말한 모든 시달림이다' 없이 알기 쉽지 않아 자동차와 운전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동 독립권이 실질적으로는 저해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할 거면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끊임없이 압박을 준다면 즐겁게 하던 그림 연습을 계속 하고 싶을까? 운전에서 여성에게만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언니차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였다. 여성가족부의 청년지원사업으로 시작하여 여성 전문가와 여성 운전자를 이어 주고, 스스로 기술과 운전 정보, 교통안전에 대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토양과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언니차의 목표였다. 그리고, 즐겁게 운전하고 안전하게 교류하는 여성들의 수를 점점 늘림으로써, 도로 위에서 우리들이 자신의 길을 즐겁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기를, 그래서 여성들이 좀더 넓은 세상으로 달릴 수 있도록, 그 동료가 되고 싶은 것이 목표이다.
이 브런치에서는 언니차의 활동을 하며 있었던 이야기와, 여성 운전자로서 겪었던 일과 문제의식, 도로에서 일어나는 여성 운전자로서의 일들, 그리고 직접 몸으로 겪으며 공부한 도로교통법과 보험, 사고 대처, 싸움 등에서 어떻게 여성 운전자가 도로에서 안전하고 결단력 있게 운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루려 한다. 그러니까, 내가 초보 때에 첫 사고가 났을 때에 느꼈던, 심지어 모르는 아저씨마저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갔을 때의 고립감과(나중에 알아보니 5:5 혹은 6:4사고였다) 그 때에 나는 사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당혹감 속에서 내게 가장 필요했던, '믿을 만한 언니' 그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물론, 좌충우돌 경험도 나누어 드리며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도 진솔하게 풀어 볼 예정이다. 이미 언니차 sns에서도 내용이 상당 부분 써 있지만, 글로 정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 같다. 브런치는 처음이라 긴장도 된다. 열심히 해 봐야겠다.
그러면, 우리 모두 처음의 마음으로. 반갑습니다. 잘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