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와 바비인형, 언니차의 이야기
운전을 시작하려는 여성분들에게
마차와 바비인형
나의 어릴 적, 외국에서 돌아오신 고모부께서는 명절에 나와 사촌 남동생을 위한 선물을 가져오셨습니다, 말이 끄는 서부 개척시대 마차 모형과 금발의 바비 인형이었습니다. 저는 마차를 골랐습니다. 멋져 보였거든요. 사촌동생은 바비 인형이 싫다고 울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질 수는 없었습니다. 마차가 좋아 보였으니까요. 결국 둘 다 제가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모부께서도 이럴 줄은 몰랐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의 저를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왜 영웅들은 모두 말을 타고 달릴까요? 저는 벌판이란 말에 걸맞은 풍경을 본 적은 별로 없었지만 마음 속의 평원에서는 영원히 달리는 적토마와 백만 대군, 그리고 반지 원정대의 빛나는 날개 달린 말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말은 정말 아름답고 위엄이 있었어요. 보통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힘과 폭풍같은 질주를 가능하게 해 주는, 마치 그 영웅의 일부 같았죠. 신화처럼 지치지 않는 힘, 거침없이 더 넓은 곳을 향하는 도전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본다면, 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말의 이미지를 가져다 쓰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왜 모든 이야기들은 고향에서 시작해서 멀고 거친 곳으로 떠나며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요. 홀로 시작한 여행에서 동료를 만나고 모험을 하며 어려움을 헤치고 영광스러운 귀환을 하는 이야기들은, 비록 나는 떠난 적이 없었지만 모험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했습니다. 작은 뒷산을 탐험하며 괜히 없던 길을 가던 기억과,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곳까지 두 시간씩 걸어갔다 오기를 자주 했던 초등학교 시절. 아마 많은 어린이들이 로빈슨 크루소 같은 이야기들에 두근거리던 때가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저만의 특출난 경험일 수도 있지만,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님들의 기대와 함께 모험심과 탐구심을 키워 주는 이야기들을 읽고 자동차 장난감과 함께 자랍니다. 아마 모든 것이 저와 같지는 않겠지만 조각조각 비슷한 추억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자란 어린이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면허를 따고 한 푼씩 모은 돈으로 벼르던 차를 샀다면 매끈하고도 근사한 이야기가 되었겠지요.
당연하다는 듯이 저에게 준비되었던 바비 인형을 제가 선택하지 않았을 때, 저는 동생에게 마차를 ‘양보’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가지고 싶은 것을 가졌지만 그 마차를 보면 어딘지 모를 죄책감이 들어 마음 편하게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것이 아닌 선물을 빼앗았던 것이었어요. 고모부님께서는 제가 마차를 고를 것이라 상상도 하지 않으신 채 제 앞에 두 개를 보여주고 고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제 눈 앞에 주어진 두 가지 중 마차를 고르면 놀라고 당황해 하시면서요. 그렇게 잘못된 느낌을 은연중에 받으면서도 마차를 갖고야 마는 어린이도 있지만, 어떤 어린이는 양보하는 착한 어린이가 되기 위해서 바비 인형을 고르게 될 거에요.
여성들에게 살아오는 일이란, 운전에 대한 생각이란 이런 일들이 차곡차곡 퇴적되는 일 아니었을까 종종 생각해 봅니다. 세상은 우리가 공평하게 모든 것들을 고를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자동차를 고르면 놀라고 당황스러워하거나 걱정을 합니다. 그렇게 어딘가 어긋난 기분인 채 여성들은 마차 모형을 보면 어딘가 내것이 아니게 느껴 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요. 모두가 걱정하며 놀라는 일 말고 조수석에 안전하게 있기를 권장받았던 것은 아닐까요.
운전을 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막차 시각이 얼마나 나를 구속했는지를 이제야 제대로 느꼈습니다. 그렇게 촘촘하게 방방곡곡 뻗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대중교통도, 운신의 폭을 얼마나 좁혔는지 그제야 알았습니다. 자유에 대해 말하고, 추구하며 싸울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자유는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추구할 방향조차 몰라서 영영 모르고 말기 때문입니다. 존재를 모르는 것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운전이 그런 것이 아닌지 가끔 생각합니다.
이동 독립권,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떠나고 돌아올 수 있는 힘이라는 뜻으로 만든 말입니다. 면허를 따고 처음 공유자동차를 빌려 혼자 운전을 하러 나갔던 때가 생각납니다. 진땀을 흘리며 4층 주차 빌딩에서 10분은 걸려 나선 통로와 씨름한 끝에, 1층 주차장 출구에서 길과 맞딱뜨리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지?’ 사실 그동안은 남이 운전하는 것을 타기만 했기에 그걸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실소가 터짐과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부산까지도 갈 수 있지 않나?’ 이 차는 빠르고 나는 운전을 할 수 있으니 어디를 가든 정말로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길에 나섰던 기억이 납니다.
정해진 노선이 아닌 곳으로 들어가며 새로운 곳을 발견하고, 노선에 맞춘 길이 아니라 내가 가려는 곳을 정하고 움직이는 그 모든 순간들이, 잊고 있던 저의 향수이자 제가 가졌던 힘이었습니다. 이름도 없는 자유를 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저처럼 꿈을 가졌지만 그것을 키우는 방법을 잃어버렸던 여성들, 많은 어린이들의 마음 속 먼 고향을 위해 글을 씁니다. 이미 가슴 속에 품고 있었지만 감히 내보여서는 안되었던 그것에 대해서, 가져 보지 않았던 자유에 대해 말합니다. 여성들이 누구의 허락도 승인도 필요없이 가고 싶던 곳으로 모험을 떠나며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기가 언제건 상관없습니다. 내일이건, 몇 년 후이건 떠난다면,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이연지, 언니차 드림
곧 나올 책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