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시대가 막 열린 2000년대의 초입 무렵 나는 시를 참 좋아했다. 지하철에서 수시로 시집을 읽었고 떠오른 것을 노트에 끄적이느라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못 내리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무엇에 그렇게 끌렸는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는지 갓 스무살의 나는 그런 조금 수상한 아이였다.
이 시는 2004년 겨울에 쓴 짧은 시이다. 시가 함축적일수록 시집의 페이지에 잉크가 적게 묻는데 역설적으로 그만큼 여백은 크다는 데서 착안했던 걸로 기억한다. 몇 가지 시어의 상징만을 이용해서 투박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너무 압축하려다 보니 부드럽게 읽히지는 않는다.
작고 진한 잉크 방울을 낳은 것은 여백만큼 컸을 시인의 고뇌의 시간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창작의 진통이 큰 만큼 오래 여운을 남기는 시어들을 낳는다. 시적화자는 잡히지 않는 추상과 이미지들을 활자에 잡아두는 시인의 특별함을 추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