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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냥 Nov 18. 2015

소리 숲

따사로운 햇살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침을 깨우는 불청객일 뿐. 뎅, 뎅, 뎅 울리는 휴대폰 속 알람시계는 지운 지 오래다. 어차피 일어나지도 않을 거 괜히 휴대폰만 고생이니까. 이불 속에서 온몸을 꿈틀거리며 발끝에서부터 신경을 깨운다. 말초 신경을 깨우려다 발가락은 쥐가 난다. 운동부족인 걸 알면서 시도하지 않는다. 하품을 크게 해본다. 밤의 시간이 지배되는 동안 입 속 혓바닥은 오랜 가뭄으로 목구멍까지 퍽퍽하다. 턱 관절이 빠지려고 안간힘 쓰지만 좌우로 움직이며 관절을 맞춘다. 여전히 이불 속에서 꿈틀거린다.


더 이상 똑, 똑, 똑 거리는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안 일어나냐고 이불을 걷어버리는 엄마만 존재할 뿐. 투덜거리며 밥도 먹겠다며 잠결에 대답한다. 부엌에서 뭐라고 하는 엄마의 물음에 잠결에 또 일어날게, 먹을게, 그리고 잘게 라고 속삭이며 이불 속 봉쇄령을 내린다. 배가 고프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다. 마감 시간까지 최대한 몸을 담는다. 여긴 지상 낙원 이불 속이니까. 


눈 좀 더 붙이려다 지각할까 마음 졸이며 제대로 못 잔다. 괴로운 마음 달랠 곳 없지만 이제는 일어나야 할 때. 분분한 낙화가 되어 이불에서 떨어져 화장실로 향해 치카치카, 부앙 부앙, 가갈가갈 한다. 밝은 조명 아래 식탁 위에 준비된 락앤락과 글라스락에 담긴 과일들과 몇 점의 빵, 모과차, 녹차, 아메리카노에 끄덕이며 촵촵촵 먹진 못하고 쪼롭쪼롭 다양하게 한 입씩 먹어본다. 배가 살짝 불러오니 이제는 가야 할 때.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향해 치카치카. 


끝이 없는 아침 준비, 화장할 준비. 이제는 퀵 메이크업의 달인. 15분 만에 햇빛 방지, 잡티 가리기, 아련한 눈빛 발사 섀도우, 눈 크게 라이너, 포인트는 입술 색. 뷰러로 안 집어 주면 아쉬우니까 빠른 속도로 여러 번 샤샤샥. 일련의 반복을 거치니 화장도 학습이로구나. 어제 미리 준비한 코디로 옷 고르는 시간을 줄여본다. 슥슥 입고 나니 이제는 나가야 할 때.


현대인의 친구 스마트폰으로 버스 어플을 켜본다. 즐겨찾기는 버스 어플 실행 시 시간을 절약해주는 필수사항. 1분도 안될 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도 나가서 기다리기 싫어 시간대를 확인해본다.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기기 전 신발장에서 서둘러 힐을 신어 본다. 이제는 힐 신고도 달리기가 가능한 사회 초년생. 달린다, 오늘도. 뛴다, 어제도. 반복된다, 내일도.


겨우 버스 탔더니 또 내린다. 갈아타는 데도 역시 어플로 다음 정류장 버스 오는 시간을 확인한다. 어휴, 한숨 나오게 10분 기다리라는 문구에 고개를 절레절레. 혹은 가슴 졸이게 아직 내리지도 않았는데 3분 후 도착하는 문구에 심장이 콩닥콩닥. 연애 초기 감정보다 더 심장박동 수가 증가한다. 일종의 게임이 시작하는 아침. 버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힐을 신고 뛰어 보지만 횡단 보도 앞 신호등이 바뀌지 않아 탈락. 그 날의 기분을 좌지우지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하루, 아니 토요일까지 이어질 수 있는 출근. 오늘도. 뛴다, 어제도. 반복된다,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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