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투표
구글 광고는 엄청나다. 한때 아주 짜증나는 유튜브 광고가 자꾸만 올라와서 설정을 바꿀 수 없나 뒤진 적이 있다. 구글 광고는 사용자에 맞춰 적절하게 띄워준다고 한다. 깜짝 놀랐다. 구글 계정설정에서 광고 개인설정으로 들어가니 나에 대한 태그가 수십 개나 있었다. 구글은 알게 모르게 나의 모바일 기기 사용 기록을 수집하고 이를 통해 나를 분석했다. https://policies.google.com/privacy?hl=ko#infocollect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지 명확히 써놨다. 명확한 것치고 상당히 많아 대충 뭉뚱그려서 ‘당신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기록을 수집하겠습니다’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깜짝, 알게 모르게와 같이 부정적 맥락을 만드는 단어를 썼지만 나는 이에 대해 꽤 긍정적이다. 필요없는 광고를 보지 않아도 되고, 나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알아서 추천 받고, 사고 싶은 물건이나 앱 같은 것을 굳이 찾아볼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뜨는 광고들은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그래서 유니콘과 같은 광고 차단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유튜브 프리미엄을 결제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데에 부정적이다. 나와는 반대의 입장이다. 내 입장은 알아서 태깅 해주고, 알아서 맞춰준다는데 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광고 수가 적어서 그런지 매번 같은 것, 매번 쓸모없는 것만 떠서 문제이긴 하지만.
카카오톡은 예전부터 앱 내에 광고를 상당히 많이 넣었다. 근래에는 대화탭 맨 윗칸에도 넣기 시작했는데 그 창에 뜨는 광고가 제법 나와 맞는 듯하다. 카카오가 수집하는 내 정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카카오톡과 카카오맵 말고는 이용하는 서비스가 없고, 그마저도 잘 안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광고가 뜨니 재밌고 만족스럽긴 하다.
구글이 나에게 붙인 태그는 꽤 정확해 보인다. 얼마나 태그 종류가 많은지 몰라도, 나에게 붙은 수십 개의 태그가 적은 수도 아닌데 제법 잘 표현하고 있다. 초면인 누구에게 나를 소개할 때 이모저모 말하기 앞서 나를 분석한 구글의 데이터를 보여주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개인에 대한 분석이 점점 활성화 되고, 정교해지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할지도 알 것 같다. 나는 10대 중후반부터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지만 지금의 어린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기 구글 계정을 가질 것이다. 그러면 수십 년 인생의 모든 기록이 저장되고, 분석될 것이다. 삶이 통째로 데이터화 되는 것이다.
생애주기라는 말이 있다. 정부에서는 생애주기별 복지를 챙겨주려 하고, 보험사 같은 경우 사람들의 데이터 분석이 경쟁력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나이대에 갔을 때, 어떤 상황에 놓일 확률이 높고,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며,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 예상할 수 있다. 구글의 개인 맞춤정보 분석이 발전하고, 개인이 구글 계정을 사용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심지어는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할지도 알 수 있다.
그래서 AI가 강력해진 사회에는 투표가 무의미해지리라 생각한다. 이미 그런 시도는 사회 전반에 이뤄지고 있다. 607080대는 보수 성향, 4050대는 진보 성향, 20대 남자의 경우 극우 성향 같은 식이다. 표본을 추출해 대표성을 지니게 하는 이러한 분석 방식은 수많은 ‘나는 아닌데?’충을 양성한다. 이뤄지고 있지만 발전 방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나이, 직업, 주소지, 소득수준 정도의 정보를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다. 막상 30억 아파트에 사는 50대 의사라 할지라도 극좌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발견될 때마다 강남좌파 같은 식의 말을 붙인다. 언제나 한 발 늦다. 그 사람이 인터넷을 이용하며 검색하고, 보고 듣는 것, 의사표현,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며, 어디에 들르고, 어떤 브랜드의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지. 그러니까 모든 정보를 알고 있고, 그 정보의 공통점을 파악하고, 교집합이 있는 사람들의 성향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면 투표는 낭비가 된다. 정치인들은 정책을 내고 선거에 출마한다. 유권자들은 아무 할 것이 없다. 비합리적인 생각조차 AI는 분석한다. 투표는 자동으로 이뤄진다. 정치인들이 할 일은 호감을 사는 일이다. 정책 역시 AI에 의해 분석된다. 선거 자체가 없어지지는 못한다.
예컨대 원자력 발전소 폐기 문제는 합리적으로 결단할 수 없다.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와 원자력 무기 개발의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폐기가 맞지만, 화력 발전과 경제성, 늘어가는 전기 소비량을 생각한다면 유지가 맞다. 똑같이 환경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가치관에 따라 다른 의견이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 선거가 필요하다.
물론 이미 유권자들이 분석된 상황에 투표가 무의미한 상황이라면 선거도 무의미할 수 있다. 다수결이야 어차피 정해지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AI가 개발된다 해서 마냥 공각기동대가 현실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AI가 정말로 강력하다면 인간 감성의 부분까지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사이의 교류, 대면, 육체적인 감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출마자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연설하고 설득한다. 그렇게 사람이 바뀔 수 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AI는 그동안 형성된 인간을 분석하지, 어떻게 변할지는 예측하지 못한다. 어느 날 길을 가다 후보자의 연설에 끌려 생각이 조금씩 바뀔 수 있다. 다만 AI는 생각이 바뀌기 시작하며 바뀌는 행동 양식을 다시 분석할 것이다. 그 결과로 선거일 당일, AI의 분석이 끝나고 투표장 없는 투표가 끝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