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nwritten text Aug 14. 2024

혼자만의 방 02

17.

이듬해 봄, 같은 집 같은 반지하 공간, 내 방 건너편에 있던, 환한 바깥세상으로 창이 나있는 방으로 이사했다. 마당에는 라일락 나무가 있었다. 봄바람이라도 부는 밤일라치면, 라일락 꽃 향기는 작고 부드러운 폭포수처럼 창문으로 넘어와 내 방 가득히 일렁였다.


18.

내가 살던 동굴처럼 컴컴한 방에는 얼굴만 알던 국문과 선배가 이사 왔다. 돋보기안경을 쓴 그는 아마도 등단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동시에 방문이 열리면 내가 살았던, 그러나 지금은 그가 살고 있는 방을 엿볼 수 있었다.

철제 앵글로 짠 서가에는 온갖 문예계간지들이 출판사별, 출간월별로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다른 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 점이 무척이나 이상했다. 그때 예비 문인들이 등단 준비를 사법시험 보듯이 한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가 보다 했다.


19.

그리고 그해 가을, 나는 같은 집 이층으로 이사했다. 몇 만 원이나 하는 돈을 월세로 더 지출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 방 역시 다른 식으로 내 마음에 꼭 들었다. 모양이 다소 특이했는데, 두툼한 ‘ㄴ’ 글자를 좌우로 역전시킨 모양이었다. 방 아래로 일층에서 올라오는 계간이 있었기 때문인데, 내가 꾸는 꿈은 꼭 그 모양이 되었다.


20.

내 살림은 더없이 소박했고, 심지어 삼십 대 초반에 원룸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냉장고도 없이 지냈지만 문제는 언제나 책이었다. 헌책방을 매일 같이 드나들었고 좋은 책이 있으면 다 읽지도 못할 것이면서도 무조건 사 왔다. 조그만 책장들이 계속 들어찼고, 삼십 대 초반에는 책장에 자리하지 못한 책들이 급기야 방바닥 여기저기에 쌓여 초목처럼 자라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빌려주고 회수하지 못한 책들, 번역 상태가 너무 안 좋거나 오래 갖고 있지 않아도 되어 버린 책들의 수보다 내가 들여오는 책들이 더 많은 탓이었다. 방은 흡사 책들의 숲이었고, 책들의 숲에는 내가 지나다니는 오솔길이 생겼다. 오솔길은 내 침대와 책상이 있는 공간에서 현관과 화장실을 잇고 있었다.


21.

주제넘은 얘기겠지만, 나는 내 삶의 일부분을 책으로부터 구원받았다고 여기고 있다. 물론 나머지는 음악과 술, 어머니와 누나들, 친구들 그리고 지금 아내의 사랑 덕택이겠지만.


22.

그럼에도 그 시절, 그 숲이며 오솔길이 당시 또 그 나름의 고달픈 생활에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지.


23.

앞서 이야기했듯, 이십 대부터 삼십 대 초반까지 단골이던 헌책방이 있었다. 가끔 좋은 책들이 싼 가격에 나와 자주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주인집 내외 역시 기억에 남는다. 남자 사장님은 무뚝뚝하셨고 여자 사장님은 상냥하셨다. 나는 그 작은 헌책방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책 표지를 구경하거나 내용을 훑어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90년대 초중반은 학생운동 시절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래서인지 헌책방에는 철 지난 사회과학서적이라든지 철학책이 한 묶음씩 들어오곤 했다. 나는 그 책들 중에 언젠가 읽을만한 책들은 주저 없이 사 오곤 했는데, 단 한 권의 책은 그러지 못했다.


24.

책 제목은 <루카치의 미학이론>이었다. 발터 벤야민의 얇은 선집을 몇 차례 읽어본 터라 같이 읽기 좋을 듯했다. 그러나 나는 그 책을 발견한 당일 그 책을 사지 못했다. 다만 누군가 먼저 책을 사가지 않았을까 하는 조바심에 며칠이고 헌책방을 찾아가 같은 책을 펼쳐 본 후 다시 서가에 얌전히 꽂아놓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책 면지에 쓰인 손 글씨 메모가 나를 망설이게 했다.


25.

메모의 내용을 더듬어보면 대강 이러했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당신에게 어떤 생일 선물을 사줄까 고민하며
햇살 뜨거운 여름 한 낮을 돌아다니다,
이렇게 에이컨이 시원한 교보문고의 서가 사이에 앉았어요.
당신에게 이 선물이 마음에 들기를.   

- 어느 해 몇 월 몇 일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26.

그 책은 결국 내 방 안의 숲의 일부가 되지 못했다.


27.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근 십 년을 넘게 살았던 원룸건물 주인으로부터 퇴거 통보를 받았다. 아쉬웠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려준 것만 같아 감사했다. 엄마의 병세가 악화되어 고향의 대학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는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다. 고향에 있는 대학병원을 오가며 간병과 서울에서의 업무를 병행했어야 했다. 어찌 보면 그 시절 내가 몸 담고 있던 업계가 몰락하여 일거리가 줄어 다소 회사 생활에 여유가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회사나 회사 동료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28.

어쨌든 그 힘든 시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건물 주인은 기다려준 셈이고 그 방은 내가 이십 대 중반부터 거쳐간 적지 않은 ‘나만의 방’으로서 최후가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방이 두 개인 작은 집을 구했고 오래전부터 알던 분과 결혼하여 같이 살게 되었으니 그런 셈이다.


29.

대학시절 이후, ‘혼자만의 방’에 누군가를 들인 일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된다. 어떤 하루였다. 신종플루라는 전염병에 걸려서 어찌나 고열에 시달렸는지 회사에 나가기는커녕, 결근 사실을 알릴 여력도 없었다. 어렵사리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나 회사에 알렸고 이삼일이 지나도 회사에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되자 회사 동료 둘이 집을 찾은 적이 있다.

그중 한 후배 동료가 의아해했다. 당신은 어째서 이런 곳에서 기거하는가에 관해.


30.

그러나 그 시절, 나는 보통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것들 그러니까 돈이나 집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다만 혼자만의 방, 그리고 책들로 이루어진 숲과 오솔길들, 음악과 단골술집이면 족했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내 볼품없는 영혼은 허기를 느끼지 않았다. 한 여름 매미가 벗어 놓은 허물과도 같이 아무것도 아닌 그 안락한 공간들이 나를 위로해 줬던 것이다.

이전 03화 혼자만의 방 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